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한국정치 `꼴불견 10'

“전·노 사면론 정말 꼴불견”

(사진/일부 응답자들은 전·노 사면론이 야당후보의 입에서도 나왔다는 데 더 큰 비애감을 느낀다고 했다. )

정치학도들은 지금의 정치판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 다. 학생들 대부분은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후보나 정당의 정치행 태에 대해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줬다. ‘민주주의적 정당정치라는 원론적 입장에서 학점을 준다면 몇 점을 주겠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에 가까운 1백82명(48.4%)이 ‘D’를 줬다. 낙제점인 ‘F’를 준 응답자도 1 백9명(29.0%)에 달했다. 10명 가운데 8명 가까운 학생들이 평균 이하의 점수를 준 것이다. 평균이라 할 ‘C’를 준 학생은 70명으로 18.5%에 그 쳤다. 그나마 7명은 ‘B’를 줘 관대한 평가를 내렸지만 ‘A’를 준 학생 은 단 한명도 없었다(표1 참조).


‘민주계 경선불복’ 두번째 꼴불견

후보나 정당의 정치행태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는 더욱 냉정했다. ‘후보 나 정당에 대한 개인적인 지지 여부를 떠나 교과서적 입장에서 바람직하 지 않은 정치행태’를 꼽아달라는 주문(5개까지 복수응답 허용)에 학생들 은 쟁점이 되는 거의 모든 사안에 대해 비판적인 평가를 내렸다. 후보나 정당이 내세우는 각종 구호나 표를 얻기 위해 벌이는 선거전략 따위는 학 생들의 눈에는 다분히 정략적이고 정치발전에 역행하는 것이었다(표2). 학생들은 무엇보다 정치권 일각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 면론’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었다. 전체 응답자의 61.6%에 해당하는 2 백17명의 학생들이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의 으뜸으로 꼽았다.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은 두 사람에 대해 정략적 차원에서 사면 운운 하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행위”라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아직 도 많은 양심수들이 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두 사람에 대한 사면은 있 을 수 없다”거나 “사면론은 이른바 문민정부의 성과를 뒤집는 반역사적 인 발상”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일부 응답자들은 “사면론이 여당에서 뿐만 아니라 피해자임을 자처하는 야당 후보의 입에서 나왔다는 데 비애 를 느낀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 2위는 ‘신한국당 민주계의 경선 결과 불복’ 이었다. 응답자의 46.9%(1백65명)가 이를 민주주의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절차적 민주주주를 무시하는 것은 민주주의 전반에 대한 정치인들의 신념을 의심케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한 응답자는 “ 민주주의란 결과보다 과정”이라는 말로 민주계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민주주의의 기본을 어기는 행위는 정치발전 의 차원에서 엄한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확대해 민주주의 자체를 위 협하므로 재생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념과 색깔을 구분할 수 없는 후보들의 정책이나 공약’도 꼴불견 정 치행태로 꼽혔다. 응답자의 43.8%(1백54명)가 이를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 행태로 꼽아 3위에 올랐다. “정당정치가 발전하기 위해선 정당들이 각자 고유한 이념과 지지기반을 갖추고 전체 국민의 지지를 획득해나가야 하는 데도 지금의 후보나 정당들은 천편일률적인 정책을 내놓고 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이념과 색깔이 없는 정당정치란 결과적으로 국민의 선 택권을 가로막아 정치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이념에 대해 아직도 우리 사회가 과민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 은 사실이지만 책임있는 정치인이라면 이를 극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세계가 탈이념의 추세로 가고 있다고 해 서 무이념의 정당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인제·조순에 냉정한 평가

‘경기도지사 자리와 서울시장 자리를 내놓고 대선판에 뛰어든 이인제 후 보와 조순 후보’에 대해서도 학생들은 비판적이었다. 응답자의 41.2%(1 백45명)가 이를 꼴불견 정치행태로 꼽아 4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정 치발전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 하나인 지방자치를 저버린 행위에 실망했다 ”는 의견이 많았다. “지방자치를 책임진 정치인이 임기를 다하지 않고 중앙정치 무대에 뛰어드는 것은 지방자치의 정치적 의의를 훼손하는 행위 ”라는 것이다. 학생들은 이에 따라 ‘이인제 후보의 세대교체론’이나 ‘조순 후보의 경제대통령론’에 대해서도 “지방자치의 발전을 해친 책 임을 피할 수 없다”는 이유를 들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후보들의 행태’도 똑같이 꼴불견 4위로 꼽혔다. “입으로는 지역감정이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하면서도 실제 행태는 이를 해결하기는커녕 오히려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한 학 생은 “정치의 국민통합적 기능을 이번 선거에서 복원하지 못하는 한 한 국 정치에 미래는 없다”고 비관적인 전망을 내리기도 했다. “특정 지역 에 기반해 정권을 잡으려는 전략은 다른 지역의 반작용을 불러 결과적으 로 국민을 분열시킨다”는 것이다. 또다른 한 학생은 “권력을 잡는 과정 에서 손에 검은 물이 묻으면 권력에도 검은 물이 들게 마련”이라며 지역 감정에 기대는 선거전략을 경계하기도 했다.

