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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의 글쓰기는 내 글쓰기를 가로막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서로를 부 추겼다.”
미국의 소설가 아나이스 닌이 노골적인 성애 묘사로 잘 알려진 헨리 밀러 와의 관계를 설명한 일기의 한 구절이다. 둘은 문학적인 토론과 비평의 동반자였을 뿐만 아니라 10여년 동안 서로에게 성적 에너지를 발산하며 지냈다. 그들이 나눈 문학적 교류와 성적 교감은 서로의 작품세계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실제로 헨리 밀러의 소설 <북회귀선> 에 아나니스 닌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위대한 예술가 커플의 10가지 이야기>(위트니 체드윅·이자벨 드 쿠티브 론 외 지음, 최순희 옮김, 푸른숲 펴냄)는 위대한 예술가의 삶에 대한 고 정관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고독한 천재의 정진으로 작품이 탄생되기 보다는 고통스런 성적·예술적 관계를 형성해 공동작업을 벌임으로써 작 품의 밀도를 더했다는 것이다. 불꽃처럼 살다간 20세기의 천재적 예술가 10쌍은 그런 관계의 결실이다. 이 책은 창조의 동반자이며 성적으로 결합 했던 예술가를 다루고 있다. 그 가운데는 혼인관계였던 로베르 들로네 부 부, 앙드레 말로 부부, 잭슨 폴록 부부 등 네 커플과 함께 이성 연인사이 였던 카미유 클로델과 오귀스트 로댕, 바네사 벨과 던컨 그랜트, 릴리언 헬먼과 대시얼 해멧, 레오노라 캐링턴과 막스 에른스트, 아나이스 닌과 헨리 밀러 등이 등장한다. 또한 버지니아 울프와 비타 색빌-웨스트는 동 성연인으로 등장한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역사적으로 동등한 평가를 얻은 것은 아니다. 동반자 관계는 인습의 벽을 넘지 못하고 한 사람을 역사의 그늘에 가두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두 사람은 신화가 되어 현실 속에서 재평가되고 재창조되기 도 한다. 이 책 역시 예술가의 숨겨진 연인을 발굴하는 미덕을 품고 있다 . 위대한 남자들의 모방자로 여겨지던 창조적인 여성들의 작품 세계를 느 낄 수 있는 것이다. 클라라 말로와 리 크래스너, 레오노라 캐링턴의 경우 가 그렇다. 그럼에도 프랑스 작가로 인종을 뛰어넘어 탁월한 문학적 업적 을 성취한 시몬느와 앙드레 슈바르츠-바르트 부부는 예술가의 행복한 결 합으로서 동등하고 풍요로운 동반자 관계의 모델을 제시한다.
김수병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