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사람이야기

‘아빠의 자리’에 선물한 동시

“어젯밤 텔레비전을 보니/ 붉은 머리 뱁새 아기새가 똥을 싸자마자/ 어 미새가 얼른 먹어 치운다./ 냄새가 나면 천적인 다른 새가/ 채갈까 봐 그 런다나/ 아마도 우리를 누가 잡아가려고 한다면/ 아빠도 우리 똥을 먹고 말 거야./ 암 먹고 말 거야.”

김영환(42·국민회의) 의원이 펴낸 동시집 <똥먹는 아빠>(산하)의 한 대 목이다. 정치인이 동시를 쓰다니 의외다. 그의 동시 쓰기는 부인 전은주 씨의 권유로 시작됐다. 국회의원이 된 뒤 아이들(1남2녀)과 함께 하는 시 간을 내기 힘들게 되면서 갈수록 아이들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 답답해하 는 남편의 모습을 보고 동시 쓰기를 제안했다. 부인 전씨는 올해 초부터 안산 자택을 ‘책의 기쁨’이란 어린이도서관으로 꾸며 그림책, 동화 등 2천여권의 책과 다큐멘터리·자연물 비디오를 갖추고 운영해왔다(0345-41 3-9479).

초선의원인 김 의원은 지난 86년 이래 몇 편의 시집과 산문집을 펴낸 문 인이긴 하지만 동시집은 처음이다. 하지만 그는 몇 달 동안 늦은 밤 서울 에서 안산으로 내려가는 길에 수첩을 꺼내들고 동시를 적기 시작했다. 하 나의 동시를 쓴 뒤에는 세 아이를 앉혀놓고 읽어주고, 심사를 받았다. 그 러자 여섯살, 아홉살, 열두살배기 아이들도 동시를 쓰기 시작했다. <똥먹 는 아빠>에는 김 의원뿐 아니라 아이들의 시도 담겨있다.

한 권의 책으로 묶을 만큼 동시가 풍성해 진 뒤에는 부인이 알고있는 안 산의 미술학원과 ‘어린이 문화를 가꾸는 엄마 모임’ 자녀 등 아이들 40 여명이 시를 읽은 뒤 감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 동시집에는 된장찌개, 개울의 멱감기, 버드나무, 까치집, 사마귀 등 옛날 동시에 나왔음직한 이 야기들 외에도 휴가길 교통체증, 황영조, 복제인간, 화상전화, 믹서기, 컴퓨터, 핸드폰, 시화호 등 요즘 이야기들이 함께 들어있어 아버지 세대 와 아이들 세대의 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

김 의원은 “동시를 쓰면서 아이들과 좀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면서 “ 앞으로 정말 좋은 동시집 한 권을 더 내고 싶다”고 말했다.

권태호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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