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캥커루 축구’여 안녕

(사진/이제 한국 축구는 과거 `운7 기술3'에서 벗어나 합리성과 과학성을 갖춰가고 있다. 9월28일 한-일전 모습.)

한국의 축구가 달라졌다는데 무슨 근거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

축구 전문가들은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한국 축구가 과거의 ‘ 운7 기술3’론을 벗어버리고 합리성과 과학성을 띠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체육과학연구원 축구담당 상임연구원 신동성씨 등 전문가들은 그동안 한 국 축구를 ‘머리없이 무조건 뛰는 캥거루 축구’였다고 지적해왔다. 일 선 감독들은 이론적인 바탕없이 그저 ‘나가 열심히 뛰어라’고만 해왔다 는 것이다. 이런 “주먹구구식 경기운영 방식이 차범근 감독을 통해 조련 된 대표팀에서는 현저히 줄어들었다”고 이들은 평가하고 있다.


무조건 뛰는 축구는 이제 그만

신씨 등 축구 전문가들은 지난 9월28일 한-일전에서 서정원이 넣은 동점 골(표1 참조)은 주먹구구식 한국 축구가 고질병을 극복한 전형적인 예라 고 말한다.

상대 진영 오른쪽 깊숙한 곳에서 이기형의 센터링과 최용수의 절묘한 연 결, 서정원의 돌고래 비약 뒤 헤딩슛. 축구에서 가장 흔한 득점장면이지 만 대본에 없는 대사를 읖조리는 애드립처럼 즉흥적으로 이뤄진 이런 골 장면이 카자흐전에서 2차례, 우즈베크전에서 1차례 등 모두 5차례나 나왔 다. 이런 전술이 이렇게 자주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한국 축구가 과학화됐 다는 증거라고 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신씨 등이 이렇게 말하는 데는 축구 선진 지역인 유럽 전문가들이 지난 8 4∼85년 영국과 독일 등 8개국이 펼친 유럽지역 국가대표 경기에서 나온 1백48골을 비디오로 분석한 결과에 근거를 두고 있다.

축구장 하프라인 한쪽 면을 72개 지역으로 나눠 득점 지역을 따져본 결과 (표2 참조) 전체 1백48골 가운데 75%인 1백11골이 페널티킥 거리인 9.15m 안쪽에서 나왔다. 나머지 11%는 14m 이내에서, 14%는 14∼17m거리에서 각 각 터졌다. 특히 1백11골 가운데 90%가 표2의 빗금부분인 59와 67, 68번 지역에서 터져나온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90년 이탈리아월드컵 때 황보관이 30m거리에서 시속 110㎞로 쏴 골 을 뽑은 캐논슛이라든지 한-일전에서 이민성이 일본 골문 20m에서 때려넣 은 역전 골 등은 한국 축구팬들에게 가장 통쾌한 골로 기억되고 있다. 그 러나 이런 슛은 보기는 좋아도 득점 가능성은 매우 낮다. 팬들에게 후련 함을 주기 위해 아주 낮은 득점 가능성을 무릅쓰고 중·장거리에서 뻥뻥 내지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그러면 한-일전 때 동점골을 만들어낸 이기형의 오른쪽 센터링은 어떤 의 미를 갖는가.

분석대상인 1백48골 가운데 76%인 1백12골(표3 참조)이 상대 골문 오른쪽 에서 차올려준 것이다. 반대로 왼쪽에서 차올려준 경우는 24%(36골)에 그 치고 있다.

이는 축구선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발이 오른쪽이기 때문이다. 오른발을 쓰는 공격수에게 왼쪽에서 공을 센터링하면 발디딤을 고치기 위해 자세를 수정해야만 한다. 자세를 바로잡는 동안 상대 수비수는 가로막기를 시도 해 슛팅 기회와 타이밍을 빼앗아 버린다는 것이다.


엉겁결에 들어간 건 단 두골

한국팀이 한-아랍에미리트전까지 최종예선에서 뽑아낸 10골중 9골이 상대 문전에서 4회 이내의 연결로 나온 것이다. 정확성 없는 무조건 패스로 인 한 골 결정력 저하와 역습 허용이라는 과거 한국 축구의 맹점을 극복했다 는 의미다.

이는 88년 유럽선수권대회 15경기에서 나온 32득점을 분석한 결과와도 맞 아떨어진다. 전체 32골 가운데 4회 이내 패스로 골과 연결된 경우는 30골 인 반면 과거 한국 축구처럼 문전에서 혼전을 벌이다 5∼7회 패스 끝에 엉겁결에 들어간 골은 단 두골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이와 함께 “한국 축구가 무조건 뛰는 축구를 탈피해가고 있 다”고 평하고 있다. 신씨는 “모든 운동에서 기초체력이 중요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실효성없이 줄기차게 뛰기만 하는 축구는 월드컵처럼 장 기간 레이스를 펼쳐야 하는 경기에는 별 실익이 없다”고 말한다.

지난 82년 영국의 스포츠역학 전문가 존 위더스가 축구선수의 운동형태를 분석한 결과(표4 참조)를 보면 축구선수들이 뛰는 형태 가운데 가장 많이 차지하는 것이 조깅속도로 뛰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후반 90분 동안 선수 들이 뛰는 거리는 약 12㎞ 정도이다. 이 가운데 최고 속도로 달리는 경우 는 6%(720m)밖에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축구선수는 5∼6초마다 달리기 속도를 변화시키거 나 방향을 전환하고 30초마다 15∼20m거리를 최고 속도로 뛸 뿐이라는 것 이다. 이는 기초체력에다 순발력과 리듬있는 뜀박질이 축구선수의 필요조 건이라는 말이다.

“한국팀이 이번 예선전에서 뛰는 모습을 잘 보면 상대를 지치게 하기 위 해 투입한 고정운을 빼고는 상당히 리듬있게 뛰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한국 축구가 바뀐 데는 차 감독의 축구 경력과 관련이 있다.

전문가들은 차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한창 활약하고 있을 때인 80 년대 초반 유럽 축구계에서는 미국 야구의 통계화를 본받아 축구를 계량 화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는 것이다.

차 감독의 축구는 이런 계량화를 통해 치밀하게 전술을 세운 뒤 상대를 공략해가는 유럽 축구를 체득해 한국 대표팀에 접목시킨 결과라는 것이다 .

강남규 기자/ 한겨레 스포츠레저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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