초점

야권 후보단일화 도장만 남았다

(사진/야권의 후보단일화협상은 이제 두 김 총재의 합의만 남았다.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10월 말 매듭지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대통령후보 단일화협상이 최종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두 당은 실무협상의 막판 쟁점이던 내각제 형태와 개헌 보장방안에 대해 사실상 합의를 이뤄 김대중-김종필 두 총재의 담판만 남겨놓은 상태 다. 지난해 11월 김대중 총재와 김용환 자민련 부총재의 ‘목동 회동’에 서 시작된 ‘단일화 대장정’이 꼭 1년 만에 성공적으로 막을 내리게 되 는 셈이다.

자민련 여권카드 ‘이회창 추락’으로 쓸모잃어

정치적 이념과 색채가 상당히 이질적인 두 당이 단일후보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 4수’째로 마지막 도전에 나선 김대중 총재는 비자금 정국 이후 자민련의 도움없이 는 집권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자민련 또한 다른 대안이 없을 뿐더러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 자칫 당이 와해될 수도 있는 절박한 처지여서 협상타결쪽으로 방향을 굳혔다.

자민련의 애초 전략은 단독집권이 어려운 국민회의를 내각제쪽으로 이끌 어낸 뒤, 퇴임 뒤 신변안전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는 김영삼 대통령을 압 박해 연내 내각제 개헌을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김종필 자민련 총재는 ‘양다리 걸치기’라는 비난에도 틈새가 보일 때마다 여권에 손짓 을 보냈다. 또 대구경북과 충청지역 의원 등은 김대중 총재에 대한 지역 주민들의 거부감을 들어 협상파기를 공공연히 주장해왔고, 여권과의 연대 요구도 많았다.

그러나 연내 내각제 개헌이 물건너 가고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가 두 아들 병역기피 의혹으로 추락을 거듭하면서 여권과의 연대 가능성은 사라졌다. 이에 비해 김대중 총재의 주가는 상승세를 계속 유지함에 따라 단일화 협 상은 상당한 탄력을 받게 됐다. 김 총재의 당선가능성과 신뢰성에 문제를 제기해온 협상반대론자들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고 협상쪽으로 전향하는 사람들이 속출한 것이다. 여기에는 국민회의의 성의있는 ‘자민련 달래기 ’도 큰 몫 했다.

그렇지만 김대중 총재의 ‘쾌속항진’은 실무협상의 막판 장애물로 작용 하기도 했다. 김대중 총재가 내각제 개헌 이후 자신의 역할에 대해 강한 집착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협상이 다시 꼬이기 시작한 것이다.

두 당은 이미 지난달 공식·비공식 창구를 통해 내각제 개헌의 시기와 형 태, 공동정권 운영방안 등에 대해 의견접근을 보았다. 특히 최대 쟁점이 었던 내각제 형태와 관련해 독일식 순수내각제를 원칙으로 하되, 통일· 외교·국방 분야에 한정해 비상시에 대통령이 권한을 행사하게 하는 쪽으 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김대중 총재가 대통령이 통일·외교·국방 분야에 관여할 수 있도 록 할 것을 협상팀에 강력히 주문하는 바람에 실무협상은 최종시한인 이 번달 15일을 넘겼다. 또 김 총재의 이런 태도는 자민련이 품고 있는 불신 감을 자극했고, 자민련은 때마침 불어닥친 ‘비자금 바람’을 타고 순수 내각제를 ‘양보불가사항’으로 못박는 등 더욱 강경한 태도로 돌아섰다.

합의문도 자민련 요구대로 속도조절

결국 신한국당의 검찰고발로 비자금 정국 조기탈출이 어렵게 된 김대중 총재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두 당 협상대표인 한광옥 김용환 부총재 는 지난 17일 내각제 형태 문제 등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했다. 다만 두 당은 아직 비자금 정국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고, 당내 의견정리가 충분하지 못하다는 자민련의 요구에 따라 합의문 작성을 조금 미루는 등 ‘속도조절’을 하기로 했다. 김대중 총재도 이날밤 강릉지역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순수내각제를 포함해 자민련의 요구를 전폭 수용해 협상을 빨리 매듭짓고 싶다”고 말했다.

후보단일화를 위해서는 김종필 총재의 결단이라는 관문이 아직 하나 남아 있다. ‘좌고우면’을 거듭해온 김 총재가 여권의 대응 움직임 등 유동적 인 정국상황을 들어 결심을 미적거릴 가능성은 여전히 있는 것이다.

박중언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