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지성
|
|
(사진/남극과 달 탐사를 위해 칠레의 사막에서 적응 훈련을 받고 있는 소형차 크기의 탐사로봇 `노매드'.)
지난 7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바퀴달린 탐사 로봇’ 소저너가 화성의 붉은 흙 위에서 벌인 탐사활동은 전세계를 흥분케 했다.
그렇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소저너의 행성 탐사 활동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었다. 소저너의 행동 반경은 고작 52m였다. 속도도 기껏해야 초속 1 ㎝를 넘지 못했다. 소저너는 불과 20㎝ 앞의 장애물에 대처하고, 10m 앞 만 볼 수 있게 설계된 로봇이었다.
그럼에도 소저너의 성공이 주목을 받는 것은 미래의 외계 탐사의 주체는 인간이 아닌 로봇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인시켜주었기 때문이다. 우주 기 술의 놀라운 진보에도 사람을 다른 행성에 보내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 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2010년 전까지는 화성에 사람을 보낼 계획이 없다. 기술도 문제지만 그에 따른 비용과 위험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 다.
기술력·비용 등 문제로 인간 탐사 유보
이에 따라 미국과 일본은 앞으로 상당 기간 로봇으로 행성을 탐사한다는 계획 아래 차세대 탐사로봇 개발에 안간힘을 기울이고 있다. 나사 제트추 진연구소 로봇차량제작팀 고문인 브라이언 윌콕스 박사는 “소저너의 성 공적인 탐색 활동을 토대로 앞으로 10∼20년 이내에 1천㎞ 이상을 이동할 수 있는 탐사로봇을 제작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는 것은 나사의 지원으로 카네기 멜론대학이 개 발한 ‘노매드’이다. 이 로봇은 지난 6월15일부터 7월31일까지 칠레 북 부의 아타카마사막에서 1백33마일이 넘게 달리면서 로봇 커뮤티케이션과 화상 전송 분야에서 새 지평을 열었다.
무게 720㎏에, 4륜 구동과 4륜 조향시스템을 갖춘 이 로봇은 언덕, 골짜 기, 바위들로 이뤄진 변화무쌍한 사막에서 스스로 운전하거나, 미국의 피 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론대의 로봇 과학자들의 원격조종으로 탐사작업 을 벌였다. 이 로봇은 여행한 133마일 중 12마일은 스스로 장애물을 피하 면서 다녔고, 시험삼아 사막에 박아 놓은 운석을 인지하고 화석을 발견하 기도 했다.
이 로봇은 3백60도를 볼 수 있는 특수 파노라마 카메라 및 4개의 스테레 오 카메라를 지니고 1초에 한 번씩 정지화면을 찍어 위성을 통해 미국으 로 보내왔다. 미국의 로봇 과학자들은 모니터 앞에 펼쳐지는 사막을 배경 으로 수천㎞나 떨어져 움직이는 이 로봇을 움직였다.
카네기 멜론대는 이 로봇을 오는 11월 남극에서 운석을 탐사하는 데 투입 하고, 2000년에는 남극과 환경이 비슷한 달에도 이 로봇을 보내 원격 조 작으로 탐사 활동과 사진 촬영을 할 예정이다.
또한 나사의 제트추진연구소는 소저너보다 모든 면에서 한 단계 앞선 능 력을 가진 차세대 로봇 ‘로키7’을 오는 99년 발사되는 화성착륙선 마르 스 서베이어에 탑재할 예정이다. 이 로봇은 소저너와 몸집이 비슷하지만, 훨씬 정확한 눈을 갖고 있으며, 로봇팔로 땅을 파서 분석을 할 수도 있다 . 이 로봇은 화성과 비슷한 환경을 갖춘 캘리포니아주 사막지역에서 적응 훈련을 받고 있으며, 내년 3월에는 5㎞의 주행실험이 계획돼 있다.
또한 나사는 일본 우주과학연구소가 오는 2002년 직경 1㎞짜리 네레우스 라는 소행성에 보내게 될 뮤즈-C 탐사선에 탑재할 1㎏짜리 꼬마 탐사 로 봇을 일본에 제공하기로 했다. 이 로봇은 소행성의 암석을 채취한 뒤 시 료를 2006년 지구로 보낼 예정이다.
최근 나사 제트추진연구소의 과학자들은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를 탐사하 기 위한 선행 단계로 남극의 얼음층을 뚫는 탐사 로봇을 개발하기 위한 회의를 몇차례 가졌다. 목성의 위성인 유로파는 두꺼운 부서진 얼음층 아 래에 생명이 존재할지 모른다는 점 때문에 주목을 받고 있다.
나사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얼음을 녹이며 전진하는 크리요봇의 제작을 구상중이다. 이 로봇은 방사성동위원소를 사용하는 발 전기에서 나오는 전기를 이용해 열을 내게 된다. 일단 크리요봇이 얼음을 뚫고 물이 있는 부분에 다다르면 내장된 하이드로봇을 발진시켜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고 생명체의 존재 여부를 조사하게 된다. 지구와 마찬가지 로 이 위성의 얼음층 밑 바다에는 화산 분출구가 존재하며, 이곳에는 비 정상 형태의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전문가들은 행성 로봇탐사의 최종적인 성패는 혹독한 기후에 얼마나 잘 견디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지능을 갖느냐에 달려 있다고 입을 모은 다. 캘리포니아공대 리처드 볼프 박사는 “화성 탐사로봇의 최종 열쇠는 영하 1백도가 훨씬 넘는 가혹한 환경에서 기계가 얼마나 오랫동안 정상적 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느냐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구에서 작동하는 로봇보다 훨씬 뛰어난 지능을 가져야 하는 것은 거리 문제 때문이다. 화성만 하더라도 로봇이 지구에 화면을 보내고, 다시 지 구에서 보낸 명령을 로봇이 수신하는 데 수십분이 걸린다. 이 시간 동안 로봇은 스스로 판단해 장애물을 피해 탐사 활동을 해야 하므로, 훨씬 뛰 어난 지능과 학습 능력이 필요하다.
스스로 생각하는 로봇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지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사례 로는 ‘단테’가 꼽힌다. 지난 93년 미국은 8개의 다리를 가진 이 로봇을 남극대륙 단 하나의 화산인 에레버스산의 분화구에 기어오르는 시험을 하 다 실패했었다. 단테 로봇은 통신 두절로 인해 분화구를 겨우 6.3m 정도 오르는 데 그치고 말았다.
기후적응이 관건… 행성에 로봇공장 가동
노매드 로봇의 개발 책임자인 카네기 멜론대의 윌리엄 위테이커 박사는 “기계를 통해 운석을 찾는 일이 매우 어려운 과정이지만 이는 바로 미래 에 좀더 복잡한 외계에서의 작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며 “로봇은 외 계 탐사의 주체가 될 것이며, 이에 앞서 많은 기본 훈련이 지구 상에서 수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봇이란 말은 체코의 극작가인 카렐 차펙이 1920년 체코말로 강제노동이 란 뜻의 로봇이란 말을 처음 쓰면서 가공의 실체로 등장했다. 산업용 로 봇은 60년대 초반 미국 자동차 공장에 처음 등장했지만, 현재 65만대가 전세계의 공장에서 성가시고, 위험하고, 지루하고, 역겨운 일을 대신할 만큼 급속도로 사람의 역할을 대체해 나가고 있다.
21세기에는 로봇이 태양계의 모든 행성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우주에 대 한 각종 정보와 지하 자원을 지구로 보내오고, 심지어는 스스로 행성에 로봇 공장을 만들어서 우주 개척에 나설지도 모른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