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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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백벌이나 되는 옷을 다리고 꿰매느라 공연이 시작될 때까지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8월15일 막이 올라가고 <뉴욕타임스> 등 현지 신문에 의상이 좋다는 호평이 나오자 비로소 ‘아, 내가 제법 했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뿌듯한 마음이 들더군요.”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에 겁없이 날아갔던 첫 한국산 뮤지컬 <명성황후>가 기대 이상의 평점을 받고 귀국한 날, 무대의상을 맡았던 김현숙(43)씨는 ‘보람’이라는 단어를 실감했다. 평소 공연평이 짜다고 소문났던 현지 언론들이 ‘화려하면서도 장중한 스타일, 깊고 풍부한 질감’ 등 무대의 상을 따로 평해주었기 때문이다. 유학에서 돌아온 지 꼭 10년 만에 자신 의 작품으로 본바닥 사람들을 감동시켰다는 기쁨과 자신감이 차 올랐다.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다녔지만 전공보다는 극예술연구회 활동에 푹 빠져 지냈어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 중반은 학교가 문을 연 때보 다 닫고 있을 때가 더 많던 유신시절이었지요. 암울한 현실보다는 휘황하 게 우리의 자유와 삶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극장과 무대가 저를 사로잡았고 , 연극을 더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들끓었습니다.”
미국 일리노이대학에서 김씨는 무대의상을 선택했다. 연출, 연기, 무대미 술 등 두루 해봤지만 만든 옷을 사람들에게 입혀 전혀 다른 인물로 변하 는 과정을 보는 것이 특별히 통쾌하고 재미있었다. 유학 떠나기 전 국제 복장학원에서 1년쯤 양재를 배운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무대의상을 만드는 일은 인물의 성격을 창조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지 요. 무대미술과 조명과 의상이 그야말로 삼위일체가 돼야 제대로 된 연극 이 나옵니다. 우리나라에선 무대의상을 그저 얼렁뚱땅 하고 있는데 그래 선 연극이 발전할 수 없지요. 학교에서 체계적으로 정확하게 가르쳐야 하 고, 이 분야에 전문가들이 많이 나와서 제대로 해야 합니다.”
‘한국적’인 것을 정확한 고증을 거쳐 당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정신으로 되새김질해 내는 것이 그가 갖고 있는 무대의상관이자 꿈이다. “내 몸 속에 흐르는 정체성, 문화관의 뿌리를 캐내 옷으로 보여주고 싶 어요.”
세계연극제가 열리고 있는 9월에만 그가 작업해야 할 극이 5편이 넘는 바 쁜 일상에서도 그는 연극원 강의와 새 작품을 위한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
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