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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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드로스닌은 이스라엘 총리 이츠하크 라빈의 암살 예언으로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예언은 점성술사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은 미래의 환영을 통해 미래를 투시했다. 특유의 예지능력을 바탕으로 했기에 증거가 있을 리 없었다. 어느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예언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비해 정보는 과학적 합리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언제든지 반박 가능하고 경우에 따라 쓰레기가 될 수도 있다. 최근 논쟁에 휩싸인 마이 클 드로스닌의 <바이블 코드>는 예언과 정보에 대한 기존의 통념을 무너 뜨리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 <윌 스트리트 저널> 기자 출신의 언론인 드로스닌은 성 경의 암호를 풀어 미래를 전망한다. 모세5경에 쓰인 헤브루어 30만4천8백 5자에서 ‘바이블 코드’를 찾아내는 것이다. ‘바이블 코드’는 헤브루 어 문자 사이의 간격을 지우고 만든 텍스트에서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 있는 단어를 모은 컴퓨터 프로그램의 숨은 정보다. 드로스닌은 컴퓨터 공 학을 이용한 통계학적 방법론인 엘리야후 립스 등의 ‘바이블 코드’ 연 구를 모세5경에 확대 적용해 놀라운 문자의 결합을 보여준다. 그에 따르 면 성경 속의 문자는 세계를 뒤흔든 수많은 사건을 명시하고 있으며 이는 미래를 예시하는 정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는 <바이블 코드>에서 히틀 러의 유대인 대학살, 케네디와 라빈의 암살, 걸프전, 슈메이커 레비 혜성 과 목성 충돌 등의 암호문을 풀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20세기 말에서 21세기 초에 걸쳐 이스라엘 지역을 중심으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다.
헤브루어 특성상 임의적 해석 가능
<바이블 코드>를 둘러싼 논쟁의 초점은 그 ‘정보’가 우연인가, 진짜 암 호인가의 여부다. 그것은 헤브루 텍스트의 완결성과 수학적인 방법론의 정당성에 달려있다. 성경 텍스트 자체에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수학적 전 제·가설의 설정과 코드 배열 과정에 조작 가능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물리학자로 립스와 함께 성경의 숨겨진 코드를 연구한 도론 위츠툼의 <바이블 코드>에대한 평가는 냉혹하다. “바이블 코드는 인간 존재의 본질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과학적 발견이다. 하지만 드로스닌의 책은 어떤 과학적 방법도 채택하고 있지 않다. 그 결과 코드 연구에 대한 학계의 신뢰성이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미래를 예견하는 데 바이블 코드 를 사용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의 수학자 브랜든 매케이는 ‘바이블 코드’의 방법론이 결과를 놓고 주관적 해석을 할 수 있다는 데서 문제를 찾는다. 그는 소설 <모비딕>에서 간디, 케네디 등의 역사적인 암살사건들에 관한 예언을 찾아냈으며 심지어 지은이 드로스닌 이 아테네에서 엘리야후 립스에 의해 살해된다는 내용도 있다고 주장한다 .
드로스닌에 대한 비판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게 모호한 해석이다. 글자 간의 관계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에도 임의대로 해석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드로스닌의 명예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다. 그는 이츠하크 라빈이 암살되기 1년 전에 미리 예언해 ‘바이블 코드’의 효용성을 인정받았던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의 수학자 실로모 스타인버그 와 알린 잭슨은 미국수학회지 9월호 서평에서 드로스닌의 주장을 모두 엉 터리라며 “드로스닌이 ‘암살할 암살자’로 해석한 문자는 ‘살인마’( 인간백정)라는 뜻도 있다”고 말한다. 심지어 라빈의 프로그램에 ‘연기 된’이라는 헤브루 문자가 있음에도 드로스닌의 컴퓨터 프로그램에는 지 워진 형태로 나타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런 논란은 헤브루 문자 의 특성에서 비롯된다. 헤브루어는 단어마다 여러 의미를 갖고 있어 코걸 이귀걸이식 해석이 가능하고, 자음으로만 이루어졌기에 적은 글자수의 낱 말은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바이블 코드>에 대한 논란에 대해 국내 수학계는 공식적인 반응을 보이 고 있지 않다. 가벼운 이야깃거리에 끼어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 만 완전히 검증이 끝나지 않은 통계학적 방법론이 성경의 예언을 뒷받침 하는 데는 불만스런 반응이다. 한국과학기술원 수학과 한상근 교수도 그 런 쪽에 서 있다. “헤브루 문자의 자음만을 찾아낸 다음 모음을 적당히 채워 넣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런 방식이라면 우리나라의 <정감 록>을 가지고 한국의 5천년 역사를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정감록>보다 훨씬 두꺼운 ‘모세5경’이 인류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바이블 코드’는 과학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다. 그럼에도 신학계는 이 논쟁을 거들지 않고 있다. ‘모세5경’은 하나 님의 구슬을 모세가 받아 적은 게 아니라 수백년에 걸쳐 단편적인 문서를 재구성한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드로스닌은 이런 견해와 달리 지금의 인 류보다 월등한 ‘제3의 지성체’가 시간을 초월해 존재했다며 종교적인 신비화를 꾀한다. 연세대 대학원장인 구약학자 박준서 교수는 “성경의 역사성을 훼손하는 지은이의 주장은 대중적 흥밋거리일 뿐이다. 모세5경 텍스트 자체에 인간의 여러 손길이 닿은 마당에 숨은 비밀 코드를 말하는 것은 부당하다. 통계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하려는 시도가 오래 전 부터 있어 왔지만 학계에서 인정받은 것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학계 공식반응 없어… 추리소설인가
얼마전 서울방송에서 방영한 ‘바이블 코드, 신의 예언인가’는 이러한 드로스닌에 대한 비판론에 근거해 제작된 프로그램이다. 서울방송쪽은 립 스의 논문 방식에 따른 컴퓨터 프로그램을 자체 제작해 드로스닌의 오류 를 지적하면서 의도적인 조작의 가능성을 강하게 암시했다. 드로스닌은 국내 방송의 비판에 대해 ‘무지의 소치’라는 태도다. 그는 출판사에 보 내온 회신 편지에서 “서울방송은 바이블 코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실험을 하는 오류를 범했다. 나는 바 이블 코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기 위해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다. 헤롤드 겐즈도 4백40시간의 실험을 했지만 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서울방송의 노력은 헛수고였을 뿐이다”며 불편한 심사를 드러냈다. 그는 또한 <바이블 코드>에 포함되지 않은 박정희, 마더 테레사 등을 등장시킨 것에 대해서도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모든 것이 코드화되어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이블 코드’가 전능하지 않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드로스닌은 ‘바이블 코드’를 통해 인류에게 닥칠 미래의 불행을 막고자 한다. 그가 미완의 연구를 적용한 데는 언론인이라는 신분이 작용했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 성과를 초월한 그의 도전의식은 현재로선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아 보인다. 설익은 ‘학설’을 ‘추리소설’로 만 들어 대중의 호기심만을 자극했기 때문이다. ‘바이블 코드’는 멀지 않 아 또다른 모습으로 독자들를 찾을 것이다. 드로스닌의 <바이블 코드>가 아닌 모습으로 말이다.
김수병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