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다시 눈을 뜨고 자유를 보라

전시장은 혼란스럽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라는 어린 시절 자습시간마다 외워댔던 국민교육헌장 내용과 ‘새마을’ 등 권위주의의 한장을 장식했던 단어들이 헐렁한 천 위에 늘 어져 있다. 도대체 뜻을 해독할 수 없는 문자들, 제멋대로 휘갈긴 듯한 오색물감 긋기.

오는 10월14일까지 서울 종로구 원서동 원서갤러리(02-765-2705)에서 열 리는 이필두(41)씨의 작품전 <To Freedom>에 들어서면 어떤 이는 혼란을 느낄지도 모른다. 우리의 의식체계를 둘러싸고 있는 기존의 것들을 장난 스러이(?) 마구 집어던져 버렸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게 뭐야”라는 말 이 튀어나올 법하다.

그러나 한번만 눈을 감았다 다시 뜰 때 나타나는 것은 무한한 ‘자유’다 . 문명의 이기에 길들여지고 다듬어진 세련된 도시인의 지식보다는 맨발 로 황토를 밟고 뛰어노는 어린아이의 천진스런 모습. 비디오 작품 <I am not afraid>에선 이씨의 자유에 대한 갈구가 전편을 관통한다. 그는 끊임 없이 “나는 두렵지 않다”라고 썼다가 다시 지운다. “역사는 도전과 응 전으로 이뤄진다”는 토인비의 말처럼 이씨는 ‘자유’에 대한 자신의 신 념과 지향에 대해 끊임없이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고 있는 걸까?

이씨는 86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92년 미국 유학길에 올라 뉴욕대 대 학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컴퓨터아트를 공부하다 귀국했다. 그는 “말이 기호가 된 글씨가 너무 직접적인 의미전달로 다가오는 것이 구속으로 느 껴졌고, 사회전반에 흐르는 형식주의에 진실된 돌을 던지고 싶은 마음 때 문에 이런 전시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컴퓨터로 깨져나온, 의미를 알 수 없는 글씨체를 모은 문자모음은 그가 발견한 또하나의 진실일지도 모 른다.

퍼포먼스 작품 <From Oct.1 to Oct.14>에서 그는 사각의 프레임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기를 두드린다. 몰두해서 타자를 치고 있지만, 그가 찍어내 는 문자들은 모두 한 가지 기호로 변해서 찍혀지고, 시간의 흐름과 더불 어 계속된 기호의 나열만이 남는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