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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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지리산 칠선계곡의 석이버섯 무침.)
중부고속도로 곤지암 인터체인지를 지나 S자로 굽은 긴 언덕길을 내려서 면 길은 다시 곧게 펴지고, 오른쪽으로 바위색이 준수한 산그림자가 마주 선다. 저명산(猪鳴山) 또는 도드람산이다. 주말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이 라면 한번쯤은 찾는 곳이다. 큰 산은 아니지만 바위 능선이 아기자기하고 중부고속도로와 곤지암, 덕평 등 경기내륙의 들녘이 한눈에 들어와 그런 대로 좋다. 산록에는 작은 암자가 하나 들어있고 샘의 물맛이 각별하다. 암자 툇마루에 걸터앉아 산의 내력을 물으니 퍽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옛날 이천에 효심이 지극한 청년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병을 얻어 몸져 눕고 말았다. 백약이 무효하고 석이(石耳)만이 약이 된다는 것이었다. 아들은 즉시 도드람산을 올라 바위에 줄을 매고 석이를 따기 시작했다. 한참 이 바위 저 바위를 오르내리는데 난데없이 위에서 산돼지가 울부짓는 소리가 들렸다. 놀라기도 하고 이상히 여겨 올 라가보니 밧줄이 바위에 쓸려 거의 끊어지기 직전이 아닌가. 이 얘기를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이때부터 ‘돼지가 울어 효자를 살렸다’는 뜻으 로, 이 산을 저명산이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천군 안에 바위산이라고는 저명산 뿐이다. 예부터 암벽마다 석이가 그 렇게 많이 돋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한잎도 볼 수가 없다. 저명산뿐 아니라 서울 근교 용문산 일대와 관악산까지도 바위를 얼룩얼룩 수놓던 석이가 보이지 않는 것은 10여년이 훨씬 넘는다. 학자들은 산성비 탓이라 고 한다. 바위에 낀 이끼들 틈에서 돋아나 이슬을 받아먹으며 자라는 석 이가 산성비에 씻겨 멸종단계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위도 옛처럼 검거나 짙은 무늬가 벗겨지고 하얗게 표백된 백악(白岳)이 되어간단다. 서울 변 두리뿐 아니라 도시와 공단이 몰려 있는 서해안쪽 기류가 닿는 태백산맥 의 서쪽 자락까지 이런 현상이 일고 있다니 안타깝다.
그런데 이처럼 귀해진 석이가 지리산 천왕봉 아래 칠선계곡에서는 아직 나물로 상에 오른다. 반갑고 한편으론 생소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칠선 계곡 중턱에 자리잡은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추성산장집(0597-62-2422)이 바로 그런 집이다. 지리산 산록에서 농사를 짓던 주인 허아무개(52)씨가 민박과 함께 음식점을 시작한 것이 이제 5년째라는데, 아직은 지리산에서 나는 산나물과 고사리, 표고버섯, 도토리묵 따위로 상을 차리는 데 크게 모자람이 없다고 한다.
석이는 나물꾼들이 천왕봉 기슭 암벽에서 따오는 것을 받아놓고 예전처럼 그냥 팔기도 하고 나물로 무쳐내기도 한다. 그렇게 귀한 거라는 인식보다 는 “그건 좀 비싼 거라요”라고 말하는 정도다. 값도 한접시에 1만원으 로, 3~4인 가족이 먹기에 충분하다. 옛날에는 줄이 약해서 1년에 마을 남자들 한둘은 석이를 따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죽기도 하고 다치기도 했 지만, 요즘은 줄이 좋아져 그런 일이 없다고 한다.
지리산에서도 천왕봉 일대에서나 볼 수 있게 된 석이는 이끼처럼 암벽에 돋아나 비에 젖거나 이슬을 흠뻑 먹으면 마치 귀처럼 일어난다. 그 모습 이 바위의 귀같다고 해서 석이다. 돋아나 자라는 모습이 특이하고, 생김 새와 맛은 비교할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특하다. 그래서 예부터 죽을 병에 걸린 사람도 살린다는 신비의 먹거리로 불려진 모양이다. 특히 지리 산 석이는 강원도와 경북 산악지대에서 나는 석이들과도 다르다. 잎이 크 고 탄력이 뛰어나며 맛 또한 각별하다.
석이는 바위에 돋는 것이어서 손질이 많이 간다. 속살에는 잘잘한 돌들이 박혀 있어 충분히 우려 가죽을 빨 듯 빡빡 비벼 몇번이고 씻어내 몸에 지 닌 돌들을 다 떨어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도 생가죽처럼 부스러지거나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일이 없는 것이 또한 신기하다. 깨끗이 씻은 석이는 참기름을 붓고 살짝 볶는다. 이 때 조선장으로 간을 하며 마늘 다진 것만 약간 넣는다. 그리고 볶은 깨를 살짝 뿌린다. 그냥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어도 별미다.
이곳 석이를 알고 찾아오는 사람들의 얘기로는 석이는 맛도 그만이지만 먹고나면 술이 좀 과했어도 몸이 가볍다고 한다. 게다가 다음날 아침엔 기억에 남을 정도로 쾌변을 경험할 수 있단다. 석이가 온몸에 기를 원활 하게 풀어주 효과를 실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탄복할 정도 로 진귀하고 맛있는 먹거리임에 틀림없다.
석이버섯 찾으러 천왕봉에 오른다
지리산은 전라도 산이지만 천왕봉은 경상도에 있다. 천왕봉 동남쪽으로는 대원사 계곡이 드리웠고, 북쪽으로는 칠선계곡이 흘러내려 대조를 이룬다 . 칠선계곡은 천왕봉을 직선으로 오르는 가장 빠른 등산로이기도 하다. 닥쳐올 추석연휴도 있고 하니, 내친 걸음에 천왕봉을 한번 올라보는 것도 좋을 법하다.
대중교통편으론 함양행 직행버스를 타고 함양읍에 가서 칠선계곡행 시내 버스를 타면 되고, 승용차로는 88고속도로 지리산 인터체인지에서 내려 들어간다. 오가는 길에 실상사도 들러보면 좋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