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표지이야기

“변치마오 허주여”

“허주(김윤환 고문의 아호)만 우리쪽으로 돌아서면 후보 교체는 100% 성 공한다.” 정발협 소속 한 민주계 의원의 말이다.


‘허주 대표론’ 대세 분위기

그의 말대로 이회창 대선후보를 만든 일등공신이자 대세읽기의 귀재로 소 문난 허주가 ‘이회창 카드’를 버릴 경우의 위력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 다. 지난 8월 중순 허주가 일본 학자를 만나 ‘이 대표로 정권 창출이 어 렵다면 조순 카드 등 다른 방법도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사석에서의 애매모호한 말이 가져온 정치적 파장이 그 실례다.

허주가 한때나마 실제로 이회창 카드의 용도폐기를 검토했는지 여부는 확 실치 않다. 일본 학자와의 만남에 대한 허주쪽의 설명은 “이 대표로 안 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느냐는 일본 학자의 질문에 대해 이러저러한 원론 적인 얘기를 한 것이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 쨌든 이 말은 이회창 카드의 변화 가능성을 간접적이나마 언급했다는 점 에서 주목됐다. 허주 주변에선 당시 병역문제 등을 예로 들면서 “경선 전에 비해 이 후보의 상황이 많이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본선에서 깨 지더라도 이 대표를 끝까지 밀고가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말도 흘러나왔다.

특히 8월14일 허주가 이 대표쪽에 대한 무언의 항의의 표시로 훌쩍 외유 에 나서면서 허주가 변심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돌았다. 사실 경선에서 혈혈단신이자 정치 초년생인 이 대표를 적극 밀어 후보로 만들었지만, 전 당대회 이후 이 대표쪽에서 흘러나온 얘기는 그를 실망시키는 것뿐이었다 . 그는 “이 대표 체제를 조기에 안정시키기 위해서는 그를 지원한 세력 이 전면에 서는 정치적 주도세력 즉, 신주체세력이 형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대표쪽의 화답은 “허주에 대한 비토 세력이 많아서 허주 대표는 어렵다” “당의 화합을 위해 허주는 2선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의 장기외유는 당연히 ‘나 없이 잘되는지 두고보 겠다’는 적당한 방관과 ‘나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정치 적 승부수였던 셈이다.

일단 허주의 외유 정치가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급해진 이 대표쪽의 태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하순봉 비서실장은 지난 8월23일 윤원중 의원이 김 고문을 만나러 출국하기 전 두차례 따로 만나 이 대표 의 ‘간곡한’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도 김 고문과 국제통 화를 직접하는 등 일등공신 대접에 신경을 썼다. 이 대표 주변에서는 다 시 ‘허주 대표 불가피론’도 흘러나오고 있다. 어차피 다 안고가기 힘든 상황이라면 확실한 우리 편을 규합해야 한다는 ‘주력군 양성론’이 힘을 얻으면서 허주 대표론이 대세를 형성하는 분위기이다.

이에 따라 허주는 현재 ‘이 대표 지원’쪽으로 원점회귀한 것으로 알려 졌다. 그를 만나고 30일 귀국한 윤원중 의원은 “김 고문이 연말 대선을 앞두고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9월4일쯤 귀국하면 그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윤 의원은 그러나 “허주가 다른 카드를 구상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이 대표를 전력을 다 해 도와 연말 정권재창출을 이루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 대표쪽에서 당 대표직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 받아들이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다른 카드도 쉽게 집을 수 없다

허주가 짧지 않은 유랑을 끝내고 일단 이 대표 지지 입장을 굳힌 것은 자 신의 정치적 위치를 되찾은 탓도 있지만, 그로서는 달리 선택할 여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이회창 후보를 만든 장본인으로서 그 에게 등을 돌리고 다른 카드를 집는 것은 정치적 명분도 적을 뿐만 아니 라 인간적 신의나 도리에도 부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선정국의 주요 변수로서 허주의 행보는 앞으로도 이 대표 주변의 신측근 그룹 및 김 대통령 직계그룹과의 파워게임에 따라 적극 지지와 방관을 거듭하는 우여곡절을 몇차례 더 겪게 될 것으로 보인다.

김종철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커버스토리 포커스 문화시대 특집 지난호 전체보기 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