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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권문제가 대통령을 선출하는 데 기준이 돼야 한다고 말한 데릭 에번스 사무총장. 아직까지 인권문제를 거론한 대선후보는 없다.)
지난 10월16일 국제사면위원회(국제앰네스티)는 최근 국내 대통령 후보들 에게 ‘거의 잊혀진’ 주제에 대해 공개서한을 보냈다. 바로 인권문제다. 국제앰네스티는 △기본적 인권회복 △고문과 가혹행위 종식 △인권 관련 법률 개정 등 5개 주제를 아홉쪽의 공개서한에 담았고, 구체적으로 양심 수 석방, 국가보안법 개정, 강제적 전향제도 폐지 등을 촉구했다. 앰네스 티는 “이들 권고 내용을 후보들이 공약하고 준수할 경우 한국정치의 장 기적 발전에 이바지하고, 한국의 이미지를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앰네스티는 또 이를 위해 “한국 내 유권자들이 자신이 지지하 는 후보를 결정하는 데 각 후보들이 밝히는 인권정책을 고려해달라”고 주문했다.
지난 10월17일 앰네스티 세계본부인 런던 국제사무국에서 만난 데릭 에반 스 사무차장은 “각 후보 진영에서 중대한 반응이 올 경우 이를 대선 전 에 공개할 용의가 있다”면서 각 후보 진영에 성의있는 답변을 촉구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의 인권을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언론인 등이 앞장서서 선거 뒤 공약의 이행여부를 감시하는 것”이라면서 한국 내에서 인권문제 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주기를 희망했다.
-공개서한을 보낸 이유는 무엇인가.
=선거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변화의 계기가 된다. 앰네스티는 이러한 변화 에는 인권에 관한 변화도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한국의 대통령선거 이전에 공개서한을 발표한 이유는 현재까지 인권개선을 선거 공약으로 거론한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앰네스티는 인권문제를 등한시하 는 사람은 현대 민주국가의 지도자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인들이 이번 대선에서 인권문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유가 무 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국민은 80년대 말 이후 민주화시대가 도래하면서 인권탄압이 자동 적으로 소멸되었다고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인권침해 가 꼭 독재국가에서만 발생하는 현상은 아니다. 현재 한국엔 대중이 명확 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인권문제가 도처에 산적해 있다. 예를 들면 불공정 한 재판과 고문을 받고 수십년째 복역중인 장기수문제가 그것이다. 모름 지기 일국의 대통령 후보라면 자진해서 인권문제를 거론하고 또 그것을 당당하게 자신의 선거공약으로 내걸어야 한다.
-한국 내 일부에서는 국가안보와 직결되기 때문에 인권을 무제한 보장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정부당국의 태도에 달린 문제다. 한국의 독재정권은 특정한 정치 적 견해가 북한을 이롭게 한다고 선전하면서 국민여론을 그런 쪽으로 물 고갔다. 물론 국가안보는 중요하다. 하지만 국민이 자유롭게 정치적 신념 을 가진다고 해서 한 나라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지는 않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그 반대다. 인권을 보장하는 것이 사회안정에 도움이 되며 국가안보에도 좋다는 엄연한 사실을 왜 부정하는가?
-한국의 인권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국의 경우 인권 침해 양상이 변하고 있다. 올해의 경우 국가보안법으 로 구속된 사람들 숫자는 근래에 비해 늘었지만, 형량은 10년 전보다 줄 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양상이 어떻게 변하든 인권유린이 존재하는 한 당사자는 물론 그 가족, 더 나아가 전 사회에 큰 손실이 된 다는 것이다.
-만일 후보들이 인권공약을 한다면 어떤 수준이 돼야 한다고 보는가.
=후보들이 막연하게 인권준수를 약속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이에 따 라 우리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사항을 공약에 넣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인권규범에 맞도록 국가보안법을 개정해야 한다. 또 양심범을 석방하 고 과거 불공정하게 투옥된 장기수의 사례를 재조사해야 한다. 피의자의 가혹행위를 금지할 구체적인 방도를 마련하고 인권침해 사례를 조사할 공 식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비준한 국제인권규준들을 성실히 이행해야 한다. 이런 정도의 구체적인 언급이 있어야만 책임있는 선거공 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공개서한에 대한 각당 후보의 반응을 종합해서 선거 전 발표할 용의가 있는가.
=물론 후보들로부터 중요한 반응이 올 경우 선거 이전에 그것을 발표할 것이다. 그러나 앰네스티는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기구이므로 특정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후보들의 인권공약을 선거뒤 어떻게 강제할 수 있는가.
=선거결과가 나오면 대통령 당선자에게 선거공약을 상기시키고 우리의 권 유사항을 이행하라고 촉구할 계획이다. 그러나 한국 내에서도 언론인과 정치인 등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앞장서 선거 뒤 공약의 이행여부를 감시 해야 할 것이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30일 제 180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