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문화

한국인,그 위선의 얼굴

(사진/군사정권은 획일적인 질서에 기초한 천민자본주의 문화의 씨앗을 뿌렸다. )

왜 이 모양일까? 만원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마구 밀어젖히며 남의 발을 밟거나 부딪쳐도 “미안하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도로에서 자동차 시 비가 났을 땐 무조건 목소리를 높여놓고 봐야 한다. 뒷차가 밀리든 말든 알 바 아니다. 사회는 온통 이기는 것만이 중요다. 가뜩이나 좁은 국토에 서 환경오염은 더해가고, 경제는 불황인데 사람과 부딪치는 게 이렇게 싫 을 수가 없다. 정말, 뉴질랜드로 떠나고 싶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최근 이화여대 한국학과 최준식 교수는 <한국인에게 문화는 있는가>(사계 절)라는 책을 펴냈다. 그리고 한국에서 28년째 주재하고 있는 일본 상사 맨 모모세 타다시도 자신의 한국경험을 바탕으로 쓴 <한국이 죽어도 일본 을 못 따라잡는 18가지 이유>(사회평론)를 펴냈는데 둘 다 베스트셀러 목 록에 올랐다. 한국인의 자학적 취미 때문이 아니라, 요즘 한국인들이 한 국인 스스로의 인성에 대해 느끼는 위기의식 탓일 것이다.


인성에 대한 위기의식 깊어간다

이들이 지적한 우리의 모습은 한마디로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앞뒤로 흔들리는 빌딩 입구의 두꺼운 유리문을 여닫을 때 누구도 뒷사람 을 의식하지 않는다. 나만 지나가면 뒷사람은 내 알바 아니다. 한국사람 이 ‘정’이 많다고? 그건 쵸코파이 광고에나 나오는 이야기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렇게 혹독한 나라는 드물다. 자기 동포인 조선족에게 수 백, 수천명이 달려들어 대량사기를 치는 사기꾼의 나라를 아직 들어본 적 이 없다. 한 울타리 안 장애인들에겐 또 어떤가? 장애인 교육·보호시설 이 들어올라치면 지역주민들의 결사항전이 시작된다. 자기 아이들이 ‘병 신’을 보고 크면 안 된다는 교육적 이유와 땅값이 떨어진다는 경제적 이 유 때문에. 남에 대한 배려가 없기는 바깥에 나가서도 마찬가지다. 덴마 크와 스웨덴 사이를 운항하는 여객선 부페식당엔 ‘한국인 출입금지’ 팻 말이 붙어 있다. 한국인이 왔다 가면 음식은 물론, 소금, 후추에 포크까 지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못 먹는 사람들, 그건 나와는 상관없다 .

최 교수는 이런 한국인의 부정적 문화를 분석하는 근거로 네덜란드의 홉 스테드(Hofstede,G.)가 쓴 <세계의 문화와 조직>을 인용해 분석했다. 이 에 따르면 한국은 권력의 불평등성을 잘 참아내며(권위주의), 개인보단 집단이 중요시되는 사회이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여성적인 문화를 지녔으며, 자기와 다른 것을 잘 참지 못하는 불확실성 회피의 정 도가 높은 나라로 분류됐다. 그 근저에는 집단주의로 발전한 뿌리깊은 가 족주의가 똬리를 틀고 있다. 농경사회와 유교문화 속에서 발달한 가부장 적 가족주의가 이전엔 사회를 지탱하는 핵심요소였으나 산업화 이후 이 가족주의는 흉물스럽게 변했다. 가족, 그리고 한 동네사람이라는 ‘우리 ’라는 집단 안에서는 이성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저 ‘정’으로 모든 것 이 물 흐르듯 원만하게 굴러갔다. 하지만 산업화 이후 집단이 파편화되면 서 이웃이 사라지고, 세상살이가 어렵다보니, 결국 앙상한 ‘가족이기주 의’만 남게됐다. 그래서 내편이냐 아니냐를 끊임없이 갈라, “한 통속, 한 집안끼리는 뭉쳐서 우리끼리는 다 봐주고 다른 집단은 타도 혹은 극복 의 대상으로 보자”는 집단 이기성을 띠게 된 것이다. ‘우리가 남이가? ’ 문화다.


배타적 민족주의… 오로지 승리만 집착

(사진/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은 이방인일 수밖에 없다. 배타주의적 문화가 그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

가족주의는 배타주의의 모습을 띠기도 한다. 지난해 처음 프로농구가 도 입되고, 외국인 용병들이 대거 진출했을 때도 우린 ‘된장농구’라는 신 조어를 만들어 내며 용병과 한국인 선수들을 철저하게 나눴다. 여기에 세 계1위의 고아수출국. 당연하다. 누구네 씨인지도 모르는 고아를 우리 가 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인 고아 중에서도 장 애인이나 정신박약아를 입양하고, 자신들의 자식이 있음에도 외국인 고아 들을 입양하지만 한국에선 거의 드문 일이다.

