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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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년 두들겨 맞은 징짝같이 마빡이 번들거리는 대장군이 있는가 하면 썩은 호박대가리의 상투잡이가 있고, 퉁방울 고리눈이 있는가 하면 하회 탈처럼 파안대소로 가늘어진 실눈이 있고, 화등장만한 눈이 있는가 하면 할퀸 손톱자국같이 작은 눈도 있다. 주먹코, 말똥코, 들창코, 빈대코, 메 줏덩이코, 양물처럼 길게 늘어진 코가 있는가 하면, 아들 못낳은 아낙이 몰래 깎아먹어서 우묵하게 터만 남은 코도 있다. 또 입 생긴 모양을 볼락 시면 함지박만한 것, 심술궂게 옆으로 삐딱하게 찢어진 것이 있는가 하면 , 짚신짝 같은 혓바닥을 빼물고 있는 것도 있다. 게다가 이빨 생긴 모양 을 볼락시면 옥수수알 박힌 듯 가지런한 것도 있고, 톱날이 맞물린 듯 험 한 것도 있다.”
“장승은 달마와도 같은 것”
한 소설가는 이두재(45)의 장승을 이렇게 묘사했다. 귀신에 홀렸는지 30 년 가까이 장승만 깎고 있는 이두재. 그동안 깎은 장승이 4백여개에 이르 니 소설가의 눈에도 만물상이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정작 이두재의 얼굴 은 둥글넙적한 게 넉넉하기만 하다. 그토록 다양한 표정을 깎노라면 마음 고생도 꽤 했음직한데 굳거나 딱딱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다. 씨름꾼처 럼 옆으로 살이 붙은 몸집을 더하면 영락없이 착해빠진 촌사내다. 그에게 끌과 나무와 장승이 없었다면 아마도 농사를 지었으리라.
그의 작업실은 나무토막과 끌, 망치, 톱밥으로 가득하다. 작업실 한켠 책 상 위에 올망졸망하게 서 있는 장승들을 놓치면 목공소로 착각할 법하다. 그런데 곧고 잘빠진 나무토막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개 벌레먹어 야릇하 게 구멍이 뚫렸거나 비틀리고 옹이가 툭툭 불거졌다. 끌과 망치도 둔탁하 고 투박하기만 하다. 그게 다 이유가 있었다. 그는 나무의 고유한 모양새 를 그대로 살려 찍고 파고 다듬는다. 벌레먹은 옹이나 뒤틀림은 그대로 장승의 입이 되고 수염이 되고 젖퉁이가 된다. 나무 스스로 만든 장승 몰 골에 조금 사람의 힘을 보태는 것뿐이다.
장승은 본디 이정표로 큰길가에 세우거나, 액을 막고 풍요를 기원하는 신 목으로 마을 밖에 모셨다. 대개 구척 장신에 퉁방울눈, 주먹코, 써렛발을 한 자못 무서운 형상이었다. 그래야만 밖에서 들어오는 이방인이나 귀신 에게 두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두재의 장승은 무서움과는 거리가 멀다. 아무리 험상궂은 표정을 해도 도무지 남을 해치거나 겁을 줄 수 있을 것같지 않다. 오히려 조금은 장난스럽고 허풍스럽다. 그의 장 승은 판소리 사설에서 “입은 있으나 말을 할까. 발이 있어 도망할까. 분 한 마음 못이겨 눈을 항상 부릅떴네” 하고 놀림을 받던 그런 장승이다. 고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처음 장승을 깎았다. 본디 깎아내고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쓱싹 장승 하나를 깎았다. 그게 교내 바자회에서 70원에 팔렸다. 내가 만든 걸 누군가가 보고 좋아한다는 생각에 얼굴이 화끈했지 만 기분이 썩 좋았다. 그때부터 심심풀이로 장승을 깎기 시작한 게 지금 까지 이어졌다. 장승이 좋은 이유라면 딱히 댈 게 없다. “장승에는 답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이 고작이다. “장승은 탱화로 치면 달마도 같은 겁 니다. 붓으로 선 그리고 점 하나만 찍어도 달마가 되듯이 썩은 나무토막 에 몇줄 글만 써넣어도 장승이 되니까요.”
