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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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경희대 교수·문학평론가
문화는 그 가장 넓은 의미에서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다. 사는 방식에는 먹고, 입고, 집 짓고, 사랑하고, 미워하는 방식은 물론 죽는 방식까지 포 함되고, 사고와 행태, 표현, 가치, 의식(儀式), 이데올로기 등 삶에 질서 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체의 양식과 체계들이 망라된다. 조금 달리 표현하 면 문화는 인간이 자연을 길들이는 방식,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 죽음을 길들이는 방식의 총체이다. 부족 또는 민족집단들을 때로는 현저하게 때 로는 섬세하게 차이짓는 것이 문화다. 문화적 보편이라는 것이 없지 않지 만, 이 보편은 언제나 특수를 통해 구현된다. 집 짓기는 문화적 보편이되 집 짓는 양식은 문화마다 다르다. 이런 차이는 특정의 부족/민족이 어떤 환경에서 어떤 적응방식, 생산양식, 사회체제를 발전시키는가에 달려 있 다. 문화적 차이가 민족집단의 문화정체성을 구성하고 문화정체성이 많은 경우 민족성 또는 민족정체성을 형성한다. 말하자면 문화적·민족적 정체 성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역사적 구성물이다.
사회변화 흐름 따르지 못하는 문화
문화정체성이 역사적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그것은 언제나 변화 가능성을 전제한다. 문제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된 문화 습관, 행태, 이데올로기 등은 생산양식과 사회관계의 변화에도 쉽사리 변하지 않는 관성과 내성을 갖는다는 데 있다. 사회변화의 시간과 문화의 시간은 같이 가지 않는다. 때문에 사회변화가 빨라지는 시대에는 그 빠른 변화의 속도와 느리게 움 직이는 문화적 관성 사이에 현저한 격차가 벌어지고 이 격차가 이른바 문 화적 지연(cultural lag)이다.
현대 한국인에게서 지적되는 많은 부정적 행태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지 연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산업은 근대화되고 사회는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었으나 근대 이전에 형성된 문화적 관습과 태도, 행동방식은 좀체 변 하지 않는다. 집단주의, 혈연주의, 가부장 이데올로기, 권력 추수주의, 배타성, 권위주의 같은 비합리적 행태들은 환경의 근대적 변화에도 근대 적 합리성의 문화는 배양되지 않은 데 크게 연유한다. 한국인이 사적 이 해관계와 공적 가치를 잘 구분하지 않는 것은 물론 도대체 공적 문제들 앞에서는 놀랄 정도의 무관심, 냉담, 마비증세를 보이고 토론과 비판을 기피, 억압하는 것도 합리적 시민문화의 부재 때문이다. 문화적 지연으로 얼른 설명되지 않는 것도 있다. 예컨대 현대 한국인은 정세변화에 무관심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민감하고 잘 적응한다. 자본주의 체제에의 급속한 적응, 세계화 시대의 파도 타기, 정보화의 기민성, 경험의 망각과 평가절 하 등은 그런 예이다. 그런데 잘 들여다보면 이 적응의 문화 구조는 여전 히 합리적이지 않고 현대적이지 않다. 게다가 자본주의의 가장 나쁜 문화 적 속성들, 민주주의의 부정적 요소들, 세계화 추세의 문화 획일주의 등 이 우리의 무비판적인 행태들과 재빨리 결합하여 이기적이고 천박하고 경 박하기 짝이 없는 ‘추악한 한국인’을 만들어낸다.
비판없는 적응이 경박함 낳았다
‘민족성’이라는 개념은 역사적 의미로 쓸 경우 외에는 극히 위험하고 근거 없는 것이다. ‘민족성은 불변이다’라는 말은 과거 일본 식민지배 자들이 “조센징은 할 수 없다”고 말한 것과 사실상 차이가 없다. 현대 한국인의 부정적 행태들은 불변부동의 민족성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비판 적 자기 성찰의 부재, 곧 합리적 시민문화와 비판적 시민교육의 부재에 관계된 문제이다. 문화비평이 할 일, 매체가 할 일의 상당 부분은 이 부 재를 메우는 작업이다.
자기성찰의 힘이야말로 가장 참된 의미에서 문화적 성숙성이다. 우리에게 는 부정적 문화요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 요소도 많고 전근대 문화 요소들이 전근대적이라는 이유로 모두 부정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 러나 긍정 요소만 보고 부정적인 것은 은폐할 때 민족은 소아병적 자기 도취에 빠진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나르시즘이 아니라 자기성찰 의 거울이다. 문화여, 거울 앞에 서라.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