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
|
(사진/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결혼식 사진 병풍. 오백진씨는 25년 동안 주례를 맡으며 받은 사진으로 병풍을 꾸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키가 큰 사람은 누구일까? 현재 살아 있는 한국인 가 운데 220cm가 넘는 사람은 네댓명에 불과하다. 그 중 가장 키가 큰 사람 은 231cm인 남복우(44)씨다. 몸무게가 130kg이고, 4백mm짜리 신발을 신는 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몸무게가 가장 많이 나갔던 신생아는? 지금 초등학교 씨름선수로 활약하는 김태중(10)군이다. 87년 10월 첫울음을 터 뜨렸을 때 몸무게가 6.5kg이었다. 보통 신생아의 2배를 넘는 무게다.
이런 한국의 최고를 집대성한 책이 <기네스북>이다. 이른바 세계의 최고 최초 최대기록을 모은 <기네스북>에 한국 기록이 붙어나온 게 벌써 10년 째다. 지금까지 7백여명이 한국의 최고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기네스 북>에 오른 기록은 단순한 기록에 그치지 않는다. 거기에는 그런 기록에 이르기까지 별난 사람들의 별난 사연들이 숨어 있다. 남다른 애정과 끈기 와 도전으로 점철된 색다른 인생들이다.
44년째 쓴 빛바랜 일기장 80여권
박래욱(60)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기를 써오고 있다. 자그마 치 44년째다. 53년 10월23일 일기를 쓰기 시작해 지금까지 하루도 빼먹은 적이 없다. 2백쪽짜리 대학노트만한 크기의 일기장이 80여권에 이른다. 세월이 길다보니 일기장의 종이질이 무지개처럼 각양각색이다. 두께가 얇 아 바람만 불어도 찢어질 것같은 화선지에서 싯누렇고 두툼한 갱지, 그리 고 지금의 날렵하고 윤기나는 흰 종이에 이르기까지 천차만별이다. 책꽂 이에 가지런히 꽂힌 일기장을 보노라면 우리나라 종이의 변천사가 한눈에 펼쳐진다.
박씨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 사연은 6·25전쟁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인민군들에게 부모를 잃은 박씨는 동생과 함께 시골 큰아버지집에 몸을 맡겼다. 전쟁 직후라 모든 게 부족한 시절이었다. 그런데도 이제 일곱살 배기 동생은 철없이 원하는 것을 보채기 일쑤였다. 그런 동생이 어느날 이웃집에 놀러갔더니 주인아저씨가 바리깡을 들고 자식들 머리를 깎아주 고 있더란다. 이발소에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읍내까지 나가야 했던 때라 동생의 머리는 더부룩해 있었다. 행여 자기 머리도 깎아줄까 멀뚱멀뚱 쳐 다보고만 있는 동생을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의자에 앉히고 머리를 깎아줬 다. 그게 하도 고마워 일기를 쓰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1953년 10 월23일 일요일의 일이었다.
박씨의 일기는 작은 역사책이다. 4·19혁명과 5·16쿠데타, 그리고 80년 5월의 광주항쟁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또박또박 기록하고 있다. 80년 5월19일의 일기는 지금 펼쳐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날씨 구 름. 새벽 3시에 문득 잠에서 깼다. 집사람과 아들은 쌕쌕거리며 세상 모 르고 잠들어 있다. 공기는 맑고 청정한데 간밤에 들은 매형의 말이 뇌리 에서 떠나질 않는다. 광주에선 공수부대원들이 학생들을 마구 죽이고 있 다고 한다. 시민들은 세상에 이럴 수가 있느냐며 울부짖는다고 했다. 학 생들을 대검으로 찌르고 여학생은 옷을 벗겨 길거리에 세우고 아비규환이 란다. 말만 들었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나라가 심히 걱정이구나.”
