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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로 여는 과학의 미래

오늘날 우리가 흔히 SF라 부르는 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하나의 문 학 장르로 수립된 것은 20세기 초 미국에서였다. 당시 미국은 발명의 세 기(Epoch of Invention)라 불리는 시대를 지나고 있었다. 이 시대의 특징 은 오늘날과는 달리 개인 발명가들의 역할이 국가의 기술적 발명력의 주 된 동력 구실을 했다는 점이다. 에디슨과 같은 직업 발명가와 라이트 형 제로 대표되는 아마추어 발명가들의 개인적인 발명은 그 이후 미국 산업 의 발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기업체가 돈을 대고 과학자나 발명가들 을 고용하는 기업 연구소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대규모 연구소가 탄생한 것은 원자력을 군사화시킨 2차 세계대전 무렵이 었다.

사이언스 픽션(Science Fiction)이라는 용어를 정착시키고 상업적으로 성 공시킨 최초의 인물로 평가받는 미국의 휴고 건즈백(Hugo Gernsback, 188 4∼1969)은 어린 시절부터 <해저 2만리>의 작가인 프랑스의 쥘 베른, <타 임머신>의 저자인 영국의 조지 웰즈의 작품을 읽고 자라났다. 그는 독일 의 명문 빈겐 공과대학에서 전기공학을 공부한 공학도였다. 새로운 건전 지 사업을 꿈꾸던 건즈백은 미국으로 건너가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라디오 판매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1908년에 라디오 판매사업의 일환으로 <모던 일렉트로닉스>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1911년부터 그 잡지에 과학소 설을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가 쓴 소설은 <랄프 124C41+>라는 제목이었다 . 이 소설은 2060년의 미래를 무대로 천재 과학자 랄프 124C41+가 애인과 벌이는 러브 로맨스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소설의 줄거리가 아니라 미 래에 다가올 과학문명에 대한 놀라운 전망이 이 소설에 담겨 있다는 점이 다. 여기에는 쌍방향 TV, 광섬유, 자기를 이용한 녹음기, 전송 신문 등 오늘날 사용되고 있거나 개발이 추진중인 숱한 기술과 발명품들이 선보이 고 있다. 이 잡지가 다른 회사에 매각된 뒤에도 건즈백은 <과학과 발명>( Science & Invention)이라는 잡지를 창간하고 정기적으로 과학소설을 게 재했으며, 1926년에는 세계 최초의 과학소설 전문잡지인 <어메이징 스토 리즈>(Amazing Stories)를 창간했다.

프랑스의 쥘 베른, 영국의 H. G. 웰즈, 잭 런던 등을 효시로 하는 SF가 발명의 세기에 미국에서 본격적으로 수립되고 1950년대에 이르면서 아이 작 아시모프와 같은 걸출한 과학소설가를 배출하며 황금기를 구가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미국에서 기업이나 국가의 대규모 연구소가 아닌 개 인 발명가들이 발명력의 주된 원천 구실을 하던 시기에 공학과 과학의 배 경을 가진 다양한 경력을 지닌 과학소설가들이 정력적인 활동을 했던 것 이다.

이 시기에 확립된 SF는 과학과 기술의 힘에 대한 확신, 미래에 대한 낙관 ,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문제해결의 구도 등의 미국적 특성들을 깊이 간직 하고 있다. 그리고 이후 세대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은 거의 모두 어린 시 절에 이런 과학소설을 보고 자라났다는 공통요소를 가지고 있다. <2001년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영국의 아서 클라크는 아폴 로계획이 실행에 옮겨지기 훨씬 전에 이미 <우주로의 서곡>이라는 작품에 서 달을 탐사하는 정교한 계획을 미세한 부분까지 수립했다. 그리고 오늘 날 사이버펑크라 불리는 미국의 독특한 과학문화는 그들의 SF 전통을 모 르고는 거죽밖에 이해할 수 없다.

SF가 다른 나라가 아닌 미국에서 하나의 장르로 수립되었고, 다른 시대가 아닌 발명의 시대에 개화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SF는 미국의 과학과 기술, 개인 발명가의 중요한 기여 등과 밀접한 관련을 가 지면서 수립된 미국 과학문화의 중요한 부분인 셈이다.

김동광/ 과학세대 대표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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