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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제 대타, 때만 기다린다

(사진/"세력확대와 명분만 남았다." 8월31일 중국 방문 귀국길에 환영인파와 악수하는 이인제 지사.)

이인제 경기지사가 정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이방원을 꿈꾸고 있다. 독자출마 방침을 굳혀 놓고도 출마의 명분을 찾지 못한 채 “정도를 걷겠 다”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는 등 원칙론적 언급만 반복하며 당안팎의 여론을 살펴온 그가 8월31일 중국방문을 마치면서 신한국당 대선후보 교 체를 공론화하고 나선 것이다.


‘지사직 사퇴-출마’ 연결 고민

이 지사는 이날 귀국에 앞서 베이징주재 특파원들과 조찬 간담회에서 정 권재창출을 위해 누가 진정으로 민심에 부합하고 있는 후보인가를 진지하 게 검토해봐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공세를 시작했다. “신한국당이 대선 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며 “위기 타개를 위한 논의가 당 안에서 활발히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더욱 이 경선 결과 승복에 대해 “우리가 추구하는 민주정치 수준에서 보자면 불안정한 것이었고, 그 결과도 민심과 동떨어진 것이었다”고 말해 당의 승리를 위해 자신이 나설 수 있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이날 오후 김포공 항에 도착한 뒤 후보교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도 “당 위기의 본질을 외 면해서는 안 된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본질을 읽은 뒤 극복방안을 강구해 야 한다”고 말해 후보교체 공론화에 집착했다.

물론 이 지사는 직접 ‘후보교체’라는 단어를 꺼내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지사의 이런 발언은 그동안 출마를 위한 명분 찾기에 골몰해온 이 지 사가 일단 당내 위기 타개를 명분으로 후보교체를 공론화한 뒤 자신이 신 한국당 ‘대타’로 나선다는 전략을 굳혔다는 것을 의미한다. 병역 시비 로 수렁에 빠진 이회창 대표가 야당 후보들에게 밀리는 위기가 계속되고 이 대표의 친정체제 구축에 불만을 가진 민주계 등 이 대표 반대세력을 중심으로 ‘후보교체론’이 급속하게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을 이용해 자 신을 신한국당의 대안으로 내세우려는 계산인 것이다. 이 지사의 한 측근 은 “한가위가 지난 뒤에도 이 대표의 지지율이 여전히 답보상태라면 당 안에서 후보교체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을 의식하 고 있음을 시인했다.

더욱이 이 지사의 이번 전략은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려는 묘수풀이의 일 환이다. 이 지사쪽은 그동안 독자출마를 위한 기반 다지기에 온 힘을 쏟 아왔다. 24일 박찬종 고문을 만나 “정권 재창출에 적신호가 켜졌다”며 연대를 모색했다. 민주계에 대한 포섭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25일 최형우 고문 입원 뒤 민주계의 좌장구실을 해온 서석재 의원을 만난데 이어 26일 에는 경선 과정에서 이 대표 반대진영의 선봉이었던 서청원 위원장을 만 나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이 지사의 이런 노력이 뚜렷한 성과를 얻어 내지 못했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박 고문쪽은 “대선 정국의 변수가 좀더 명확해 질 때까지 지켜본다”며 입장 표명을 9월 이후로 미뤘다. 민 주계도 서석재, 서청원 의원 등을 중심으로 집단적인 모임을 계속하고 있 지만 아직 이 지사와 행보를 함께한다는 움직임은 전혀 없는 상태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독자출마 방침을 굳힌 이 지사쪽은 오히려 지사직 사 퇴와 출마선언 문제를 어떻게 연결지을 것인가라는 고민에 빠졌다. 내부 적으로는 9일께 지사직을 사퇴한다는 방침을 정했지만 출마선언으로 이어 지지 않을 경우 사퇴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난관에 봉착했다. 지사 직 사퇴 뒤 출마의사를 명확히 하지 않을 경우 이 대표쪽이 “왜 사퇴하 느냐”며 사퇴를 해당 행위와 무책임함으로 몰아붙일 경우 예상 밖의 어 려움에 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당장 출마를 선언하기에는 사정이 더욱 복잡하다는 데 고민이 있다. 이 경우도 경선결과 불복이라는 비난여 론에 맞닥뜨릴 뿐 아니라 신한국당 울타리를 박차고 나갔을 때 닥칠 무소 속 출마의 위험과 신당 창당에 따른 부담 등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 지사가 독자출마 할 경우 따라나설 세력이 마땅찮다. 현재 이 지 사 주변에는 김운환 원유철 김학원 김영선 의원 등이 있지만 이들만으로 는 탈당 뒤 군소후보 신세를 벗어날 수 없다. 더욱이 이들조차 탈당까지 불사하면 이 지사를 따를지 확신하기 어렵다. 섣불리 탈당을 강행할 경우 군소후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고 그렇다고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상 황인 것이다.


잘못하면 군소후보로 전락

결국 이 지사쪽은 당분간 후보교체론 공론화에 불을 당겨 이 대표를 몰아 세우면서 이 대표쪽의 친정체제 구축에서 배제된 뒤 대안 모색에 나선 민 주계와 보조를 맞추며 활로를 모색하겠다는 전략인 것이다. 실제 이 지사 쪽은 당초 한가위 전인 9일께 지사직을 사퇴해 추석기간의 여론 흐름을 살핀 뒤 곧바로 탈당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탈당 계획은 9월 말 이후로 미뤄졌다는 게 이 지사쪽의 설명이다. 이 지사의 한 측근 은 “경선불복의 비난여론과 군소후보로 전락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 독 자출마 여건이 더 무르익기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독자출마를 위해서는 최소한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20여명 정도의 의원을 확보하는 게 1차목표”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 대표 반대세력과 연대를 통한 세력확대와 명분축적을 통한 탈당시기 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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