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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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란/시인 상지대 교수
현대사회의 여러 가지 특징들 중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특징은 `문화의 범 람'이다. "21세기는 문화시대"라는 말은 요즘 가장 흔하게 듣게 되는 말 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 현상에 대한 분석은 분석자의 입장에 따라 각기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인류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며, 그 `다름'의 양상을 `문화의 범람'이 일정 부분 설명해 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화의 범람'과 공허한 인류
어느 시대나 전 시대와 달랐다. 그러나 지금 인류가 맞닥뜨리고 있는 변 화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다. 무언가, 인류가 인류의 이름으로 쌓아올렸 던 토대의 밑부분에 보수가 불가능한 균열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주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그 균열을 진단할 수 있다. 그 러나 그것이 인류의 멸망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인류의 전혀 다른 단계로 의 진입을 의미하는지, 그 결론을 내리는 것은 지금으로선 무의미한 일이 다.
`문화'가 범람하는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인류가 부지런히 발달시켜 온 하 드웨어적 측면이 개발이 일단 상당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세부의 조 정은 아직 남아 있다. 아직도 지구상엔 절대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 도 많다. 북한만 하더라도, 근본적인 문제 앞에서 쩔쩔매고 있는 형편이 아닌가.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반향은 이미 그렇게 잡혀져 있다. 그럼 참 좋은 일이잖은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제 등 따습고 배부르니까. 그러나 천만의 말씀이다.
함포고복(含哺鼓腹)하는 백성을 보며 즐거워했던 요 임금이 다시 살아 돌 아온다면, 많이 당황할 것이다. 배부른 인류는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것이 다. 하드웨어만 발달시키느라고, 인류는 소프트웨어가 엉망이 돼버리는 걸 방치했던 것이다. 잘 먹고 잘 살게 된 대신, 인류는 허무라는 괴물이 쳐들어와 삶을 단번에 박살내버릴 것이라는 걸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까지 `신'이라든지 `이데올로기' 따위를 믿으며 인류는 대충 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무시무시한 무의미함을 가려왔다. 그런데 모든 우상이 무너 졌다. 교회도 사원도 도서관도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생산해내지 못한다. 인류는 허공에 매달려 있다. 너무나 오랫동안 하드웨어만 주물럭거렸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수 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 것 이다.
이러한 상황 안에서 가장 좌절하는 것은 이제 막 어른이 되려고 하는 10 대들이다. 이제 살기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더 어떻게 사는지를 가르쳐주 지 않았던 것이다. 학교에서는 밤낮 답안지 작성 요령이나 가르쳤지, 삶 이라는 게 어떻게 생겼는지 꼬리조차 보여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 반항'한다고? 천만에. 19세기 말에 10대들은 반항했다. 랭보는 `어른'과 `기독교'를 상대로 반항했다. 그가 부쉈다면, 그는 뭔가 새로 건설하기 위해서 부쉈다. 그가 "나는 타자(他者)다"라고 말했을 때, 어쨌든 그에게 는 비전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비트는 생산적 비트였다. 그러나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10대들의 행태는 반항이 아니다. 뭘 부순단 말인가? 다 부 서졌는데. 그들은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파괴할 수 있는 것은 자 기 자신뿐이다. 시 쓰기를 집어치운 열아홉짜리 랭보는 걸어다니기 시작 했다. 아프리카까지 가서 너무나 한없이 걸어 다니는 바람에 병에 걸려서 나중엔 다리를 잘라내야 할 정도로 걸어다녔다. 랭보는 그렇게 제발로 걸 어서 걸어서 존재를 존재 밖으로 연장시켰다.
빠르지만 갈 데가 없는 폭주족
그러나 폭주족들은 무지 빨리 달라지만, 아무 데로도 가지 못한다. 그들 은 기껏 달리다가 다시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그들에게는 아프리카가, 존 재를 들어올려 서늘하게 우주에다가 비끌어매는 존재의 비전이 없는 것이 다. <작가세계> 가을호에 발표된 젊은 작가 김연수의 `뒈져버린 도플갱어 '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주인공인 폭주족에게 `도플 갱어', 자아의 분신, 랭보적 타자의 존재는 단지 환살일 뿐이다. 폭주족 은 기껏 달리다가 존재의 안쪽으로 고꾸라진다. 작가는 `뒈져버린'이라는 말을 삐뚜름한 이탤릭체로 쓰면서까지, 바람처럼 존재 밖으로 획 빠져나 가고 싶어한다. 그러나 역부족, 오토바이 말고, 그의 영혼을, 존재의 소 프트웨어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웠더라면, 진작 빠져나갈 수 있었을 텐데.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이처럼 존재의 `의미생산작용'이라는 지난한 의무 를 짊어지고 있다. 철딱서니없이 가수들을 쫓아다니며 빽빽 소리나 질러 대는 10대는 실은 그렇게 절박한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아우성을 치는 것 이다.
그러나 대중매체 종사자들은 돈벌 궁리밖에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망가 지고 있다. 그러나 이 순간에도 텔레비전 방송국에선 또 다른 돈벌이 댄 스기계들이 만들어지고 있겠지. 충분히 돈을 번 뒤엔 또다시 무대 뒤로 버려지기 위해서. 세계는 끔찍한 곳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