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격동하는 재벌/신세계그룹

세계 50대 유통그룹 노린다

(사진/신세계는 유통사업을 중심으로 금융 호텔 건설 정보통신 등 5대 힉샘사업군의 골격을 갖추고 있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야경.)

서울 충무로1가 대연각빌딩 17층 신세계백화점 기획실에는 파랑, 빨강, 초록색 점들이 가득 찍혀 있는 우리나라 지도가 한장 걸려 있다. 신계계 백화점과 이마트, 프라이스클럽의 출점 현황과 향후 출점 계획을 단계별 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이다. 빼곡이 들어찬 점들로 지도 는 시커멓게 보일 정도다. 종합유통서비스그룹을 선언한 신세계의 빠른 성장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다.


이마트 “소도시 모두 진출” 야심

신세계그룹이 삼성그룹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독자경영에 나선 것은 지난 91년 11월. 92년 6월에 신세계 창립 40주년인 2003년을 목표로 그룹의 중 장기비전을 담은 ‘비전-40’을 내놓았고 94년부터는 본격적인 사업확장 에 착수했다. 이후 불과 5년도 안 돼 계열사수는 2개에서 15개로 늘어났 다. 94년에는 해운대개발(해운대 조선비치호텔)과 디자인신세계, 95년에 는 조선호텔과 광주신세계백화점, 신세계종합금융, 신세계상호신용금고, 신세계푸드시스템이 새 식구로 들어왔다. 96년에는 신세계인터내셔널, 신 세계파이낸스를 설립했다. 올해는 지난 4월 삼성과 법적으로 완전분리되 면서 마치 날개를 단 듯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5월에 신세계I&C, 6월 에 신세계건설, 10월에 에스코코리아를 새로 설립했고 대주주 개인이 갖 고 있던 골프장 자유C/C도 정식 계열사로 편입했다.

신세계는 이로써 주력인 유통사업을 중심으로 금융, 호텔, 건설, 정보통 신 등 5대 핵심사업군의 골격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신세계의 영 토확장은 전혀 멈출 기미가 안 보인다. 유통부문은 백화점, 이마트, 프라 이스클럽, 전문점의 전국 네트워크를 더욱 확대해 점포수를 올해의 31개 에서 2003년에는 1백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백화점의 경우 오는 1 1월 인천점을 비롯해 진주, 강남, 천안, 산본, 부산, 수원, 대구점 등을 연차적으로 오픈한다. 2003년까지는 전국에 16개의 백화점 체인망을 구축 할 방침이다. 할인점인 이마트는 전국의 인구 20만 이상 도시에 모두 진 출한다는 복안 아래 점포수를 올해 12개에서 2003년에는 40개로 늘린다. 회원제 할인점인 프라이스클럽도 점포수를 지금의 서울 양평, 대구점 2개 에서 10개로 확대한다. 조르지오아르마니, 켈빈 클라인 등 해외명품 브랜 드를 수입판매하는 신세계인터내셔널은 전문점수를 올해의 10개에서 2003 년 34개로 늘리고 어패럴 사업에도 진출해 그룹의 수출입을 총괄하는 종 합무역회사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금융사업군에서는 1백만명의 회원수를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카드의 자산 을 밑천으로 이르면 내년중에 독립카드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그룹에서는 금융계의 칸막이가 사라지는 추세에 맞춰 인베스트먼트 뱅크형의 특화된 종합금융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방침이다. 증권가에서 기존 증권사와 투신 사의 M&A설이 돌 때마다 신세계는 단골멤버로 이름이 오르내린다. 건설사 업군에서는 신세계건설을 도급순위 50위 안에 드는 부동산개발 전문 건설 업체로 키운다는 계획이다.


“비전-40 앞당겨 달성하겠다”

신세계의 이런 야심은 오는 2003년까지 전체 계열사수 25개, 종업원 3만 명, 매출 15조원의 세계 50대 유통서비스그룹으로 도약하겠다는 목표로 집약된다. 자산기준으로 재계순위 39위에, 지난해 그룹매출이 2조원에 못 미쳤던 신세계로서는 쉽지 않은 목표다. 매출액으로만 보더라도 향후 7년 간 연평균 20% 가까운 성장을 지속해야 한다. 그러나 신세계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강성득 기획실 상무는 “다른 그룹들의 경우 중장기계획이 발표 1∼2년이 지나면 흐지부지될 정도로 계획과 실천 사이에 괴리가 크 지만 우리는 비전-40의 목표치를 애초 계획보다 1년 정도 앞당겨 달성하 고 있다”면서 “비전-40을 1년, 3년 단위로 보완하면서 유통사업의 출점 계획이 더욱 확대되고 있어 2003년 실적치는 목표를 훨씬 상회할 가능성 도 높다”고 말했다.

유통을 주력으로 하는 신세계에게 주변 경영환경은 만만치 않다. 전반적 인 경기침체와 함께 외국 거대유통자본과 삼성, 현대, LG, 대우 등 재벌 그룹들의 잇단 유통업 진출로 유통산업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 들어 진로와 대농이 잇달아 부도유예협약 적용을 받고 뉴코 아마저 계열사 통폐합과 보유 부동산 매각 등 자구노력을 펴고 있는 것이 국내 유통산업의 현주소다. 부산의 대표적 유통업체인 태화쇼핑이 부도로 쓰러지는 등 지방 군소업체들의 어려움은 더욱 심각하다. 이들은 안팎의 대자본 공세에 맞서 무리하게 점포수를 확대하다가 뒷감당을 못하거나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맥없이 무너진 사례들이다. 유통업계에서는 향후 몇년간을 국내 유통산업의 재편기로 보고 있다. 유통 전문가들은 향 후 3∼4년 안에 기존 유통업체와 재벌그룹 계열 및 외국계 유통업체의 절 반 가까운 숫자가 경쟁에서 탈락해 유통업을 포기하거나 아예 쓰러지는 대개편을 예고하고 있다.

