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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 예외는 없다

“채식주의자도 크로이츠펠트 야코브병(CJD·인간광우병)을 피할 수는 없 다.”

최근 영국에서는 12년간 쇠고기를 먹지 않은 채식주의자가 인간광우병에 걸림으로써 광우병 공포가 또다시 전국을 강타하고 있다. 이는 광우병의 잠복기간이 예상보다 훨씬 길거나, 우유나 치즈만으로도 이 병에 걸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이다.

잉글랜드의 켄트지방에 살고 있는 클레이 톰슨(24·여)은 12년 전부터 고 기가 전혀 들지 않은 식단을 꾸며왔다. 유난히 동물을 사랑했던 그는 우 유나 치즈는 먹었지만, 육류음식은 물론 동물성 지방이 들어간 음식까지 도 엄격하게 가려온 채식주의자였다. 그가 완전 채식주의자로 돌아선 것 은 광우병에 대한 존재조차 드러나지 않았던 지난 85년이었다. 그런데 결 혼을 앞두고 있었던 이 처녀가 변형 야코브병(v-CJD)으로 진단을 받은 채 이제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잠복기간 10년이라는 학계 발표 뒤집어

인간과 광우병과의 관계가 최초로 증명된 지난 95년 이후 영국에서 발병 한 인간광우병 환자는 모두 25명(정부통계 21)이다. 환자의 연령분포는 1 0대에서 40대에 걸쳐 있으며, 특히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환자가 많 다. 그중 이번 경우처럼 변형 야코브병이라 이름 붙여진 환자가 4명이며, 이들 중에는 채식주의자도 포함돼 있었다. 지난해 인간광우병으로 숨진 피터 홀(20)도 그중 하나다. 그도 몇해 전부터 채식으로만 지내왔다. 하 지만 톰슨과는 달리 그의 채식기간은 짧았고, 따라서 그의 인간광우병은 이전에 먹은 쇠고기 탓이라고 쉽게 결론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톰슨의 발병은 정부와 의학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지금까 지 그 어떤 사례보다 잠복기간이 길기 때문이다. 학계는 우선 이번 ‘사 태’가 지난 85년 이전에 섭취한 광우병 쇠고기로부터 감염되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지금까지의 통설은 인간광우병의 잠복기간은 보통 1 0년 정도일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학계의 잠정결론대로라면 이 병의 잠복기는 적어도 12년 이상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학계 일각에서는 인간광우병이 광우병 소의 육류뿐만 아니라 우유 와 치즈로도 전염될 수 있다는 주장을 다시 제기하고 있다. 톰슨의 발병 으로 이제 우유와 치즈에 치명적 단백질분자인 프리온이 함유되어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부 산하기관인 해 면양뇌증 자문위원회 위원인 리처드 레이시 박사는 아주 적은 양에 감염 된 우유라 할지라도 장기간 섭취할 경우 높은 수치로 감염된 고기와 똑같 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처음부터 경고해왔다. 지금까지 학계의 다수는 우 유에서 프리온을 추출하려던 실험들이 모두 실패했기 때문에 우유는 안전 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레이시 박사는 “실험용 쥐에게 우유를 먹여 결과를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스런 결론을 내릴 수는 없는 일”이라며 우 유가 병균의 전이체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 이다.

학계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톰슨 사례는 인간광우병이 지속적으로 늘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일반인을 공포감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자문위원회의 존 패티슨 교수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심각하게 생각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제 어떤 경로로 얼마만큼의 환자가 발생할지 감히 예상할 수 없으며, 현재 환자 숫자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라 는 지적이다.


현재 환자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지금까지 광우병으로 진단받은 소의 숫자가 총 16만여건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1백만마리 이상의 광우병 소가 톰슨이 채식을 시작한 지난 85년 이후 소비자들의 식단에 올랐을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특별히 고기음식 을 즐기지도 않았고 평소 동네 정육점이나 슈퍼마켓에서 안심하고 고기를 사먹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1백만분의 1의 극히 낮은 발병률을 갖고 있다는 인간광우병이 이제 더이상 남의 일로 들리지 않게 됐다.

이런 소식과 함께 현재 야콥병 사망환자의 유가족들은 정부 농수산부를 상대로 고소를 준비하고 있다. 그들은 이 병의 이름을 ‘인간광우병’으 로 부를 것과 독립조사기관을 둘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직 태워없애야 할 소들의 시체가 쌓여 있고 광우병 고기 밀반출사건 등 이전의 파동이 가라앉지 않고 있는데, 이제 영국은 인간광우병의 시한폭탄을 떠안아야 할 운명도 피할 수 없게됐다.

런던=권은정 통신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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