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만리재에서

권력은 영원히 ‘일그러진 괴물’인가

<아들아, 내가 가랴 네가 오랴>. 6·25 때 실종된 맏아들을 찾으러 평생 을 떠돌았던 한 어머니의 비원을 담은 책이다. 어머니는 미국으로 가면 아들찾기가 쉬울까 아예 이민을 결행한다. 팔순이 돼서야 평양에 산다는 아들의 소식을 접하게 된다. 어머니는 외교관계상 아들의 방미가 불가능 하자 고혈압 등 각종 지병에도 방북을 결심한다. 어머니는 그러나 떠나기 직전 뇌출혈로 쓰러진다. 50여년 만에 날아온 아들의 통절한 편지는 이제 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는 어머니의 머리맡을 지킬 뿐이었다.

다행히도 아들은 조선인민공화국 창설 이래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방문이 허락됐다. 어머니의 애절한 사연은 미국인들에게 무너져가는 가족 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또 미국 정부와 의회 그리고 언론을 움직여 미 수교국에 적성국이라는 외교적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낸 것이었다. 맏상 주는 어머니의 영결식에 참석했고, 어머니는 비원의 한 토막을 이룰 수 있었다.

이석현 의원이 지난 8월13일 미국 LA에 간 것은 이 책 출판기념회 때문이 었다. 분단의 밑모를 비극과 어머니의 숭고한 사랑이 보석처럼 빛나는 이 책의 출판기념회가 그에게 비극의 씨앗이 될 줄은 누구도 몰랐다. 그는 정치인들이 새 사람을 만나면 으레 그러하듯 이름알리기 차원에서 명함을 교민들에게 돌렸다. 개중에는 LA 영사관 관계자(안기부요원 포함)도 있었 다. 그의 명함은 특이했다. 국적이 한글, 영어, 일어, 아랍어, 러시아 키 릴문자 등 7개국어로 표기돼 있었고 문제의 한국(남조선)이란 한자어권을 감안한 표기도 있었다.

그로부터 1주일 뒤 신한국당 이사철 대변인은 ‘북한간첩이나 사용하는 국호를 명함에 썼다’고 폭로했다. 이어 보수언론들은 ‘국체를 부정하는 망동’이라고 비판했다. 명함 한장에 이 모든 표기가 있었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간과한 <조선일보> 사설은 “그가 이 명함을 중국이 아닌 LA에 서 사용했다”면서 “비록 괄호 안이라도 ‘남조선’이란 명칭을 구태여 사용한 데에는 필연적으로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그에게 붉은 그림자 를 씌웠다. 그는 결국 국민회의를 자진 탈당했다.

이 사건에서 분단이 생산한 매카시즘이라는 괴물에 새삼 주목할 생각은 없다. 언제든 인간의 얼굴을 포기할 준비가 돼있는 권력의 행태를 따져보 고 싶을 따름이다.

신한국당 이사철 대변인은 이 의원과 대학 동기동창이다. 전하는 이야기 로 이 대변인은 성명 발표 뒤 친구에게 ‘유감’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이 나라 최고의 엘리트로서 어설픈 실수와 의도된 행위를 구별할 정도의 지각은 있었나보다. 하지만 “… 남조선이라는 호칭은 북한공작요원이나 친북인사만 사용하는 것으로 이들과 접촉하기 위한 것 아닌가”라는 그의 이 물음은 결국 한 친구를 정치적으로 매장했다.

이 의원은 학창시절 지하신문 발간 등을 통해 유신정권과 싸우다 붙잡혀 실형을 구형받고 졸업후엔 양서조합운동 등을 통해 민주화의 불씨를 지폈 다. 그동안 군사정권의 파수꾼, 공안검사로서 권력을 향해 달려왔던 그에 게 이는 빚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권력 앞에서 이런 수치심이나 우정 등 인간의 모습은 언제나 잘라버릴 수 있는 도마뱀 꼬리였다.

노태우는 전두환을 백담사에 유폐시켰고, 김영삼은 김종필을 쫓아냈다. 김대중은 표를 위해 이 의원을 내쳤고 이회창 역시 목적을 이루고 나자 후보경선의 동지를 외면했다. 둘은 또 민주주의를 살해했던 전·노씨의 사면에 앞장서고 있다.

인간의 모습을 한 권력은 영원히 신기루일 뿐임을 거듭 확인해주는 현실 이 절망스럽다.

한겨레21 편집장 곽병찬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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