유통대란 속에서 그 어느 기업보다 활발하게 점포확장을 지속하고 있는 신세계가 21세기 초 세계 50위 안의 유통그룹으로의 도약을 자신하는 비 결은 무엇인가. 신세계는 “신규 출점을 하면서 다른 유통업체처럼 부동 산에 집착해 직접 사들이는 대신 임차를 하는 효율 위주의 투자전략이 적 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임차방식의 출점전략은 전국 요지에 엄청 난 부동산을 사들여 다점포전략을 구사한 뉴코아와 크게 대비된다. 신세 계의 경우 본점과 영등포점, 천호점을 제외한 나머지 4개(인천점 포함)가 모두 임차점이고 내년에 서울 반포 호남·영동선 고속터미널 부지에서 문 을 열 강남점도 마찬가지다.


계열사는 많지만 매출 80%는 유통

(사진/상하이에 진출한 이마트는 개점 1년도 안 돼 하루 평균 2억원(한국돈 기준)에 육박하는 매출을 기록했다. 신세계백화점 상하이점 이마트 실내. )

임차전략은 유통업태의 다변화와 경기침체로 백화점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지 않는 시기에 톡톡히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금융기 관 빚으로 부동산을 사들여 백화점을 지은 뒤 금융비용도 감당하지 못하 고 보유 부동산마저 팔리지 않아 허덕이는 업체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 다. 임차전략은 초기 투자비가 덜드는 반면 계속해서 임차료 부담을 져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다. 신세계는 “임차료 부담은 남보다 앞선 유통시스 템 투자와 유통 사관학교라 불릴 정도로 우수한 전문인력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우위로 극복했다”고 말한다. 앞으로 유통산업의 경쟁력을 결정하 는 열쇠는 과거처럼 부동산이 아니라 유통시스템과 전문인력의 파워라는 것이다. 백화점의 성장세 둔화를 예상하고 할인점, 전문점 등 신유통업태 에 남보다 앞서 선(先)투자를 한 것도 성공의 한 요인이다. 국내 최초의 할인점인 이마트와 프라이스클럽이 신세계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으로 이미 40% 선에 이르고, 앞으로는 50%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백화점에만 안주했던 유통업체들이 할인점 등 신유통업태 투자 시기를 놓쳐 고민하고 있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신세계가 유통 외에 금융, 호텔, 건설, 정보통신을 핵심사업군으로 키우 고 있는 것에 대해 다른 그룹들의 문어발식 사업다각화와 똑같은 길을 걷 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신세계는 금융, 건설, 정보통 신 사업은 철저히 주력사업인 유통과의 연관 속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무 차별적인 사업다각화와는 전혀 차원이 다르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신 세계건설과 디자인신세계는 남들처럼 토목이나 아파트 건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분야의 점포 개발에 관련된 부동산개발과 인테리어 설계 및 시공, 디스플레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보통신도 앞으로 유통산업은 유통시스템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시 스템 메인터넌스, 소프트웨어 유통, 인터넷을 통한 사이버 쇼핑몰사업 등 을 겨냥하고 있다. 금융산업은 그룹 체제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빠질 수 없는 부문이다. 결국 신세계의 5대 핵심사업군은 유통을 정점으로 금융, 건설, 정보통신 등이 뒤를 받쳐줌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구조 로 짜여져 있는 셈이다. 나머지 호텔사업의 경우도 서비스사업이라는 측 면에서 유통부문과 상호연관성이 있고, 향후 영업전략도 직접 호텔을 짓 는 대규모 신규투자보다는 지방 호텔과의 경영 제휴를 통해 체인망을 확 대하는 방향으로 설정하고 있다. 신세계는 이런 점에서 외부에서 자신들 을 다른 재벌그룹들과는 차별성을 갖는 유통서비스전문기업으로 인식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박주성 신세계백화점 홍보실장은 “계열사는 15개에 이르지만 전체 그룹 매출의 80% 이상이 유통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 한다.


“30대 그룹 가능성 부담스럽다”

임차전략을 통한 내실경영의 영향으로 신세계는 매출 규모에 비해 자산의 크기가 작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외부차입에 의존한 몸집 불리기 경쟁에 초연하다는 것이다. 신세계의 부채비율은 160% 정도로 30대 그룹 평균치인 449.4%(금융·보험 포함)의 1/3선에 불과하다. 신세계의 한 임 원은 “국내에서 도토리 키재기 같은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 는다. 회사정리절차가 진행중인 기아와 진로, 대농의 추락으로 조만간 30 대 그룹에 속할 가능성이 있다는 예상에 대해서도 오히려 부담스럽다는 반응이다. 30대 그룹에 진입할 경우 계열사 채무보증이나 출자 한도규제 를 받는 등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것이다. 유통시장의 개방과 대자본의 공세 속에서 유통전문그룹을 추구하는 신세계의 앞날은 어쩌면 우리 유통 산업의 미래와 궤를 같이 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곽정수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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