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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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현대중공업 김진석씨는 주먹을 쥐지 못한다. 해머를 오랫동안 잡다보니 근육이 아예 굳어버렸기 때문이다.)
사고성 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 직업병 가운데 근골격 계 질환이 있다. 근골격계 질환이란 말 그대로 근육과 뼈 계통의 질환이 다.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힘을 주는 작업 때문에 근육이나 근육을 싸고 있는 인대와 신경에 손상이 오는 것이다. 사무직 노동자들에게서 나타나 는 경견완장애(VDT증후군)가 대표적인 근골격계 질환 가운데 하나다. 근 골격계 질환이 진행되는 형태를 보면 유기용제 중독과 아주 유사하다. 처 음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점차 누적되면서 결국 작업 후에도 회복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병리적 상태로 발전하는 것이다.
20년 용접일 남은 것은 신경마비
우리나라 경우는 80년대 말 구로공단의 일부 노동자들이 건초염으로 진단 을 받아 요양하기 시작한 것을 시작으로 전자부품업체와 통신업체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문제가 됐다. 근골격계 질환은 아직도 병이 아닌 것 처럼 여겨지고 있으나, 최근 조선업계나 건설업계에서도 근골격계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늘어나 심각한 직업병으로 대두되고 있다.
현대중공업 변아무개(55)씨의 경우를 보면 근골격계 질환이 노동자들의 육체를 얼마나 파괴하는지 알 수 있다. 변씨는 20년을 넘게 쪼그려 앉아 서 용접을 해왔다. 작업이 기계화·단순화되면서 노동자들의 작업도 단순 화·부품화된다. 이에 따라 용접도 상단작업과 하단작업이 분리돼버린 것 이다. 하단부분의 용접은 늘상 쪼그리고 앉아서 하기 때문에 무릎과 발목 부위에 무리가 온다. 또 무릎 아래로 피가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발목부위 부터 세포가 죽어가는 심각한 증상까지 생긴다. 변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 변씨는 근전도 검사를 받은 결과 근육과 신경이 45% 정도만 제기능을 발휘하고 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들어야 했다.
용접작업을 하던 그를 작업장 한켠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만났다. 그는 증 세를 묻는 기자 앞에서 다짜고짜 작업화와 양말을 벗었다. 그러고는 자신 의 발에 라이터 불을 갖다 댔다. 꼬집어도, 불을 갖다대도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만류할 때까지 그는 계속 라이 터 불을 댔다.
변씨가 다리에 통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90년께부터. 쪼그리고 앉기만 하면 다리에 불이 붙은 것처럼 아리고 쓰리고 욱신욱신거렸다. 하지만 회 사에는 말을 못하고 혼자 울산시내에 있는 한 병원에서 물리치료만 해왔 다. 혹시 해고되지 않을까 두려웠고, 또한 이런 증상이 직업병이 되는 것 조차 몰랐다는 것이다. “사고가 나서 생긴 병이 아니잖아요. 다리 아픈 것도 요양신청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죠.” 얼마 전부터 그는 회 사쪽에 작업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까지 회사에서 들려오는 대답은 절망적이다. 다른 부서에서 받아주는 데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조만간 정식으로 요양신청을 낼 참이다.
현대중공업 김진석(36)씨도 근골격계 질환으로 현재 요양신청을 낸 상태 이다. 84년 회사에 입사한 뒤로 그는 줄곧 취부작업을 해왔다. 선박 건조 의 마지막 단계가 블록과 블록을 크레인으로 들어 연결해 맞춘 뒤 용접하 는 것이다. 하지만 크레인이 블록을 완벽하게 맞추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 블록과 블록 사이에 생기는 미세한 틈새는 사람이 1.5kg짜리 해머를 들 고 때려서 연결하는 취부작업을 해야 한다.
2∼3년 전부터 잠자리에 누우면 손과 다리, 얼굴 주위에 작은 경련이 일 어났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두번씩 찾아오던 경련이 지난해부터는 거의 매일 도둑처럼 찾아왔다. 특히 왼쪽 어깨 날갯죽지 부위는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기도 하고, 망치로 얻어맏은 것처럼 띵하기도 하고, 때론 팔 이 빠질 것처럼 통증이 심했다(그는 왼손잡이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서 작업을 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하루 8시간 이상 작업을 해도 싱싱하던 어 깨가 30분 정도만 해머를 들고 있으면 저려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매일같 이 해머 자루를 잡다보니 어느새 왼손은 주먹쥐기조차 힘들어졌다.
주먹도 쥐지 못한다
주먹을 쥐려고 해도 손가락끝이 손바닥에서 2㎝ 정도 떨어진다. 그는 결 국 올 7월 근로복지공단에 요양신청을 냈다. “현대중공업에서만 취부작 업을 하는 사람이 1천5백여명 정도 됩니다. 저와 같은 반에서 일하는 동 료도 저와 똑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지요.”
최근 한국노동보건직업병연구소(소장 장임원 중앙대 교수)가 민주금속연 맹의 의뢰를 받아 현대중공업 등 산하 사업장 노동자 중에서 자각증상을 호소하는 105명을 대상으로 검진한 결과, 80명(76.2%)이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근골격계 질환에 대한 전면적인 역학조사의 필요 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용인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