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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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가 아니라 여럿, 이것이 아니라 다른 것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그리 새롭지도, 특별하지도 않은 말처럼 들린다. 그렇지만 역사를 통해 이런 복수성(複數性)에 대한 강조는 항상 그리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 다. 복수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기존의 것이 아니라 다른 가능성, 즉 대 안이 있을 수 있다는 말로 통한다. 그리고 기존의 정치체제나 경제체제, 기존의 과학이나 기술이 아니라 다른 무엇이 있을 수 있다는 이야기는 변 화의 가능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존의 체제와 이해관계를 갖는 사람들에게 이런 주장이 달가울 리 없다.
우리는 대개 지금의 과학을 유일무이한 것, 또는 필연적인 무엇으로 생각 하는 경향이 있다. 동양의 과학에 대한 논의에서 심심찮게 제기되는 중국 이 서양보다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음에도 근대적인 과학이 전개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식의 물음도 이미 그런 가정을 기초로 삼고 있다. 즉, 과학이란 서양에서 전개된 과학을 말하는 것이며, 모든 것은 이 잣대를 기준으로 재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알게 모르게 배어있는 것이다. 그렇지 만 우리가 당연시하는 과학은 절대적이거나 항상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통해 탄생했고 그 범위가 구획된 하나의 산물이다 . 물론 그렇게 되기까지는 지금 우리가 몸담고 살고 있는 토대인 물질적, 정신적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과 떼려야 뗄 수 없이 밀접하게 연관된 무수 한 요인들이 작용했다. 따라서 기존의 과학이나 기술의 형성과정을 손바 닥 뒤집듯이 간단히 무시하고 다른 가능성을 내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과학이 가져다준 많은 이득을 누리고 있는 것 또한 분 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과학이 역사적 산물임을 인식하는 것은 다른 과학 과 기술의 가능성을 뒷받침해주는 중요한 출발점이다.
그동안 과학에 대한 역사적, 사회적 접근이 힘들었던 데에는 과학을 둘러 싸고 횡행해온 여러 가지 신화들이 큰 몫을 해왔다. 그중에서 가장 큰 신 화가 과학이 객관적이라는 신화이다. 과학은 객관적인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사회과학이나 인문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세계를 지배하는 객관적인 법칙이 존재하며, 과학과 과학자 의 임무는 이 법칙성을 찾아내는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그렇지만 이런 전제는 뉴턴의 시대라면 모를까 오늘날에는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세계가 거대한 시계장치처럼 법칙과 원리에 따라 정교하게 돌아간다는 생 각이나, 몇가지 기본법칙이 밝혀지면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으리라는 믿 음은 사실이 아닌 환상이다. 사실 우리가 객관적인 것처럼 생각하는 물리 법칙도 실제로는 경험법칙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아인슈타인의 특수상 대성이론과 일반 상대성이론이 발표된 지 거의 1백년이 지났고, 양자역학 이 수립된 지도 그와 비슷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3백년 전의 뉴턴적 과 학관이 위세를 떨치고 있는 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이런 현상은 기이한 것이 아닐 수 있다. 과학이 객관 적이라는 신화가 그처럼 오랫동안 유지되는 것은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 지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신화를 부추기고, 확산시키고, 재생산하는 어떤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세력은 분명한 형태를 갖춘 집단이나 기 관, 단체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무정형적인 것일 수도 있다. 하지 만 그런 신화를 통해 직간접으로 이득을 얻는 여러 집단들이 존재하는 것 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이런 이해관계는 원자폭탄을 제조했던 맨해 튼 프로젝트와 같은 덩치 큰 과학에서만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과학 과 기술에서 동일하게 작용한다. 바늘끝만한 득실이 엄청난 판단의 차이 를 가져오는 예는 비일비재하다. 이런 과학으로 이득을 얻는 국가나 집단 들에게 진리 추구를 위한 성스러운 연구라는 신화는 더할나위없이 편리한 방패다. 따라서 과학을 둘러싼 신화들은 신화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데올로기는 절대 저절로 깨지지 않는 속성 을 갖는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과학에 대한 역사적, 사회학적 접 근이 이루어지고 있다. 본질적으로 이러한 접근은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깨뜨리기 위한 노력의 성격을 갖는 셈이다.
김동광/ 과학세대 대표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