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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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을 통해 문학과 역사의 관계를 되짚어 본 세 권의 책이 초가을 서점 가 서가에 나란히 올랐다. 한겨레 문화부 최재봉 기자의 <역사와 만나는 문학기행>(한겨레신문사 출판부)과 이근배 시인의 <시가 있는 국토기행>( 전2권, 중앙M&B), 서울대 국문과 김윤식 교수의 <천지가는 길>(솔)이 그 것이다. <…문학기행>과 <…국토기행>이 각각 우리나라 최근세사와 삼국 시대∼조선시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한 문학과 역사의 만남이라면, <…길> 은 중국의 화염산, 둔황 석굴, 진시황 병마총 등에 이르는 여행길에서 20 세기 한국문학과 한국사회에 대한 자기성찰을 담고 있다.
작품 뒷얘기와 삶의 지혜도 가득
<…문학기행>은 1894년 동학농민전쟁을 출발점으로 삼아 일제시대와 해방 공간, 전쟁과 분단, 독재와 개발의 시기를 거쳐 90년대의 서울 강남의 압 구정동에서 긴 여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지은이와 동행하며 서술된 각 지 점의 문학작품은 안도현의 시 <서울로 가는 전봉준>, 송기숙의 <암태도>, 서정주의 <마쓰이 오장송가>, 조정래의 <태백산맥>, 김승옥의 <서울 1964 년 겨울>, 신경림의 <농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박 노해의 <노동의 새벽>, 유하의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 등 시와 소설 43편이다.
유난히 현실에 대한 발언이 강한 한국 문학과 민족사의 수난시기인 최근 세사의 결합으로 기행은 아픔이 도드라져 보인다. 일본 후쿠오카의 감옥 에서 외롭게 숨져간 윤동주 시인의 절규나, 제주 4·3항쟁 때 국군의 집 단학살 현장에서 넋이 나간 채 간신히 목숨만을 건진 순이 삼촌의 한, 70 년대 성장제일주의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철거민들의 지친 삶의 모습이 그러하다. 일본의 태평양전쟁과 가미가제 특공대를 찬미하는 서정주 시인 의 친일시 <마쓰이 오장송가>는 굴절된 우리 역사와 문학의 과거를 들춰 낸다. 지은이가 미당의 작품을 다루게 돼 개인적으로 선생님에게 죄송하 다고 밝히면서도, “친일문학에 대한 평가와 반성작업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여정에서 지은이는 동행한 작가 들이 들려주는 작품의 뒷얘기와 삶의 지혜를 바지런히 나른다.
이근배 시인의 <…국토기행>은 조선시대까지 한국 문학사 1천년을 장식한 문인·사상가 60여명의 흔적을 좇아 나서는 국토여행이다. 의상대사가 창 건한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부터 시작한 기행은 남한을 한바퀴 돌아 서 울의 봉은사에 이른다. 의상, 허균, 율곡, 단종, 퇴계, 일연, 원효, 최치 원, 김정희, 윤선도, 정약용, 송순, 김시습, 조광조, 보우 등 선인을 만 나는 발걸음에서 이들의 시와 문학, 시대사상이 새롭게 빛을 발한다. “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현장을 찾아, 대숲이나 정자, 주춧돌에서 영감을 얻기 위해 머리를 찧고 또 찧어야 했다”는 지은이의 고백처럼, 이 나라의 산하가 만들어 낸 역사와 문화, 사람과 사상, 겨레의 정서가 유장한 언어로 되살아난다.
시대사상 만나며 지식인의 고뇌 토로
김윤식 교수의 <천지가는 길>은 1994년 1월과 이듬해 7월 두차례에 걸친 중국행의 산물이다. 여기서 천지는 백두산의 천지가 아닌 중국 신장성 우 루무치 근처에 있는 산정호수를 이른다. 기행은 세기말 인류와 문명의 향 방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과 맞닿아 있다. 중국의 고도 시안에서 마주치는 진시황과 현종의 흔적을 그들에 관한 역사적 기록과 비교하면서 문학과 역사의 관계를 밝히거나, 상하이에 남아 있는 임시정부 청사와 윤봉길 의 사의 거사가 있었던 홍구공원, 개화파 김옥균을 살해한 홍종우를 비교하 면서 구한말 동양 3국의 각축을 더듬는다. 특히 여행 내내 ‘사막의 사상 ’이라는 화두를 놓고 90년대 들어 나아갈 방향을 잃은 지식인들의 정신 적 공황상태를 사막에 비유하고 있다. 길지 않은 여행에서 문학과 종교, 역사와 철학이 공유하는 다채로운 사색의 풍요하게 펼쳐진다.
김창금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