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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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노동운동은 다시 부활하는가?
지난 8월 미국 최대 택배회사 미국소포서비스(UPS)를 상대로 한 25년 만 의 미국 최대 파업이 노조쪽의 승리로 일단락되면서 미국 내에서 ‘노동 운동의 부활’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팀스터스란 별칭을 가진 미국 국제운수노련은 지난 8월4일부터 UPS쪽에 정식 전일근무자 비율을 확대하 고 노조가 주도하는 연금제도를 단독 운영하려는 회사쪽의 계획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파업에 들어갔다. 노조원들은 그동안 시간제 임시직이 50% 에 육박하는 등 고용불안이 가중되고, 임시고용자의 시간당 임금도 평균 10달러 선으로 시간당 평균 20달러의 임금을 받는 정식 직원의 절반에 불 과하다고 불만을 털어놓았다. 노조원들은 UPS가 지난 93년 이후 새로 고 용한 직원 4만6천여명의 82.6%인 3만8천명을 시간제 임시직원으로 충원하 는 등 임시직 고용 강화로 나가고 있다고 반발해왔다.
파업 결과 노조쪽은 8월18일 시간제 근로자의 기본급 인상, 회사쪽의 연 금계획 배제, 수천명의 시간제 근로자들의 전일제 근무 전환 등을 따내며 파업을 승리로 이끌었다. UPS는 미국 소하물시장 80%를 점유하고 하루 평 균 배달물량 1천2백만 건을 취급하는 미국 최대의 우편물 주택배달회사이 다. 약 20만명의 노조원을 자랑하는 미국 국제운수노련이 따낸 이번 승리 는 UPS에 안겨준 90년 만의 첫 패배이기도 했다.
노동자 파업 승리는 50년 만의 개가
하지만 이에 대한 미국 내의 평가는 상반된다. 우선 이번 파업은 상당수 산별노련 가입률이 10% 이하로 떨어진 미국 노동운동의 재출발이라는 견 해가 있다. 그러나 또다른 쪽에서는 이번 파업이 운수노조가 마피아 이미 지를 벗기 위해 엉뚱하게 UPS를 볼모로 잡은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또 파업의 쟁점이었던 비상근 시간제 고용구조와 실질임금의 상대적 하락에 대해서도 경제계 안팎에서 설전이 계속되고 있다.
먼저 이번 파업 승리를 미국 노동운동의 전체 흐름에서 자리매김하려는 평가를 보자. 매사추세츠주립대학의 노동문제 전문가 토머스 주라비치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파업 승리는 노동쪽이 거둔 50년 만의 개가다. 이 평가에 따르면, 제2차대전 뒤 지난 50여년 동안 미국의 노동운동은 하강 곡선을 그려왔다. 먼저 대전 직후 3백건이었던 연평균 주요 노동쟁의 수 가 지난 95년에는 37건 정도로 줄었다. 게다가 파업을 통한 싸움에서 노 동자쪽이 승리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동안 정부도 노동보다는 자본쪽 입장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이런 경향 은 80년대 들어 레이건의 항운노조원 집단해고로 상징되는 반노동정책으 로 굳어졌다. 민주당 전국위원회에서조차 과거 지지기반이던 노동계를 ‘ 애물단지’로 치부하려는 움직임이 형성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 UPS파업은 미국 노동계에 몇가지 의미를 던져준다는 것이다. 우선 이번 파업에서는 클린턴 행정부가 노동쪽에 ‘우호적 중립 ’을 지켰다. 먼저 클린턴은 47년 태프트-하틀리법을 발동해 달라는 UPS 고용주쪽의 요구를 묵살했다. 이 법에 따르면, 국가 안보에 위험 가능성 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대통령의 직권으로 파업 중지를 명령할 수 있다 . 오히려 클린턴 행정부의 알렉시스 허만 노동부 장관은 대체노동력을 투 입하려는 UPS쪽을 견제하면서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종용했다.
노동계의 연대도 활발했다. AFL-CIO는 지난 8월12일 파업중인 UPS 노조원 18만5천여명을 돕기 위한 전면적인 자금 지원을 선언했다. AFL-CIO의 존 스위니 회장은 “이 문제는 단지 UPS만의 것이 아니라, 미 노동운동 전 체가 걸린 사안”이라며, 매주 1천만달러씩의 파업 자금을 무기한 지원하 겠다고 밝혔다.