박씨는 “펜을 들 힘이 없을 때까지 일기를 써나갈 작정”이라고 큰소리 를 친다. 대략 80세까지 산다고 보고 65년에 이르는 세월을 기록으로 남 길 생각이다. 마침 며느리가 16년째 일기를 써오고 있으니 그때 두 사람 의 일기를 합치면 1백년 역사를 담는 셈이다. “처음 일기를 쓸 때 이렇 게 오래 갈 줄은 꿈에도 몰랐지. 사실 일기를 쓴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거든. 귀찮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그런데 일기를 쓰니까 좋긴 좋더구만. 내가 우리나라 최고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
34세부터 주례, 사진으로 병풍 꾸며
오백진(60)씨의 집에는 세상에 유일한 병풍이 있다. 25년 동안 주례를 맡 은 결혼식 사진들을 모아 만든 것이다. 71년 처음 주례를 서기 시작해 97 년 4월까지 1천8백50여쌍의 부부를 맺어준 열매다. 신랑신부들이 주례를 서준 데 대한 보답으로 보내온 사진들을 하나둘씩 모으다 보니 10자병풍 1개, 8자병풍 3개, 6자병풍 1개가 꾸며졌다. 거기에 들어간 사진이 1천3 백50여장이고, 아직 병풍으로 만들지 못한 사진이 1백여장에 이른다. 우 리나라에서 주례사진을 가장 많이 갖고 있다는 기록보다 값진 세월의 조 각들이다.
첫 주례는 정신없이 치렀다. 서른네살 때였다. 어느날 친구가 찾아와 “ 동생이 결혼하는데 돈주고 주례를 살 형편이 못되니 네가 좀 해달라”고 통사정을 하더란다. “네가 결혼식 사회를 많이 봤으니 주례도 잘 설 것 아니냐”는 게 이유였다. 할 수 없이 서른살짜리 신랑을 앞에두고 주례사 를 읊었다.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뭐 그런 식이었던 것 같 다. 그렇게 맺어준 부부가 낳은 아들이 조만간 결혼을 한단다. 그 결혼도 주례를 서게 돼 있어 오씨로선 2대에 걸쳐 부부의 연을 맺어주는 행복을 맛보게 됐다.
그는 “주례를 많이 서다보니 하객들을 다루는 비법을 터득했다”고 귀띔 을 한다. 주례를 볼 때 하객들이 떠드는 걸 막는 그만의 노하우다. 우선 신랑을 돌려세워 큰절을 하게 한다. 하객의 70%는 잠잠해지게 마련이다. 그래도 소란스러우면 이단계 처방을 쓴다. “옛말에 결혼식이 조용해야 신랑신부가 잘 산다”고 으름장을 놓는 것이다. 하객의 95%는 입을 다문 다. 이제 마지막 무기를 쓸 때다. 경험으로 보아 성공률 100%다. “떠드 는 사람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주세요.”
오씨의 주례사는 사정에 따라 바뀌지만 두가지 만큼은 꼭 빼먹지 않는다. 첫째 “남편이나 아내를 남과 비교하지 마라.” 반려자의 약점을 공연히 들추지 마라는 얘기다. 둘째 “하고 싶은 얘기가 있더라도 95%만 하고 5% 는 남겨두라.” 나머지 5% 속에 상대를 해치는 말이 숨어 있기 때문이라 는 것이다. 오씨는 그래서 “결혼은 하기보다 지키는 게 어렵다”고 강조 한다. “주례를 선 부부가 파경을 맞으면 괜히 죄스러운 기분이 듭니다. 주례를 선다는 게 꼭 부모가 되는 것과 같아요.”
복권 27만여장 모아… 지하철표 수집가도
(사진/1969년 처음 발행된 복권부터 최근 복권까지 27만여장의 복권을 모은 황유근씨. )
황유근(59)씨는 복권 박사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복권을 수집하면서 복권에 도가 텄다. 황씨가 28년 동안 수집한 복권은 27만여장에 이른다. 69년 처음 발행된 1백원짜리 주택복권부터 최근에 나온 또또복권, 더블복 권에 이르기까지 복권이란 복권은 죄다 그의 손 안에 있다. 그러면서도 욕심에 끝이 없다. 커피 한잔 맥주 한병 덜 마시고 복권을 산다는 게 그 의 생활철칙이다. “복권사면 집없는 사람 집얻어 좋고, 돈없는 기업 돈 생겨 좋다”는 거다. 그는 아예 명함에 ‘복권연구가’란 직함을 새겨 다 닌다.
황씨는 처음엔 우표수집가였다. 백화점에서 우연히 47년 12월 발행된 런 던올림픽 참가 후원금 마련을 위한 복권을 보고 복권에 빠졌다. 해방 후 우리나라가 처음 참가한 올림픽대회에 복권이 한몫을 했다는 걸 아니 가 슴이 벅차오르더란다. 그때부터 복권을 사들이며 복권과 관련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고향에 있던 땅붙이도 그덕에 날아갔다. 그렇게 모은 주택복권이 지난 3월 1천장을 채웠다. 1회부터 1천회까지 복권을 모아 붙 여 길이 25m짜리 대형 작품을 만들었다. 복권수집 30년 인생의 결정판인 셈이다. 요즘엔 기술복권을 모아 첨성대 모형을 만들고 복지복권으로 공 장 모형을 짓느라 바쁘다.
