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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파도 안 들어 오는데 웬 시청료?

전라북도 정읍시 용산동. 유순섭(30, 학원강사)씨가 신혼살림을 차린 이 곳은 행정구역상 어엿한 시였다. 그러나 고작 4가구가 고만고만한 지붕을 맞대고 있는 마을 모습은 전형적인 농촌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그래서 농사꾼으로 평생을 농촌에서 살아온 부모님은 어렵사리 서울서 대학까지 마친 딸 유씨가 이곳에 정착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도 말렸는지 모른다. 남편의 고향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낯선 땅이었다. 집도 허름했다. 5년 가까이 사람이 살지 않던 빈집을 고쳐 둥지를 삼았던 까닭 이다.

하지만 사는 재미만은 쏠쏠했다. 정읍시에서 몇몇 대학 친구들과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 사업을 시작한 남편 김진호(30)씨와 하루하루 집을 손보고 텃밭을 가꾸는 일은 빌딩숲과 공해에 찌들었던 서울 생활에서는 도저히 맛볼 수 없는 행복을 가져다 줬다. 그러기를 1년여. 눈이 유난히 커 이름 조차 정(눈목정)이라 지은 예쁜 딸아이도 태어났다. 결혼과 함께 시작한 학원강사 생활을 통해 만난 아이들의 모습도 도시 아이들의 영악함이 아 닌 풋풋함뿐이다. 버스가 다니지 않아 남편의 낡은 승합차가 아니면 시내 로 나갈 수 없다는 불편함과 너무 한적하다는 것 말고는 부러울 게 없는 삶이었다.

그런데 지난 4월, 그러니까 이곳에 정착한 지 꼭 1년 되던 때 그에게 골 칫거리 하나가 생겼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전기요금 고지서를 받아본 그 는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텔레비전 시청료였다. 사실 유씨도 이곳에 정착한 뒤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핸드폰까지 빌려와 남 편과 통화하며 뒷산 꼭대기에 안테나도 설치해 봤다. 텔레비전이 이상이 있는지 모른다는 생각에 수리공까지 불렀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난시청 지역이었던 것이다. 뒤로는 내장산 줄기가 버티고 앞으로는 ‘이 밤산’이 막아선 지형 때문에 텔레비전 전파가 미치지 않았다.

한국방송공사 전주지국과 한국전력을 상대로 신경전이 시작됐다. 난시청 지역이니 조치해 달라고 항의를 벌인 것이다. 한전은 물론 “방송사에 알 아보라”고 잘라 말했고 방송사는 “곧 조치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다음달인 5월 고지서에는 어김없이 시청료 2천5백원이 따라 나왔다. 유씨 는 다시 방송사에 항의했고 담당자 이름까지 적어가며 “이번에도 곧 시 정하겠다”는 다짐까지 받았다. 그러나 한달 뒤 기대는 무너졌다. “정말 화가 났어요. ‘시골 사람이라고 무시하냐’며 하루가 멀다하고 항의를 했어요.”

그러기를 2주. 방송사에서 난시청 지역 조사반원 두 사람이 찾아왔다. 그 러나 그들의 태도는 뻣뻣했다. “왜 비오는 날 전화를 해 사람을 생고생 시키느냐”는 볼멘소리와 함께 조사는 시작됐다. 그들의 결론은 더 우스 웠다. “집에서 3백여m 떨어진 마을의 논 한가운데 안테나를 설치하면 시 청이 가능하다”는 말을 남긴 채 떠나버린 것이다. 물론 유씨의 항의는 더욱 거세졌다. “텔레비전을 못보면서 시청료를 내는 부당한 조치를 당 장 시정해 달라”는 너무나 당연한 요구가 계속된 것이다. 결국 또다시 2 주가 지나서 방송사에서 직원 한 사람이 나왔다. 그는 난시청 지역 명단 에 유씨의 집을 포함시켰다.

하지만 끝난 게 아니었다. 시청료를 환불받기 위해 찾아간 한전은 “시청 료 반환…”이라는 이야기가 떨어지기 무섭게 “방송사에 가 알아보라” 고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 결국 두달치 시청료 5천원을 손에 쥘 수 있었다.

유씨는 말했다. “방송공사가 시청료를 전기요금과 통합고지 하면서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죠. 그러면 시청자의 권리도 그 정도는 보장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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