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하는 재벌/한라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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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난 1월 이임식에서 그룹 깃발을 정몽원 새 회장에게 넘겨주는 정인영 명예회장.)
“다시 젊어져 사업을 한다면 더 멋지게 한번 해보겠습니다.” 정인영 한 라그룹 명예회장의 일에 대한 정열은 대단하다. 올해 79살의 고령으로 휠 체어를 타고 다니는 정 명예회장은 이임을 앞두고 한 언론과의 회견에서 “신규사업이나 큰 프로젝트는 앞으로도 계속 챙기겠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 명예회장은 올해 들어서도 중요한 해외사업 프로젝트는 직접 담당하고 있다. 그는 지난 5월 한라가 영국에 합작투자한 중장비공장의 준공식에 직접 참가했으며, 지난 4월에는 인도네시아 비만타라그룹과 종 합자동차부품공장을 현지에서 합작건설키로 합의하는 데도 전면에 나섰다 . 이에 앞서 미국의 A&T사와 정보통신 시스템 및 통신망 구축사업을 공동 추진하기로 한 의정서에 서명한 것도 그였다.
그는 회장 재임시절부터 매년 2백일 이상 해외출장을 다녀온 것으로도 유 명하다. 해외출장은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도 계속되고 있다. 한라그 룹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지난해 모두 2백26일을 해외에 체류했으며 올 해도 벌써 1백30일동안 해외출장을 다녀왔다고 한다. “사업을 하려면 직 접 상대방과 면담을 해야 제대로 상대방의 반응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
그러나 정 명예회장의 이같은 해외사업에 대한 정열은 “정부의 규제완화 ”를 주창하는 자신의 지론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게 그룹관계자의 설명이 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명예회장은 해외투자는 금융시장이나 땅값이 안정되고, 정부의 규제가 걸림돌로 되지 않는 선진국에 하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며 “마찬가지로 우리경제를 살리는 길도 결국 규제완 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정 명예회장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각종 언론 기고를 통해 규제완화를 주 장하고 있다. 지난 7월 한국능률협회가 주최한 최고경영자 하계세미나에 는 노구를 이끌고 직접 참석해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들이 역경을 딛 고 살아남기 위해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데 반해, 우 리는 한심스럽게도 규제를 강화하고 국영기업체제를 고수하려는 듯한 태 도를 보이고 있다”며 정부의 각종 규제를 강력히 비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일반적으로 세계에서 규제가 적은 나라일수록 정치가 안정 되고 경제가 성장하고 사회도덕이 건전해서 부정부패가 가장 적은 것으로 돼 있다”는 그의 주장에 대해 “규제완화”라는 대원칙에는 동의하면서 도 구체적인 문제로 들어가면 동의 정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또 일각에서 는 그의 지론이 지난 80년 혼신의 힘을 다해 일궈놓은 현대양행 창원공장 과 군포공장을 정부의 중화학공업 투자조정조치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정 부에 뺏기는 아픈 경험을 맛본 것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어떻든 정 명예회장은 규제완화를 주장하는 만큼 정경유착과는 비교적 거 리가 먼 인물로도 꼽힌다. 그가 지난해 한국경영학회로부터 ‘경영자대상 ’을 받은 것도 노태우 비자금 사건에 연루되지 않은 ‘깨끗한 기업인’ 이라는 점이 중요하게 고려된 것으로 전해진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