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추적

고속발효기 내다버려라?

(사진/지난 95년 10월 서울 목동아파트 14단지에 음식물쓰레기 고속발효기 시설이 설치됐을 때의 모습. `꿈의 쓰레기통'이라던 기대가 무색하게 실망만 던져주고 있다.)

서울대병원 구내식당에는 골칫거리 고철이 한대 있다. 5천여만원을 들여 설치해놨지만 지금은 무용지물이 돼버린 음식쓰레기 고속발효기가 그것이 다. 지난 95년 병원은 정부의 음식쓰레기 감량화정책이 본격화하자 당시 로서는 파격적으로 고속발효기를 들여놓았다. 담당자들은 하루에 7백㎏이 나 발생하는 음식쓰레기를 깨끗하게 처리할 희망에 들떠 있었다.


병원·식당마다 철거 소동

그러나 1년이 채 가기도 전에 희망은 사라지고 기계는 멈췄다. 식당은 물 론 주변 건물까지 감싸고 도는 심한 악취 때문이었다. 수분조절제, 발효 제, 전기료에 들어가는 한달 1백만원 이상의 비용도 무시할 수 없었다. 게다가 수분조절제를 넣으면 음식쓰레기가 줄어들기는커녕 더 불어난 상 태로 배출돼 쓰레기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났다. 어쩔 수 없이 그 이후로는 고속발효기를 돌리는 대신 서울 근처의 양돈업자에게 처리를 맡기고 있다. 돈도 안 들고 음식쓰레기도 자원화하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그러나 흉물스런 고속발효기는 내구연한이 끝나는 2000년까지는 계속 20여평의 식당면적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고속발효기의 부작용은 이곳만이 아니다. 대표적인 대형병원인 서울 송파 구의 서울중앙병원도 대형 고속발효기를 들여놨다가 몇개월만에 철거했다 . 인천 길병원도 마찬가지였다. 한국통신 구내식당의 발효기도 가동을 멈 췄고 서울 중계2동 아파트단지에서는 아예 철거했으며 서울시내 특급호텔 들도 고속발효기 운용에 실패했다. 지난해 말까지 전국에 보급된 고속발 효기는 2천여대에 달했다. 그러나 얼마나 멈춰져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고속발효기 품질인증을 준비하며 2년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고속발 효기 실태를 조사한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 홍성호 실장은 “90%는 고철 로 변해 있었다”고 밝혔다.

전체 생활쓰레기의 1/3을 차지하며 매립지 침출수의 주요발생원으로 지목 받고 있는 음식쓰레기 문제를 해결해줄 ‘꿈의 쓰레기통’이라고 불리던 고속발효기가 고철화하고 있는 이유는 다음 3가지 부작용 때문이다. 우선 심한 악취가 꼽힌다. 처음에는 괜찮다가 6개월만 지나면 참기 힘든 악취 가 난다는 게 사용자들의 말이다. 두 번째는 감량효과가 확실하지 않다는 점이다. 발효기를 거친 음식쓰레기는 입자가 적어져야 하는데 그대로 있 다. 또 침출수가 생기는 발효기인 경우 이 침출수를 다시 처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따른다. 퇴비나 사료 등 자원으로 재활용돼야 하는데도 양만 줄여 다시 매립하는 후처리 방식도 문제로 지적된다.


고속발효기 수요 폭발적으로 늘 듯

(사진/목동아파트 단지에서 모은 생쓰레기를 환경미화원이 수거하고 있다. )

이런 부작용에도 고속발효기의 수요는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생산업 체는 전국적으로 1백50여개. 업계가 추산하는 시장규모는, 다소 부풀려진 면이 있지만 올해 4천7백억원이라고 한다. 이는 당국의 음식쓰레기 감량 화정책 확대에 따른 것이다. 환경부는 음식쓰레기 감량화 의무업소를 내 년 1월1일부터는 하루 평균 급식인원이 1백명 이상의 집단급식소, 객석( 객실 포함)면적이 30평 이상인 휴게 및 일반음식점으로 확대한다. 이에 따를 경우 병원, 아파트, 급식학교, 농수산물도매시장, 호텔·여관 등 숙 박업소를 포함해 전국 6만2천여곳이 이 규정을 적용받게 된다. 이미 10월 1일부터는 하루 평균 급식인원이 5백명 이상의 집단급식소나, 객석면적( 객실 포함) 1백평 이상인 음식점은 의무업소로 지정돼 있는 상태다.

