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특집

산업보건을 죽이는 삼각고리

작업환경측정과 특수건강검진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현상은 오 래 전부터 지적돼 왔다. 그런데도 그러한 제도와 관행이 계속 유지돼 온 것은 작업현장의 현실이 반영되는 것을 꺼리는 정부와 사업주의 태도 및 자세, 여기에 전문가들이 동조해 부실한 측정과 검진을 수행해 왔기 때문 이다. 정부-사업주-전문가의 삼각고리가 부실과 은폐구조를 만들어온 것 이다.

산업화가 진전되면서 산업보건의 문제가 대두될 때 정부는 노동자보다는 기업쪽에 서서 경제발전을 최우선시하는 정책을 펴왔다. 그 결과가 산업 보건에서 형식적인 측정과 검진을 용인하는 정부의 태도로 드러난 것이다 . 바꿔 말해 정부가 부실 측정과 검진을 알고 있으면서도, 노동자를 보호 하기보다 이 사실이 사회적 문제로 되지 않도록 막는 데 급급해 왔다는 것이다. 또 문제가 되더라도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 았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를 알고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풍부한 산업예비군 이 있어 노동력 공급이 원활한 판에 굳이 노동력을 보호하기 위해 작업환 경개선이나 직업병관리에 비용을 쓰고 싶지 않을 것이다. 때문에 기업은 적극적으로 측정과 검진에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실제로 노동자들은 작 업환경측정을 나오는 날이면 평상시 하던 작업을 축소하고 일부 작업은 아예 중단하기도 했으며, 대대적인 청소와 환기를 통해 환경을 좋게 해놓 은 뒤 측정받도록 한다고 한다. 특수건강검진도 마찬가지이다. 유해물질 이나 유해작업에서 일하는 노동자수를 축소보고해 특수건강검진을 받는 대상자를 누락시키거나, 작업내용이나 사용물질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아 해당되는 유해물질에 대한 검진을 받지 못하게 하는 일은 흔히 보는 일이 다. 심지어 특수건강검진 결과를 고쳐서 직업병이 없는 것처럼 보고했다 가 말썽을 일으킨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도 산업현장의 문제를 밝히기보다는 정부와 기업에 동조하여 은 폐하는 데 같이 해온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수건강검진을 오랫동안 해 온 한 의사는 “공식회의에서 직업병 보고를 하고 나면, 그 다음 특수건 강검진을 다른 곳으로 옮겨버려 양심적인 보고가 어렵다”는 고백을 하기 도 했다. 실제로 현행 측정제도와 검진제도에서는 기업이 기관을 선정하 고 직접 비용을 지불하기 때문에 기업과 기관의 유착 혐의가 있어왔다. 그래서 측정의 경우 정확한 예비조사를 하고 유해요인을 파악해 적절한 규모의 측정을 하기보다는, 비용을 줄이기 원하는 기업에 맞추느라 형식 적인 측정에 그치게 된다.

양길승/ 성수의원 원장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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