이런 순혈 가족주의에선 오로지 다른 가족을 거꾸러뜨리기 위한 경쟁만이 남았다. 아이들 운동회 때 부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뛰고 달리다 보면 어 느새 승부에 집착, 룰이고 뭐고 없다. 반칙을 해서 친구를 넘어뜨리더라 도 이기기만 하면, 부모는 “잘 했다”며 자식 머리를 쓰다듬는다. 입시 경쟁에 돌입하면 친구는 적으로 돌변한다. 이러다보니 악만 남게 됐다. 지난 7월 출간된 최봉영 교수(항공대)의 <한국문화의 성격>은 이런 한국 문화의 형성과정을 역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우리 문화의 잘못된 첫 단추는 구한말 왜곡된 근대문화의 기형적 이식·전개부터 연원 이 더듬어진다. 연이은 일제치하에서 사람들은 굴종과 타협을 익히면서 윤리적 극단주의, 자포자기, 자기비하가 만연했다. 한국전쟁은 또하나의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삶과 죽음 앞에서 지금껏 부정되었던 극단적 이기 성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 ‘∼가 밥먹여 주냐’도 이즈음부 터 나왔다. 그리고 자유당 독재 시절 권모술수만이 판치면서 정의는 사라 졌다. 특히 4·19의 성과가 군사쿠데타라는 불법 아래 가뭇없이 사라지면 서 오직 승리의 결과만이 중요할 뿐이라는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스며들었 다. 최근 신한국당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후보 교체 논의가 전개되는 것도, ‘지면 죽는다’는 식의 사활을 건 승리지상 주의 탓이다.

군사정권 시대에는 모든 게 ‘잘 살아보자’는 구호 아래 돈이 곧 선(善) 이었다. 천민자본주의라고 불리는 형태의 자본주의 문화와 ‘하면 된다’ 는 ‘무대뽀’ 군사문화가 우리 의식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목표에 대한 무모한 집착, 권위에 대한 절대복종, 획일적 질서유지. 이는 한국인의 경 제성장에 나름의 역할을 한 게 사실이나, 그 부정적 유산은 고스란히 남 아 이제 우리 차지가 됐다. 80년대 후반 이후 부의 축적이 일반화되면서 개인의 향락적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도 부와 함께 쌓아온 왜곡된 가치관의 결과다. ‘만가(萬家)에 의한 만가(萬家)의 투쟁상태’. 사회적 무질서와 혼란, 그리고 사회적 낭비와 비능률이 계속되면서 경제성장도 한계다. 불황여파 속에서 재벌들이 수입품에만 열을 올리는 것도 우선 ‘ 나만 살고 보자’는 가족주의적 이기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결과다.

일본의 사무라이들은 명치유신을 통해 막부의 가신에서 천황의 가신으로 변모했다. 이후 그들은 가신에서 관료와 부르주아로 변신해 신문화를 적 극적으로 건설했다. 문화적 격변기에 대화(大和)와 천황으로 대표되는 민 족의 중심축을 유지하면서 문화의 중심을 중화에서 서구로 옮겨갔다. 그 러나 일본은 가족주의 문화를 국가로 확대시켰을 뿐 다른 나라로 확대하 지 못해 결국 일본 이외의 국가를 ‘남’으로 보아 제국주의의 길을 걸었 다. 그런데 한국은 그 가족주의 문화를 자신의 가족에서 한 발자욱도 떼 지 못했다. 오히려 과거 동리나 한 마을에까지 흘렀던 가족주의가 이젠 가정으로 축소되고, 이상한 형태의 지연, 혈연으로 흘러버렸다.


불행한 성장의 유물에 발목 잡힌다

(사진/차례 지키면 모자란 사람? 이기는 것만이 능사인 가운데 양보는 머릿속의 미덕일 뿐이다. )

최준식 교수는 이에 대해 “가족주의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니다. 한 마을 에 살 땐 필요없는 가치관들이 산업사회가 되면서 생겨났는데 우린 그런 정신적 준비없이 새로운 세기를 맞이한 때문이다. 조선시대의 왕과 같이 전국민을 하나로 묶는 통합원리의 부재, 일제침략에 의한 문화적 단절 등 이 한국문화 부정적 요소의 큰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최 교수는 또 “ 가족주의를 말살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긍정적 가족주의에 기초해 국민 을 통합하고, 자긍심을 심어주는 르네상스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고 말했다.

한 나라의 국민성은 고정불변도 아니고, 지금의 상태가 불과 1백년 안팎 의 결과라고 볼 때 그래도 희망을 가질 여지는 남아있다. 구한말, 해방공 간, 60∼70년대 산업화 과정 등 우리 역사의 분수령에서 우린 그때마다 악수를 거듭했다. 산업화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그저 앞만 보고 달렸던 그 과감함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기제가 됐다. 역사에선 위기와 기회가 함께 왔다. 그렇게 낙관적이진 않은 것 같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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