이들 업소는 음식물쓰레기의 수분함량을 75% 미만으로 감량하거나 퇴비화 또는 사료화하거나 소멸시켜야 한다(폐기물관리법과 동법 시행규칙). 한 편 이 법은 2005년 1월1일부터 특별시·광역시 또는 시지역에서 발생하는 모든 음식물쓰레기에 대해 소각·퇴비화·사료화·소멸화 처리 뒤 발생되 는 잔재물만을 매립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지금처럼 단순히 물만 짜서 는 매립할 수 없다.

환경부는 내년부터 이 규정이 지켜지면 현재 1만5천여t에 이르는 하루 발 생 음식쓰레기 가운데 20∼30%는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고 속발효기에 대한 수요도 폭발적으로 늘 수 밖에 없으나 수요에 걸맞은 기 기의 성능 확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현재 ‘고속발효기’라고 불리는 기기들의 정확한 명칭은 ‘음식물쓰레기 감량화 처리시설’이다. 품질인증 주체인 통산부 산하 생산기술연구원 부 설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에 따르면 ‘음식물쓰레기 감량화 처리시설’ 이란, 퇴비원료 또는 사료원료 등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음식물쓰레기의 발효와 건조를 목적으로 동력에 의해 작동되는 시설을 말한다.


소비자들은 혼란스럽다

감량화 시설은 다시 처리방식에 따라 고속발효, 고속건조, 고속발효건조, 소멸 등 크게 4가지 종류로 나뉜다. 수분만 줄이는 탈수기는 감량화시설 에 포함되지 않는데도 여러 종류의 이 기기들이 고속발효기라는 한 가지 이름으로 굳어져 불리는 데는 기기에 대한 환상을 확대재생산해낸 생산업 자들과 정확한 확인없이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탓이 크다.

고속발효식은 음식쓰레기에 수분조정제, 발효미생물군 등을 첨가하고 온 도 및 공기공급량을 조정해 퇴비 및 사료원료로 쓸 수 있도록 만드는 방 식이다. 다만 발효과정중 발효조 내부의 온도는 섭씨 70도를 넘어서는 안 된다. 고속건조식은 증기가열·전기가열 등의 방법으로 음식쓰레기를 건 조해 퇴비 또는 사료의 원료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 고속발효건 조식은 건조식과 발효식의 효과를 함께 보도록 했다. 발효과정이 포함될 경우 보통 발효제와 발효보조제가 쓰인다. 이때 발효제의 종류나 효과는 발효의 성패를 좌우한다. 마지막으로 소멸식은 오랜 시간을 두고 음식쓰 레기가 완전발효 소멸될 때까지 놔두는 방식이다. 각 업소들은 빠른 시간 안에 음식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주로 고속건조발효방식을 선호한다.

그러나 이렇게 종류가 다양한데도 대부분 업소는 각 방식을 정확히 이해 하지 못하고 있다. 업체들도 관리와 세부사항을 알리기보다는 무조건 완 벽 처리한다고 광고해 소비자들을 혼란케 한다.

지난 8월 동아실업이 낸 광고를 보자. “음식물쓰레기를 24시간 내 악취 없이 공기로 날려없애는 획기적인 음식물쓰레기 처리기가 개발되었다…” 는 식이다. 광고대로라면 어떤 음식물쓰레기도 이 기계에만 들어가면 하 루 만에 사라져 버린다는 얘기다. 완벽한 과장광고다. 이 업체는 정작 대 리점을 내려는 이들이 공장을 견학하자는 제의를 하자 선뜻 응낙을 못했 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속’에 숨어 있는 함정

(사진/팔당 상수원 지역 유기농가에 퇴비로 공급되는 도봉구 방학동 일대이 음식물쓰레기. 도-농 연계시스템을 통한 재활용 자원화에 대한 요청이 높다. )

