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이주의 독자

오흥녕씨

“<한겨레21>은 유익한 정보가 많아 시간이 흐른 뒤에 읽어도 빛이 납니 다. 그래서 어려운 부탁을 한 가지 드릴까 합니다. <한겨레21> 정기구독 을 신청하겠으니 집으로 부치지 마시고, 제가 찾아갈 때까지 모아주실 수 없겠는지요.”

지난 95년 2월에 오흥녕(25)씨가 <한겨레21> 앞으로 보낸 편지 내용이다. 창간호부터 한호도 거르지 않고 <한겨레21>을 모으던 그에게 군 입대는 커다란 고민을 안겨 주었다. 보수적인 부모님은 ‘한겨레=빨갱이’라는 생각을 버리지 않은 상태였기에 집에 모아둘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군대 에 <한겨레21>이 배달될 리 없기에 최후의 선택으로 <한겨레21>에 보관하 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리고 30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정기구독 기간이 끝날 즈음에 그는 어김없이 <한겨레21>에 편지를 보냈다. 편지봉투에는 구독료와 함께 <한겨레21>이 잘 쌓여 있는지를 확 인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때로는 ‘<한겨레21> 연애편지’ 등 부록을 꼼꼼히 챙기기도 했다. 1만원 안팎의 사병 월급을 한푼도 안 쓰고 모아야 정기구독료를 마련할 것인데, 일시불로 대금을 치르는 정성이 놀라웠다. “휴가 때 모으는 수밖에 없었어요. 맘껏 쓰고도 싶었지만 우리 시대의 역사를 챙기는 것보다 소중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식과 떨어져 지내며 만날 날을 기다리는 기분이었습니다. 자식에게 투자하는 것인데 아까울 것은 없었죠. 올 초에 입금할 때 인상되기 전의 금액을 입금했는 데 더 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시간이 지난 <한겨레21>을 볼 그에게 추 가 구독료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한겨레21>은 제대선물로 추가 구독 료를 면제해 주었다.

그는 엉뚱한 일을 잘 저지르기로 소문난 사람이다. 92년에 대선 때는 김 대중 후보에게 10장짜리 장문의 편지를 보내 재야와의 정책연합을 촉구하 기도 했다. 또 얼마 전에는 한길사에서 나온 80여만원에 이르는 <한국사 전집> 구입작전을 벌였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는 그이기에 전공과 관련된 제대선물을 스스로 장만하려 했던 것이다. 결국 출판사의 도움으로 30% 할인혜택을 받아냈다. “한번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이루고 마는 성격입니다. 순간적인 판단에 얽매이는 경우도 적지 않아 고민스럽지만, 아직까지 크게 후회할 일은 저지르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멀리 보며 깊이 생각하려는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2년6개월의 공백이 두렵기도 하다. 그는 먼저 1백30여권에 이르는 < 한겨레21>을 독파할 예정이다. 사회 흐름을 파악하는 최선의 방법이라 여 기기 때문이다. 이젠 성숙한 예비역 학생이 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일 이다. 그는 ‘병역 정국’에 대해 뼈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어둠의 자 식들이라고 하는 현역 복무를 했지만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나름대로 소 중한 체험으로 기억하고 싶습니다. 굵은 땅방울을 흘리는 현역 군인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부도덕한 ‘병역면제’는 용서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골수 ‘한겨레 팬’ 오흥녕씨는 요즘 <한겨레21>의 평생독자가 되는 방법 을 찾고 있다.

김수병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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