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권리 찾기
|
|
(사진/지난 9월27일 열린 총회에 참석한 자원봉사자들. 이상대 이신곤 전부영 문수복 김성배 김난영씨(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현장조사활동을 강화하는 등 작은권리찾기에 더욱 힘을 모을 계획이다.)
서울 종로구 안국동 안국빌딩 5층.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의 움직임이 부 산하다. 수화기를 내려놓기 무섭게 다시 울려대는 전화벨은 아직도 우리 사회에 바로잡아야 할 일이 많다는 증거다.
지난 4월 ‘행복하게 살아갈 본연의 권리를 되찾고 부패와 황금만능주의 에 병들어 가는 우리 사회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시작된 작은권리찾 기운동은 6개월여 동안 1천60여건의 상담을 통해 일상에서 짓밟히는 작지 만 소중한 권리들을 되찾으려는 시민들의 노력에 힘을 보태왔다.
전화나 팩스 편지 등을 통해 들어오는 때로는 억울하고 때로는 어처구니 없기까지 한 사연들을 듣고 상담카드를 작성해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고 다시 결과를 상담자들에게 알려주고 하는 일들은 온전히 자원봉사자들의 몫이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25명. 머리 희끗한 노 신사에서 재기발랄한 97학번 새내기 여대생까지 다양하다.
이들이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하게 된 동기도 다양한 직업만큼이나 천차만 별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맏형격인 이신근씨는 작은권리찾기운동 초기부터 상담을 맡아온 베테랑. 서울시를 상대로 상수도관 교체 비용을 소비자에 게 부담시키는 것이 부당한 것이 아니냐는 상담을 계기로 시작한 활동이 지금은 1차 전화상담뿐 아니라 2차 답신까지 책임을 질 정도로 베테랑이 되었다. 오랜 공직생활의 경험에서 나오는 합리적인 판단과 해박한 법률 지식까지 겸비해 자원봉사자들로부터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문수복씨의 경우도 작은권리찾기와 상담을 계기로 한 식구가 되었다. 아 파트 앞을 가로막는 대형건물 건설로 인한 일조권 침해를 저지하기 위해, 좀처럼 모이기 어렵다는 중산층 아파트 단지의 주부들을 한 자리에 모아 허가절차의 부당성에 항의하는 시위까지 벌이기도 했던 문씨. 그의 이야 기는 <한겨레21> 지면(제166호 97년 7월17일자)에 소개되기도 했다. 문씨 의 투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어처구니없는 모함과 소문들이 문씨를 괴 롭히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얻어진 경험들은 문씨와 한아름아파트 주민 들만의 교훈에 그치지 않는다. 상담전화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지키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느릿하면서도 정겨운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김성배씨의 목소리는 매 주 수·목요일에 들을 수 있다.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기 위해서는 시민 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고 믿는 김씨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에도 초창기부터 활동해 온 시민운동 예찬론자. 갑자기 들이닥칠 병마로 목발없이는 걸음도 힘든 상태지만 열정에선 둘째 가라면 서러운 자원봉사 자다.
한없이 늘어지는 상담자들의 하소연에도 김씨는 짜증을 내지 않는다. 그 것은 상담자 혼자만의 억울한 일이든 아니면 진짜 잘못된 일이든 다 들어 주는 것 자체가 상담자의 응어리를 다소나마 풀어주는 길이라고 믿기 때 문이다. 전화상담으로 모자라 별도로 상담자와 만나 5시간이 넘도록 이야 기를 들어주었던 일화와, 식당에서 10일 동안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한푼 의 대가를 받지 못했다는 상담전화를 받고는 곧장 달려가 급여를 대신 받 아 준 일은 다른 봉사자들의 귀감이 되고있다.
<한겨레21>의 애독자 상당수도 힘을 보태고 있다. 컴퓨터에 관한 한 해결 사로서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전부영씨와, 막내가 중학생이 되면서 생긴 여유를 함께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쾌척하고 있는 김난영씨, 같은 학과 친구 3명이 함께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한 새내기들도 <한겨레21>를 인연 으로 자원봉사 대열에 합류했다. 최근에 사람 사는 것을 배우고 싶다며 자원봉사자가 된 이상대씨도 <한겨레21>의 애독자다.
주부보다는 ‘김난영’이란 이름 석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김씨의 요즘 관 심사는 컴퓨터. 매사에 똑 부러지는 성격으 분명한 일 처리와 책임감으로 나타난다. 상담을 받을 때는 마치 누이처럼 혹은 언니처럼 부드러워지는 게 특징이다.
고장난 컴퓨터 수리에서 통신관리까지 척척박사인 전부영씨는 최근 경사 를 맞았다. '낙타가 바늘구멍 지나기'라는 취업의 문을 보란 듯이 통과한 것이다. 사회에 무엇인가 봉사하기 위해서 작은권리찾기에 뛰어든 전씨는 ‘해야죠’로 통한다. 어떤 부탁이든지 거절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자원봉사자들을 긴장시키는 것은 같은 동료인 홍혜경씨의 재판. 양 호교사로 취직시켜 준다는 말만 믿고 근무하던 병원까지 그만두고 기다렸 지만 7년이 넘도록 발령은커녕 가져간 자격증까지 돌려주지 않자 소송을 제기, 첫 재판이 10월20일 열린다. 코앞에 닥친 재판에도 그는 여전히 상 담전화를 받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끊임없이 억지를 부리는 상담을 받을 때가 가장 괴롭다. 다양한 사례를 들어가며 설명해 보지만 대부분 막무가내로 해결해 달라고 달라붙기 일쑤다. 아무런 법적 지위가 없어 필요한 조사활동 등을 못하게 될 때도 속이 상한다.
이제 6개월, 많은 사건과 상담들이 작은권리찾기를 통해 해결되거나 상담 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 가운데 있지도 않은 생활지도사시험 회원모집 피해(163호 97년 6월26일자)나 버스전용차선 문제, 과도한 주차 위반 단속으로 입은 피해 등 40여건의 사례는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에서 집단적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겪을 수 있는 사례이 기 때문이다.
작은권리찾기운동이 어엿한 시민운동으로 자리잡을 때까지는 물론 이런 운동이 더이상 필요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가 맑아질 때까지 품앗이를 아 끼지 않겠다는 것이 자원봉사자들의 각오다.
장소영/ 작은권리찾기운동본부 간사
© 한겨레신문사 1997년10월16일 제 1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