이 자리에 참석했던 이아무개씨는 “이런 업체의 설명회를 듣고 대리점을 냈다가 퇴직금 수천만원을 고스란히 날려버린 명예퇴직자들을 여러 명 봤 다”고 귀띔했다. 생산업체의 난립이 새로운 사회문제까지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K마크 부여기관인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가 정한 음식물쓰 레기 감량화 처리시설규정에서 “음식물쓰레기를 퇴비원료 또는 사료원료 등으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라고 규정한 부분에 유의하라고 요구한다. 대 부분의 기기들은 감량화나 재활용의 구실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 이다. 서울시의회 우원식 의원은 “음식쓰레기 처리의 핵심은 자원화 가 능성에 있는데 자원화하는 시늉만 하다가 발효기로 방향을 잘못 잡은 것 ”이라고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 퇴비화의 원리와 고속이라는 개념은 애초부터 맞지 않 는다고 지적한다. 발효는 미생물이 담당하는 데 미생물이 단시간에 이뤄 내는 일이라는 게 없다는 것이다. 건국대 환경공학과 남궁완 교수는 “하 루 만에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만드는 발효기가 있다면 노벨상감”이라고 전제한 뒤 “현재 시중에 나오고 있는 기기들은 엄밀히 말해 어중간한 감 량화 처리장치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중에 고속발효기로 판매되는 기기 들을 보면 이르면 하루 만에 음식쓰레기를 퇴비로 쓸 수 있게 만든다고 광고하지만 바로 퇴비로 사용되는 경우는 없다. 특별히 에너지를 많이 투 입한다든가, 독창적인 발효제를 써야만 가능한데 이는 비용이 많이 든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속발효기에서 나온 음식쓰레기는 적어도 15일 이상 의 후숙(後熟)을 거쳐야 퇴비로 이용할 수 있다. 남 교수는 또 “학생들 에게 가르치는 퇴비화 이론교육 원서에도 입증되지 않은 기술들과 관련해 판매자들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고 각별한 주의를 환기시 켰다.

산업기술정보원 환경건설부의 연구보고서 <음식물쓰레기 처리 기술 및 처 리동향>에서도 “일본이나 우리나라 대부분의 퇴비화 장치(감량화 기기) 는 건조에 의존해 퇴비화를 하고 있으나, 퇴비화의 기본원리에 따를 때 외부에서 온도의 가온 없이 순수한 미생물의 발효열에 의해 퇴비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못박고 있다.


기계값 너무 비싸 업체에겐 큰 부담

게다가 단시간에 발효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발효제도 문제다. 대부분 일 본에서 수입해 쓰는 발효제는 우리 음식물쓰레기에 적합한지에 대해 아직 이렇다할 연구 성과가 나온 것이 없다.

그렇다고 고속발효기를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먼저 감량화 효과 로 매립되는 음식쓰레기양이 엄청나게 줄어들고 침출수 문제도 상당히 사 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런 효과는 고속발효기로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음식쓰레기의 감량과 재활용이라는 목적에 맞는 처리방법은 다양 하다. 문제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효과적인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 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고속발효기로 불리는 처리기기는 하루 1백㎏ 처리 하는 것이 보통 1천만원에 달한다. 6만여곳에 이르는 감량화 의무업소와 급식소에서 모두 기기를 사기에는 아직 우리나라 처리기기 시장이 너무 불안정하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당국은 고속발효기 구입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서울 시만 해도 올해 고속발효기 구입예산으로 52억원을 배정해놓은 상태다. 그러나 각종 부작용들 때문에 구청 담당자들이 눈치를 보느라 6월 말까지 는 한군데에도 구입하지 못하다가, 최근에야 강남구청 등 몇개 구청에서 아파트와 급식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들여놓기 시작하고 있다. 환경부와 정부당국은 음식쓰레기의 재활용과 자원화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말 뿐이다. 52억원을 고속발효기 구입에 쏟아부은 서울시지만 음식쓰레기 재 활용과 자원화를 위한 예산은 없다. 우리나라의 음식쓰레기 퇴비화비율은 아직 1% 미만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의 경우 하루 4천1백여t의 음식쓰 레기가 배출되지만 이 가운데 퇴비나 사료로 쓰이는 양은 15t뿐이다.

양천구청에서는 지난 9월26일 구청 옆 공원광장에서 아파트 대표와 음식 점 주인들을 모아놓고 고속발효기 전시회를 열었다. 음식물처리기기 설치 를 유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목동에서 두개의 음식점을 경영한다는 이경 연(39)씨는 “하루에 음식쓰레기가 1백50㎏이 나오는데 현재의 가격이라 면 기계 구입비만 1천5백만원이 든다는 얘긴데 30평, 50평짜리 음식점을 하면서 그런 비용을 쓸 수 있는가”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내년 1월1일이면 이씨와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수만명에 이를 것이다. 정부의 엄격한 기준 적용과 관리는 물론이고, 음식물처리기기 이외에 다 양한 감량화 방식의 개발이 선행되지 않는 한 각 음식점의 공연한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이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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