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신한국당 우리도 가난해요"

(사진/신한국당 후원의 밤. 부족한 재원을 당비와 특별헌금 등 공식적인 방법으로 충당한다는 계획이다.)

신한국당에 돈이 쬐끔씩 돌고 있다. 신한국당은 지난 한가위 직전 2백53 명의 전국 지구당위원장들에게 1천만원, 전국구 의원들에게는 5백만원씩 의 ‘오리발’을 지급했다. 또 전당대회 다음날인 10월1일에는 사무처 직 원들에게 각각 50만원에서 1백만원씩의 특별보너스가 내려갔다. 둘다 워 낙 오랜만의 일들이어서 여권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드디어 ‘돈’을 쓰 기 시작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돌았다. 그러나 신한국당의 한 고위당직 자는 “한가위 전 중앙위원들이 낸 특별당비 20여억원과 3/4분기 국고보 조금 등을 아껴 사기진작 차원에서 지구당위원장과 사무처 직원들을 모처 럼 격려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지정기탁금도 후보가 인기 있어야…”

집권 여당인 신한국당의 돈 사정은 야당에 비해서는 아직 여러모로 낫다 고 볼 수 있다. 국고보조금(연간 97억여원)이나 당비, 후원회비가 야당에 비해 훨씬 많은 데다 매년 수백억원에 달하는 지정기탁금(96년 3백40억원 )을 독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돈 사정은 92년 대선 때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라고 할 만큼 어렵다는 게 선거 관계자들의 얘기다. 당 금고도 비어 있을 때가 많고 올 들어 때때로 사무처 직원들의 월급 마련에도 애를 먹을 정도였다 는 것이다.

당만 그런 게 아니다. 대선 후보 주변도 돈이 없다고 아우성이다.

이회창 총재의 한 측근은 지난 9월 말 저녁을 먹은 뒤 은행신용카드를 내 밀었다가 창피를 당했다. 카드 빚이 밀려 불량거래자 명단에 올랐기 때문 이다. 이 총재의 다른 한 측근은 “밥값에서 술값까지 모든 비용을 순전 히 내 주머니에서 지출하고 있다”며 “요즈음은 솔직히 사람들 만나는 게 겁날 지경”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 본인도 상당히 ‘궁하게’ 생활한다는 게 주위의 설명이다. 얼마 전 한 정계원로의 출판기념회장에서 있었던 일. 이 총재의 ‘금일봉’ 봉 투를 전달하기 전 측근이 혹시하고 봉투를 열어보자 50만원이 들어 있었 다. 이 측근은 ‘그래도 집권당 후보인데 정계원로에 대한 대접이 너무 소흘하다’ 싶어 자기 지갑에서 50만원을 더 넣은 뒤 봉투를 내밀었다고 한다. 행사가 끝난 며칠 뒤 두 유력 야당 총재들의 금일봉에는 2백만원에 서 3백만원이 들어 있었다는 소문이 들렸다.

이처럼 여당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궁핍하게 지내는 이유는 ‘비공식적인 ’ 정치자금이 거의 차단된 게 주요 원인이다. 김 대통령이 집권 초기 일 체의 정치자금 수수 거부를 선언한 뒤 청와대에서 관행적으로 매달 당으 로 내려오던 수십억원의 당 운영비 지원이 완전히 끊겼다. 당연히 역대선 거에서 수천억원대에 달했던 청와대의 대선특별자금 지원도 이번에는 없 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리고 대선 후보가 ‘개인적으로’ 마련하던 정치자금도 별로 없는 것으 로 알려졌다. 이 총재는 현재 당에 매달 1백만원의 당비와 전당대회나 지 구당대회 때의 금일봉(1백만원에서 1천만원) 외에는 일절 돈을 내놓지 않 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후보가 선거자금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변 의 ‘권고성 압력’에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고흥길 특보는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어렵더라도 반드시 저비용의 정치를 실천하겠다 는 생각”이라며 “과거와 같이 경제인들로부터 후보나 주변인사가 직접 대선자금을 받거나 만드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당 지도부는 위험성이 따르는 비공식적인 자금보다는 합법적인 정 치자금을 늘리는 방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고보조금(선거 특별보조 금 96억원 예상)이나 후원회비(최대 3백억원 사용 가능)와 달리 모금한도 가 없는 지정기탁금과 당비 수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재벌 재정위원들의 특별당비에 기대

특히 30대 재벌 가운데 20개 재벌 경영인이 신한국당 재정위원으로 가입 돼 있는 등 대부분 기업들이 신한국당과 직접적인 연계를 갖고 있어 이들 을 잘 ‘장악’하면 지정기탁금이나 특별당비 등의 형식으로 아쉽기는 하 지만 웬만큼의 자금은 조달이 가능하리라는 판단이다. 하지만 이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지 않을 경우 이 부분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후보의 승리 가능성이 낮을수록 기업들이 이른바 ‘보험금’ 이상의 뭉칫 돈을 투자하려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돈 씀씀이를 줄이는 것뿐. 정치자금법 및 선거법 개정 등 국회에서 진행중인 정치관계법 개혁작업에 신한국당도 역시 큰 관심을 보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