복권을 모은다고 복권에 잘 붙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황씨는 아직까지 복권 당첨액이 1백만원을 넘지 못했다. “아무래도 큰돈 만질 복은 타고 나지 않은 것 같다”고 자위한다. 대신 살림살이는 거의 복권으로 채웠다 . 낙첨 복권이 사은행사에 당첨되는 행운이 잇따랐던 것이다. 컴퓨터, 냉 장고, 세탁기를 그렇게 장만했고 치약, 구두, 화장품 따위는 몇년째 사지 않고 있다. 황씨는 “1회 주택복권 상금이 20~30만원 했는데, 요즘 그만 한 액수의 사은품을 받으니 세월이 많이 흐르긴 흐른 것 같다”며 웃는다 .
수집이라면 다른 사람들도 황씨에 뒤지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지하철표 최다수집 기록을 갖고 있는 구성달(53)씨는 주요 기념일이나 독특한 숫자 가 찍힌 지하철표를 모으고 있다. 88년부터 지금까지 연도에서 날짜 시간 까지 맞춘 지하철표 3천장을 모았다. 88년 8월8일 8시8분을 시작으로 시 간을 낚아서 박제로 만든 것이다. 그 숫자를 맞추느라 지하철역에서 새벽 부터 지하철표를 찍었다. 간발의 차로 시간을 놓치는가 하면 어쩔 땐 개 찰기 잉크가 말라 실패하기도 했다. 김성현(34)씨는 행운의 사나이로 통 한다. 16년 동안 수집한 네잎 클로버가 10만여장에 이른다. 개중에는 잎 이 1개짜리에서 10개짜리, 심지어는 26개짜리도 있다. 최염열(69·충남 호서대) 교수는 노자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장서가다. 51년부 터 45년 넘게 노자를 연구하며 1천3백여권의 노자 관련 책을 모았다. 이 들 책 가운데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발간된 희귀본을 비롯해 미국 일본 러시아 등 세계 각지에서 발간된 책들도 있다. 최 교수의 집은 이런 책들 로 지하실부터 3층까지 온통 책냄새가 진동한다. 최 교수는 “원하던 책 을 구하면 아들을 낳은 것처럼 밤새 잠을 설친다”고 말한다.
260cm의 장발족, 대를 이어간다
강정희(38)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머리카락을 갖고 있다. 자그마치 2 60cm다. 아버지의 권유로 머리를 기르기 시작한 게 열여덟살 때였으니 20 년째 장발족으로 살고 있는 셈이다. 어느날 시골장에 갔다 온 아버지가 다짜고짜 “너도 머리 길러라”고 하더란다. 장에서 본 댕기머리에 한복 을 입은 아가씨가 그렇게 예쁘더라나. 남들은 어떻게 볼지 모르지만 강씨 역시 긴 머리가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여긴다. 치렁치렁한 머리를 틀어올 려 쪽을 지고 은비녀를 꽂은 채 가게일을 본다.
머리손질이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 이틀에 한번 샴푸와 린스로 감는 게 고작이다. 대신 파마나 염색은 애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아이들과 남편 도 그의 긴 머리를 좋아한다. 아이들은 “이불 없으면 엄마 머리카락을 덮으면 된다”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큰딸(11) 머리카락이 1m고, 작은딸( 7) 머리카락은 65cm로 모녀가 모두 머리 기르기 경쟁을 한다.
별난 기록에는 나이를 잊은 도전이 있다. 이종열(58)씨는 우리나라 최고 령 스카이 다이버다. 66년 공군 복무시절 시작한 스카이다이빙이 인생의 즐거움이 됐다. 푸른 하늘에서 뛰어내리다 보면 세파에 찌든 일상이 훌러 덩 날아간다. 김준현(13)군은 여섯살 때 속리산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전 국의 명산이란 명산을 찾고 있다. 현재 1백5곳의 정상을 밟았다. 부모 손 잡고 30분 걷다 30분 쉬는 산행이지만 평생을 이어갈 생각이다. 김군은 요즘 백두산을 오르는 게 꿈이다.
유강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