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부처님,산은 어디로 오르나요

(사진/국립공원의 분리징수에 항의, 산문을 폐쇄했던 속리산 법주사. 공단은 공원 입장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합동징수를 계속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사찰이 있는 국립공원에 들어가려면 얼마를 준비해야 할까. 정답 은 2천∼2천5백원이다. 그러면 공원입장료는? 1천원이다. 1년에 두서너번 산에 오르는 사람이라면 아무것도 아닌 액수지만, 매주 또는 매일 등산하 는 이들에게는 여간 부담이 아닐 수 없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등산하는 이들이라면 한달에 6만∼7만5천원을 지출해야 하는 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등산애호가들조차도 이 돈이 공원입장료일 뿐 문화재관 람료가 포함돼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른다. 표 하나로 두 가지 요금을 함께 거두는 ‘합동징수’방식을 썼기 때문이다. 2천원(2천5백원)을 낸다면 공 원입장료는 1천원, 나머지 1천원(1천5백원)은 사찰에 내는 문화재관람료 다.

무단사용 공단시설도 철거할 것

합동징수방식이 돌출적으로 여론의 도마위에 올랐다. 내무부 산하 국립공 원관리공단(이사장 김남)이 조계종의 문화재관람료 인상조치에 항의해 분 리징수를 실시하자, 조계종은 ‘산문(山門) 폐쇄’라는 극단적인 방식으 로 맞대응에 나섰고 그 시범케이스가 충북 보은군 국립공원 속리산 내 법 주사(손혜광 스님)에서 불거졌다. 법주사는 지난 8월29일 공단의 문화재 관람료·공원입장료 분리징수 조처에 반발해 속리산 등산로 입구 산문을 폐쇄했다. 관리공단 속리산 사무소가 “문화재 관람료가 올라 법주사를 거치지 않고 속리산에 오르는 등산객들의 항의가 잇따른다”며 등산객들 로부터 문화재관람료(어른 1천5백원)를 받지 않고 공원입장료(1천원)만 받자, 산문을 아예 막아버린 것이다. 때문에 속리산을 찾은 관광객들이 매표소 입구에서 거칠게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지만 법주사쪽은 오후 늦 게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폐쇄는 다음날 잠정 중단됐지만, 이날 사태는 7월 초 이래 두달 동안 정부와 조계종 사이에 벌어진 갈등이 밖으로 드러 난 결과였다.

조계종쪽은 “분리징수가 계속된다면 산문 폐쇄와 함께 매표소 등 사찰 소유 토지안에 있는 관리공단 시설물을 모두 철거 또는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절충점이 찾아지지 않는 한, 정부와 불교계 사이의 갈등은 장기 화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인 것이다. 전국 14개 국립공원의 입구와 주요 등 산로는 대부분 사찰 소유여서 산문 폐쇄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면 사실상 의 입산금지가 전국적으로 실시되게 된다.

이번 사태는 올 7월1일 대한불교조계종이 문화재관람료를 인상하면서부터 예견됐다. 지난 95년 12월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돼 문화재관람료의 요율결 정이 자율화된 이후부터 관람료는 2년 동안 계속 인상됐다. 96년 평균 44 %가 오르고 올해 7월 또다시 평균 47% 올랐다. 자율화 이전과 비교해보면 평균 인상률은 최저 66%, 최고 1백22%였다.

공단, 관람료 인상으로 분리징수 불가피

공단쪽에 따르면, 현재 14개 국립공원에 있는 19개 사찰 가운데 관람료를 인상하지 않은 사찰은 6개, 나머지는 인상한 뒤 분리징수를 실시하고 있 다. 물론 분리징수라 하지만 공원입구에서 표만 따로 받을 뿐 등산객들까 지 입장표와 관람표를 모두 사지않으면 공원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는 합동징수 때와 다름 없다.

공단쪽은 “그동안 문화재관람료를 합동징수하는 것이 정부시책인 것으로 받아들여져 공단에 온갖 비난이 쏟아졌고, 문화재관람료를 공원입장료로 아는 국민들은 정부가 입장료를 과다징수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조계종쪽이 합동징수를 원한다면 종전의 요금대로 환원하든지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공원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분리 징수해 국민자유의사에 따라 선택적으로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한편 조계종 총무원은 “합동징수는 정부와 조계종 사이의 약속사항”이 라며 “사찰이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음에도 정부가 지난 71년 뒤늦게 자연공원법을 제정해 이중징수를 시작했음으로 문화재관람료 징수구역에서는 관람료로 통일해 현실화시키고 공원입장료 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조계종쪽은 또 “공단은 공원구역 의 8.3%에 해당하는 사찰의 토지를 이용해 공원사업을 하면서도 해당 사 찰에 사용료를 일체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국립공원입장료 폐지운동을 벌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소비자단체들은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문화재를 관람하고자 하는 사람에 한해서만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문화재는 구경하지 않고 자연공원만 찾으려는 사람 들에게도 일률적으로 문화재관람료를 부담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지적 하고 있다.

대선 앞둔 불교계 길들이기?

전문가들은 이 문제에 불교계가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데 대해 문화재관람 료가 사찰 수입의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한해 평균 2천 만명으로 추산되는 국립공원 방문객들로부터 쏟아지는 관람료 수입은 엄 청나다. 불교계는 이 수입을 지금까지 정부가 대신해 원천징수 했었다. 한편 정부의 이번 조처에 대해 한 불교계 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정부가 불교계의 주요한 수입원인 문화재관람료로 불교계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 아닌가”라고 얹짢아했다.

어쨌든 이번 기회에 불교계의 편의나 정부의 정치적 의도를 모두 떠나 국 민들의 부담을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이 문제가 매듭지어지길 기대해본 다.

김창석 기자 한겨레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