요즘 들어선 장승에 홀린 것같기도 하다. 지난 겨울 장승 찾아 떠난 여행 중 고향을 찾았을 때 그걸 느꼈다. 충북 음성 고향마을 어귀에는 돌장승 세개가 늠름하게 서 있었다. 어릴 땐 보도 듣도 못했던 발견이었다. ‘돌 장승은 남도엔 많지만 충청도에는 극히 드문데, 여기에 세개나 있다니.’ 그러면서 상념이 꼬리를 물더란다. ‘경찰인 아버지를 따라 들어오면서 어머니가 바로 태기를 느껴 나를 낳았다고 했지. 그때까지 어머니는 아이 를 낳지 못해 근심이 크셨다던데. 어릴 적 이웃사람들은 우리 집을 도깨 비터라고 무서워했고.’ 아무래도 장승과 깊은 인연이 있는 것 같아 섬뜩 하다.
게다가 얼마 전 장승 전시회를 앞두고 수상한 꿈을 꿨다. 덥석부리 수염 에 백두건을 두른 칠척 장신의 사내가 서까래에 거꾸로 매달렸다가 내려 서며 다짜고짜 욕설을 퍼붓더란다. “이 놈아! 내 언제 이런 모습을 맹글 어 달랬냐. 네 놈이 육허기가 졌으면 졌지, 내가 색에 아귀가 씌었드냐. 못된 소행머리에 잔재주를 부려 여장승 가슴팍엔 짝젖통 붙여놓고 남장승 마다 불두덩엔 팔뚝만한 남근을 붙여놓았으니 사모관대에 배에 잔뜩 글 썼어도 웃음거리 될 수밖에 더 있드냐.” 그러고는 마루없는 봉당으로 풀 쩍 내려서며 통짜로 된 끌을 냅다 던지는 거였다. “이 끌로 장난부리지 말고 서른 장승만 깎아라!” 역시 장승에 홀린 기분이었다.
장승 찾아 톱들고 떠나는 산행
장승은 본디 표정이 다양하다. 전문가의 재바른 솜씨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난하고 무식한 백성들이 되는 대로 눈이며 코며 입을 깎아놓았으니 당 연하다. 뭐든지 큼지막하면 좋은 줄 알고 팍팍 끌질을 해댔을 뿐 잔재주 를 부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게 어느 한 사람의 손으로 된 것도 아니다. 장승 만들기는 으레 그 마을의 공동행사였고, 장승에는 공동체의 생각이 녹아들게 마련이었다. “누군가 코를 깎으면 다른 누군가가 참견을 하는 겁니다. ‘거기 콧구멍이 너무 좁아. 눈은 왜 뱁새눈이야.’ 그러다보면 어느새 콧구멍이 눈망울이 넓어지는 거죠.”
휴일에는 대개 톱이 든 배낭을 메고 산행을 떠난다. 돌아오는 길 배낭 안 에는 이따금 팔뚝만한 잡목들이 가득 차 있곤 한다. 그만한 나무로 장승 을 깎아야 운반과 보관에 편리하기 때문이다. 애초 장승 만들어 길에 세 울 요량이 아닌 바에 욕심부릴 필요가 없다. 사실 요즘 세상에 구척 장신 의 장승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마을 지키는 일은 경찰서에서 해주고, 아프면 병원가고, 댐 막아 논에 물대고, 컴퓨터로 고기잡는 세상에 장승 의 가치는 볼품없다. 게다가 시험관이다 양수검사다 해서 아들까지 골라 낳는 마당에 장승이 설 자리가 없다.
하지만 곧고 쓸모 있는 생나무를 자른 적은 없다. 대개 개미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거나 벌레먹어 썩어가는 나무들이다. 거기에 장승의 얼굴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따금 미켈란젤로의 말이 맞다는 생각을 한다. 미 켈란젤로가 예수상을 깎았는데 한 사람이 그 비결을 묻더란다. 미켈란젤 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채석장을 지나는데 돌에서 예수가 ‘나좀 꺼내달라고 합디다’. 나는 예수를 가두고 있는 돌조각들을 떼어낸 것뿐 입니다.” 그는 이 얘기가 사실은 아닐지 모르지만 진실이라고 믿는다. 장승을 둘러싼 나무조각을 떼어내는 것. 그래서 나무에서 장승을 꺼내는 것. 이두재의 장승깎는 법이다.
사진 정진환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