‘각 정당의 무원칙한 영입 경쟁’은 6번째 꼴불견 정치행태로 꼽혔다. 응답자의 34.7%(1백22명)가 이를 원칙없는 정략이라고 비판했다. 학생들 은 “정치인은 국민의 단순한 대리인이 아니라 대표이기에 어느 정도 운 신의 자유를 인정할 수밖에 없지만 무분별한 영입은 그를 뽑아준 국민의 선택권을 근본에서부터 흔드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은 특히 “영 입 대상자들의 과거에 대한 철저한 여과없이 이뤄지는 모셔오기 경쟁은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조장한다”고 비판했다. “어제의 적이 오늘 의 동지가 되는 곳이 정치라지만 거기에는 대다수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종필 후보의 눈치보기’도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 7위로 꼽혔다. 응답자의 33.5%(1백18명)가 이를 “정치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무원칙한 술수”라고 비판했다. “국가와 국민에게 봉사한다는 대의를 버리고 자신 의 이익만을 쫓아 움직이는 이기적인 행태”라는 것이다. 한 학생은 “지 지율이 미미한 정치인이 국정의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겠다고 눈치를 보는 것 자체가 우리 정치의 비민주성을 증명한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러나 학생들은 이른바 ‘DJP 연합’에 대해선 이보다 조금 관대한 평가를 내렸 다.‘DJP 연합’은 “민주투사를 자처했던 후보와 군사쿠데타의 주역이 손잡는 것 역시 무원칙한 정략”이라는 등의 이유로 응답자의 19.6%(69명 )에게만 꼴불견으로 꼽혀 10위권에서 벗어났다.


‘영남 끌어안기 경쟁’ 8위 차지

(사진/신한국당 비주류 민주계 의원들의 모임. 민주계의 경선 불복은 나쁜 정치행태 2위로 꼽혔다. )

‘후보들의 영남 끌어안기 경쟁’ 역시 학생들의 눈에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로 꼽혔다. 응답자의 23.9%(84명)가 이를 꼴불견으로 꼽아 8위를 차지했다. “영남의 패권주의는 우리의 정치발전을 저해한 중요한 요소인 데도 이를 타파하려 하지 않고 편승하려 하는 것은 책임있는 정치인의 자 세가 아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영남이 무주공 산이라고 달려드는 것 자체가 지역주의에 기반한 정치를 용인하는 행태” 라고 비판했다. 특히 일부 학생들은 “표는 정책으로 얻는 것이지 구걸하 는 게 아니다”며 후보들의 건설적인 지역정책 제시를 요구하기도 했다. 학생들은 후보 초청 텔레비전 토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었다. 응답자의 2 1.6%(76명)가 이를 “말뿐인 잔치”로 평가해 꼴불견 정치행태 9위에 올 랐다. “후보의 정책과 전망을 검증할 수 없는 토론이라는 게 대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반문이 많았다. “후보의 자질을 평가하기보다는 토론 을 주최한 언론사의 생색내기용 행사”라는 혹평도 있었다. “비슷한 질 문에 비슷한 답변, 후보를 공격하기보다는 보호하기에 급급한 일부 패널 들의 저자세 등으로 말잔치에 그쳤다”는 것이다. 일부 학생들은 “토론 에 참가할 기회가 모든 후보들에게 균등하게 주어지지 않는 것은 국민의 선택권을 원천적으로 제약하는 정치적 담합”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 10위에는 ‘이회창 후보의 보수대연합론’이 올랐다. 응답자의 20.2%(71명)가 “보수라는 개념조차 명확하지 않은 선 거용 구호” “수구세력을 보수라는 이름으로 용인하는 정치적 퇴행”이 라는 등의 이유를 들었다. 일부 학생들은 “보수대연합을 외치기 전에 진 보세력의 정치적 진출을 허용해야 한다”며 “진보와 양립하지 않는 보수 는 수사에 불과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밖에 비록 10위권에는 들지 않았지만 ‘김대중 후보의 대권도전 4수’( 19.0%), ‘권력구조 개편 논의’(12.5%) 등도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 로 꼽혔다. “국민에 대한 정계은퇴 약속을 저버렸다”거나 “국민의 동 의도 구하지 않고 정략적으로 권력구조를 재단하려 한다”는 따위가 각각 의 핵심적인 이유였다. 학생들은 또 “실체를 위장하거나 대중의 정서에 영합”하려는 ‘후보들의 이미지 조작’과 “지지율이 낮다는 이유로 자 신들이 뽑은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신한국당의 후보교체 논란’에 대 해서도 각각 12.2%, 11.1%가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라고 지적했다.


썩은 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

한편 학생들은 이처럼 바람직하지 않은 정치행태가 펼쳐지고 있는 책임을 주로 낙후한 정치문화와 정치인들에게 돌렸다. 응답자의 30.9%(1백16명) 가 그 책임을 낙후한 정치문화 탓이라고 지적했고, 29.0%(1백9명)는 정치 인 탓으로 돌렸다. 한 학생은 “우리의 정치문화는 썩은 물이고 정치인은 거기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들”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어 국민의 책임 을 든 응답자가 9.0%(34명)를 차지했고, 언론에 책임을 물은 응답자는 8. 0%(30명)에 이르렀다. 이밖에 해방 이후 왜곡된 우리의 정치역사(5.9%)나 사회 전체의 낮은 정치의식(1.1%)도 꼴불견 정치행태를 낳은 원인으로 지 적됐다(표3).

유강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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