주 정부들도 비상근 시간제 노동을 주제로 청문회를 열어 노동계 대표의
의견을 수렴했다. 일부 주의회 의원들은 아예 운수노동자들의 시위대열에
합류하여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여론도 노동쪽을 지지했다. 파업기간 중
에
그러나 논자에 따라서는 이번 파업을 ‘노동운동계 내부의 싸움일 뿐’이
라고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이번 파업은 미국의 노총에 해
당하는 AFL-CIO 위원장 존 스위니가 감독을 하고 국제운수노련 위원장 론
캐리가 주연을 맡은 대리극이었다. 미국인들은 운수노조하면 늘 범죄·조
직폭력·부패 행위를 떠올린다. ‘운수노조 위원장-마피아-감옥행’은 늘
연결된 하나의 이미지였다. 지역 운수노조들도 회사쪽의 구사대에 대항하
기 위해 반구사대 깡패들을 조직원으로 영입했다. 한때는 운수노련 연금
기금이 마피아의 통제에 따라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의 주요 돈줄로 둔갑하
기도 했다. AFL-CIO조차 한때는 운수노련을 축출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 AFL-CIO를 이끄는 존 스위니가 침체된 노동운동을 회
복할 방안으로 UPS를 희생양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UPS꺾기’는 바닥에
떨어진 운수노련의 이미지도 회복하고 쉽게 승리를 끌어낼 수 있는 만만
한 회사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 여기에는 운수노련 위원장 캐리의 계산도
보태졌다. 그는 파업 직전까지 운수노조의 마피아 지배를 정점에 올려놓
았던 지미 호파의 아들 제임스 호파와 선거무효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캐리는 잘 만하면 이미지 변신과 시간벌기를 이룰 수 있겠다고 계산했음
직 하다. 게다가 노조가입률이 10% 미만인 여타 노조에 비해 운수노련의
약 20만 노동자들은 그의 통제 아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조연으로 상정된 UPS는 더욱 만만한 기업이었다. UPS의 소유주는 전문경
영인과 자사출신 퇴직자로 구성되어 있다. 게다가 중간관리층 가운데는
자사 노동자 출신이 많다. 한마디로 노동-자본이 한솥밥을 먹는 처지라는
독특한 구조이다. 행정부쪽의 중재가 아니었더라도 대체노동력을 투입하
기 어려운 구조였다는 분석이다. 더구나 ‘비상근 시간제 근무’가 미국
의 꿈을 짓밟는다는 구호를 내건 스위니의 전략은 더욱 UPS를 표적으로
선택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사실 신속한 주택배달 우편서비스를 담당하
는 UPS의 성격상 시간제 근무는 어쩔 수 없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전
체 노동자의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UPS 시간제 근무자 가운데 40%가 대학
생 아르바이트생이다. 이 분석의 결론은 “언론계의 과대평가와는 달리
이번 파업타결로 운수노동자들이 실제로 거둔 이익은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런 분석에도 불구하고 이번 파업은 대다수 미국인들의 지지를 받았다.
미국인들은 이번 파업으로 지난 95년 연방공무원의 파업으로 인한 정부
업무마비사태보다도 더 심한 어려움을 경험했다. 그런데도 왜 이번 파업
의 지지도가 그렇게 높았을까? 그 이유는 이번 파업이 실질임금의 상대적
하락을 절감하고 있는 대다수 미국 서민들의 열망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미 경제는 유례없는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들은 실질임금이
하락하는 등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이 많다는 것이다.
기존의 노동운동이 일반인들의 지지를 못받았던 이유가 장기근무자를 중
심으로 한 소수 엘리트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데 있었다면, 이번
운수노련 파업의 승리는 주변부 노동대중의 이해를 대변했던 데 있다는
것이다. 로버트 라이시 전 노동부 장관은 <보스턴 글로브>에 기고한 글에
서 이번 파업은 기업의 새 전략에 적절히 대응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그
에 따르면, 기업쪽은 인원감축전략(다운사이징)에서 임금깎기 전략(다운
웨이징)으로 전환해왔다. 다운웨이징이란 ‘2저1고’(낮은 인플레, 낮은
실업률, 높은 주식시장열)로 대변되는 미국 경제의 호황국면에 임금의 상
대적 하강동결로 높은 이윤율을 확보하려는 기업쪽의 전략을 말한다. 이
런 환경에서 실질임금은 인플레를 고려하면, 89년 대비 5%가 줄었다. 라
이시는 이번 파업을 기업쪽의 이러한 새 전략을 정면대결로 깬 쾌거라고
평가했다.
과연 이번 운수노련의 파업승리가 미국의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는 신호탄
인지, 단지 일시적인 승리일 뿐인지는 좀더 지켜볼 일이다.
보스턴=윤성주 통신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노동계 연대 활발… 내부싸움 주장도
실질임금 하락에 대한 국민적 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