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합종연횡 집어치워라

정영태/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

여론조사에서 수위를 달리는 후보자는 당선을 확실히 하기 위해서, 꼴찌 를 달리는 후보자는 당선권에 진입하기 위해서, 기존 정당후보자들은 자 신의 정책적 입장과는 전혀 상관없이, 때로는 도덕성을 완전히 내팽개치 면서까지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 또는 정치인들과의 연합을 시도하는 등 정치판이 엉망이다. 이러한 일들이 계속될 경우, 우리 사회의 문제를 심 각하게 만들 것이다. 그것은 우선, 후보자가 내세우는 정책공약의 의미를 희석하여 정책대결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목적지상주의와 편법주의

시장개방, 탈규제, 민영화, 재벌중심의 경제구조유지 등의 경제정책에는 기존 정당후보자들간의 차이가 전혀 없다는 것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사 실이다. 나아가 미국이나 재벌 또는 보수정치세력들로부터 지지를 받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똑같다. 그러나 중소기업정책 이나 노동정책, 고용불안과 소득안정 등 정책 세부분야에서는 약간의 차 이들을 보이고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차이를 보이는 정책공약을 실현하는 데 오히려 장애가 될 세력과도 연합하고, 그 런 인사들을 영입함으로써 그나마 존재하는 정책공약상의 차이를 무의미 하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후보들은 정권교체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니 걱정말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쨌든 기존 정당후보자들이 자신이 내세운 정책공 약을 실현하는 데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한 정당후보자와 연합함으로써, 정 책대결을 불가능하게 하고 국민의 바람을 무참히 짓밟고 있다.

다음, 방금 지적한 정책대결의 무산보다도 더 큰 폐해는 부도덕하다는 점 이다. 당선에 필요한 양의 표를 확보하기 위해서 또는 색깔론 시비에 말 려들지 않기 위해서 보수세력의 비위를 거슬리지 않으려고 하거나 그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까지 봐준다고 치자. 그리고 정책대결을 무의미 하게 하는 합종연횡도 봐준다고 치자. 어차피 보수세력들끼리니까. 그러 나 과거 인권유린이나 탈법, 부패행위를 자행하고서도 자숙한 기미를 보 여주지 않은 인사들조차 기존 정당후보자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연합하거 나 영입하려고 하는 것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이 미 널리 확산되어 있는 목적지상주의 또는 편법주의를 강화할 것이기 때 문이다. 당선이라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된다는 인식을 심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인 닮아가는 국민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고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우선, 무원칙 하고 부도덕한 합종연횡 등과 같은 방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해온 정당과 정치인들이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 축한다’는 법칙은 정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들 구태 정당과 정치인 들이 그나마 깨끗하고 능력있는 정치인들을 때묻혀 그대로 답습하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들이 이번 선거에서 이런 정치인들을 정치권에서 완전히 퇴장하게 만들어야 한다. 다음, 보수화를 견제할 정치사회세력의 등장을 저해하는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여전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이념이나 정 책면에서 결정적인 차이가 없다면 합종연횡을 못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해결방안은 다른 이념과 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는 법 적 제도적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이번 대선에서 이런 성격을 가진 후보 자를 밀어주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국민들의 비합리적이고 연고주의적 정치행태를 들 수 있다. 보통때는 도덕문제의 정답을 외듯 하다가, 투표 장에 들어가면 후보자의 정책공약은 잊어버리고 연고나 접대 또는 돈봉투 에 따라 투표하는 국민들이 많은 한, 정치인들은 부도덕하고 무원칙한 합 종연횡 등 정치판의 무원칙은 계속 될 것이다.

민주화된 이제, 더이상 정치인들을 탓할 수 없다. 우리 정치의 올곧음은 우리 국민들의 판단에 달려 있다. 이번 선거부터는 당선보다는 우리 사회 의 민주화, 경제발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을 내걸고 공명정대하게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를 지지하자. 누가 당선되든 그 후보자가 얻은 표 수만큼 그 후보자가 내건 정책은 실현될 가능성이 커진다. 누가 집권을 하든 다음 선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노력만 이 현 정치판을 올바로 세울 수 있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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