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가난한 자만이 청와대에 간다?

(사진/"정치공작을 조심하시오." 지지율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국민회의는 `은밀한' 정치자금 제공을 거절하면서 내핍을 감내하고 있다.)

최근 여권의 한 고위관계자는 “재벌들이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에게 줄을 대려고 애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김 총재가 각종 여론조사결 과 지지율이 1위를 질주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한선으로 봤던 30%를 돌파 한 뒤에도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여 당선가능성이 점차 현실성을 띠어가자 재벌들이 앞다퉈 ‘보험금’을 내려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김 총재 가 지난달 고흥문 전 국회의장 출판기념회 때 3백만원을 ‘쾌척’해 2백 만원과 1백만원을 금일봉으로 낸 김영삼 대통령, 이회창 대표보다 훨씬 씀씀이가 컸다는 점을 간접증거로 들었다.

야당이 지정기탁금제 이용 요청

이와 함께 최근 여의도 주변에는 한 재벌그룹이 김 총재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하려 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ㅅ그룹이 30억원을 정치 자금으로 주려 했으나 김 총재가 “돈을 주려면 떳떳하게 지정기탁을 하 라”며 거절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그룹이 지정기탁을 심각히 고려하 고 있다는 소문마저 돌고 있다. 실제 정·재계에서는 경기침체와 한보사 태 여파로 정치권의 돈가뭄이 어느 때보다 심각하지만 적어도 국민회의만 은 ‘따뜻한’ 겨울을 맞을 것이라는 분석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국민회의 당직자들은 김 총재의 집권가능성이 커지자 돈이 몰리고 있다는 소문에 대해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고 있다. 김충조 사무총장은 “지난 한가위 때 당직자들에게 귀향비조차 제대로 주지 못했 을 정도로 살림이 어렵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실제 국민회의가 한가위 때 귀향활동비로 당원에 지급한 돈은 부장급 이상 40만원, 사무원 30만원 정도에 불과했다. 한 고위당직자는 “지난달 12일 선관위에서 3분기 국고 보조금 18억4천4백만원을 받자마자 사채 1억원과 거래업체 빚 2억원부터 갚을 정도로 근근히 버티고 있다”며 “한가위 전 김 총재가 3억원을 내 놓았으나 당 운영비에 큰 보탬은 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정치권 일부에서는 국민회의가 재벌들의 ‘헌금’을 일부러 거 부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청와대와 여당이 정치자금을 미끼로 모종의 공작을 벌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김 총재가 정치자금 제공의사를 밝힌 재벌에 지정기탁을 요구했다는 소문도 이런 분석을 토대 로 한 것이다. 여기에는 지난 92년 대선 때 노태우 대통령으로부터 정치 자금 20억을 받았다 곤욕을 치른 경험도 작용했다.

이와 관련해 김 총재는 최근 측근들에게 ‘돈의 유혹’에 넘어가지 말 것 을 거듭 당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총재의 한 측근은 “지난달 말 낯선 사람이 고향후배라며 찾아와 돈을 주려 했으나 밥값까지 내가 계산하고 돌려보냈다”며 “빚을 지면 졌지 남의 돈을 받지는 않겠다는 게 당직자 들의 요즈음 생각”이라고 말했다.

집권가능성이 극히 희박한 자민련의 살림살이는 국민회의에 비해 훨씬 어 렵다. 매분기 15억3천만원의 국고보조금으로는 당 운영도 숨이 가쁘다는 게 당 관계자의 얘기다. 특히 DJ로의 후보단일화가 기정사실로 굳어져감 에 따라 김종필 총재의 대선출마 가능성이 희박해지자 자민련은 기업들의 ‘보험금’에 대한 기대를 거의 않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DJ로 후보가 단일화돼 김 총재가 출마않을 경우 국고지원액 60억원 을 못받게 돼 당 운영이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당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자민련은 대신 DJP 단일화가 이뤄지고 집권가능성이 높아지 면 그때는 기업들도 내각의 50%를 차지하게 될 자민련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자위하고 있다.

민주당 “당사 팔아야하나…”

꼬마정당인 민주당의 자금사정은 ‘목불인견’ 수준이다. 이기택 전 총재 가 당에 비축된 상당수의 ‘실탄’을 지난번 포항보선 때 거의 소진한 데 다 지금의 조순 총재는 지난 11일 치러진 후보추대 전당대회 경비 일부를 대긴했지만 돈을 ‘만드는’ 데는 솜방망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에서 는 조 총재의 대선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당사라도 팔아야 하는 게 아니 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무소속 이인제 전 경기지사는 대선활동비나 신당 창당비용을 어디서 조달할지가 관심사이다. 비축자금이 있다는 소문도 있으나 이 후 보쪽은 ‘정치적 음해’라며 펄쩍 뛴다.

권복기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