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무재해부서 영광이 더 중요했겠죠”

유기용제 중독으로 요양중인 현대중공업 도포장부 손찬익(37)씨. 그는 지 난해 직업병 판정을 받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닌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회사나 근로복지공단 어느 쪽도 쉽게 산재신청을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이다.

94년께 회사로부터 특수검진 결과가 통보됐다. 거기에는 영어로 ‘WBC 32 00’이라는 간단한 진단이 들어 있었다. 예전에 깨끗했던 통보서에 비하 면 왠지 꺼림직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평소 건강에는 자신이 있는 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WBC’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려고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지만, 영어로 이상하게 적힌 내용은 백혈구수가 정상인의 4000보다 훨씬 적다는 의미였다. 적신호였던 셈이다.

얼마 안 있어 2차 검진을 받으라는 통보가 회사로부터 날아왔다. 2차 검 진이래야 다시 한번 피를 뽑아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는 그게 끝이었 다. 회사나 검진 병원으로부터 2차 검진 내용이 어떠한지 전혀 연락이 오 지 않았다. “내심 불안하기는 했죠. 하지만 건강하니까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어요. 그리곤 평소대로 작업을 계속했지요. 그때 작업전환을 하거나 단기간의 요양이라도 했으면 이 정도로 악화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

95년 엘지전자부품의 솔벤트 사건이 터지자, 회사쪽 담당과장이 작업장으 로 직접 찾아왔다. 몸이 아픈 데가 없냐는 거였다. 손씨도 “감기에 걸리 면 좀 오래간다. 그렇지만 특별히 아픈 데는 없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 겼다. 이번에도 그게 전부였다. 손씨의 유기용제 중독 증상은 그렇게 계 속 묻혀져 버렸다.

그러나 그의 몸은 이때부터 급격하게 이상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뒷골 이 당기면서 몸에 힘이 쫙 빠지고 가만히 있어도 식은 땀이 흘러내렸다.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95년 말께 영어로 돼 있던 병명이 ‘백혈 구 감소의증’이라는 한글로 찍혀 나왔다. 급히 의학사전을 뒤적거려 보 았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부작용’이라는 간단한 설명이 적혀 있었다. 회사쪽은 이번에도 이렇다 저렇다 말 한마디가 없었 다.

요양신청을 하기로 맘을 먹었다. 먼저 경주에 있는 한 대학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받았다. ‘백혈구 감소’‘저세포성 골수’‘결막염’이라는 진단 이 나왔다. 의사는 두말하지 않고 ‘유기용제 중독으로 인한 것으로 의심 됨’이라는 소견서를 써주었다.

하지만 이때부터가 첩첩산중이었다. 요양신청에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기 위해 중간관리자들에게 목격자 진술을 부탁했다. 스프레이 작업은 혼자 하는 데다, 사고성 재해가 아니기 때문에 딱하니 목격자가 있는 게 아니 다. 중간관리자들한테 확인서를 받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중간관리자는 “언제 다친 것인지 알 수가 없으니 안전경영부에 한번 부탁해 보라”며 자리를 피했다. ‘무재해 부서’라는 영광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했기 때 문이다. 안전경영부는 또 그들대로 다른 부서에 책임을 떠넘겼다.

가까스로 서류를 만들어 회사가 있는 울산에서 포항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갔다. 그런데 빠진 서류가 왜 이렇게 많은지….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 울산과 포항을 5번이나 왔다갔다 했다. 한꺼번에 친철하게 가르쳐 주면 안 되나.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손씨는 그 어려운 관문을 간신히 통과해서 지난해 3월부터 직업성 재해를 인정받고 요양중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산재신청을 하기가 얼마나 어 려운지…. 회사만 생각하면, 에이…. 뼈빠지게 일해준 대가가 이건가 싶 어요.” 그의 눈가에 작은 이슬방울이 맺혔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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