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스포츠/연재-월드컵의 진실(1)

월드컵 축구의 살인적 마력

(사진/월드컵 본선 진출은 국가의 영광으로 국민의 절대적 성원을 받는다. 94 월드컵에서 응원에 열심인 한국인들.)

9월6일부터 프랑스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이 펼쳐진다. 한국은 과 연 월드컵 본선 연속 4회 진출이라는 꿈을 이룰 것인가. 벌써부터 축구팬 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관심이 달아오르고 있다. 축구만큼 사람들을 열광 시키는 스포츠는 없다. 축구, 특히 월드컵에서의 승패는 자살을 부르고 난동을 부추기며 나라와 나라 사이를 갈라놓기도 한다. 월드컵은 그래서 ‘축구전쟁’으로 불리기도 한다. 98년 프랑스 월드컵과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월드컵의 역사와 뒷얘기를 시리즈로 더듬어본다.<편집자 >

지난 82년 스페인 월드컵 준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후보 브라질이 이탈리 아에게 2-3으로 져 탈락하자 브라질엔 난리가 났다. 당시 외신은 2명이 자살하고 5명이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전한다. 일본인 마트모토는 <세계는 왜 축구에 열광하는가>라는 책에서 “놀랍게도 32명의 축구팬이 패전의 충격으로 자살했다”고 자살자 수를 더 높게 잡기도 했다. 그때 브라질에 서 정말로 몇사람이나 자살했는지 확인할 길 없지만 아무튼 국가대표팀이 월드컵에서 지면 살맛을 잃을 정도로 브라질 사람들은 축구의 마력에 흠 뻑 빠져 있다.


한 경기에 20만5천여명이 공식 관람

스페인 월드컵 당시 독일인 1명도 경기 결과에 불만을 품고 자살했다. 1 차리그 2조에서 서독이 오스트리아에 1-0으로 이겨 두팀이 모두 2차리그 에 진출했는데, 그게 야합에 의한 결과라는 게 자살 이유였다. 당시 1승1 패인 서독은 2승인 오스트리아를 이겨야만 2차리그 진출이 가능했고, 오 스트리아는 지더라도 대량실점만 하지 않으면 되는 상황이었다. 경기가 시작한 지 10분 만에 서독이 1점을 올린 뒤 두팀은 전혀 공격을 시도하지 않고 운동장을 거닐었다. 프랑스의 이달고 감독이 “노벨평화상을 받을 경기”라고 야유했을 정도였다. 서독과 오스트리아는 이웃해 있을 뿐 아 니라 서독의 프로축구팀에는 오스트리아 선수들이 많이 진출해 있었으므 로 서독이 두팀 모두에게 안성맞춤인 1-0으로 이긴 것은 야합의 혐의가 짙었다. 어쨌든 경기에 이겨도 “야합에 의한 승리는 수치”라고 분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만큼 독일 사람들의 축구 사랑은 뜨겁다.

월드컵은 이처럼 살인적인 축구의 마력이 폭발하는 한마당이다. 지난 50 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제4회 월드컵 결승 리그의 실질적 결승전인 브라질-우루과이전 유료입장객은 19만9천8백54명 . 총입장객이 20만5천명이었고 비공식 통계는 25만명에 가까웠다고 한다. 스탠드가 넘쳐 지붕에까지 사람들이 올라가 관전을 할 정도였다. 한 경기 입장객 20만5천명은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세계최고 기록이다.

월드컵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는 텔레비전 시청자수에서도 잘 나타난다.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텔레비전 시청자수는 연 1백66억명이었다. 그 러나 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은 연 2백67억명이었고 94년 미국 월드컵은 연 3백20억명이었다. 텔레비전 시청자수로 나타난 관심도는 월드컵이 올림픽 을 크게 앞지른다. 시쳇말로 “도저히 게임이 안 된다.” 오죽하면 68년 멕시코 올림픽을 멕시코 사람들은 70년 멕시코 월드컵의 리허설쯤으로 여 기고 치렀겠는가.


시청률, 올림픽은 게임도 안된다

30년 우루과이에서 열린 제1회 월드컵은 나라와 나라 사이마저 갈라놓았 다. 결승전서 아르헨티나가 우루과이에 2-4로 패해 우승을 놓치자 아르헨 티나 국민들은 “심판의 판정이 불공정했다”며 우루과이 영사관 앞에 벌 떼처럼 몰려갔다. 이들은 영사관에 돌과 빈병을 던지며 폭동을 일으켰다. 결국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는 국교를 끊고 말았다.

69년 7월 치러진 멕시코 월드컵 북중미·카리브해 지구예선 준결승은 전 쟁으로까지 번졌다. 당시 플레이오프에서 1승1패로 맞붙은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는 경기에 총력을 기울였다. 이 경기에서 엘살바도르가 온두라스 를 3-2로 이겼으나, 그건 전쟁을 알리는 대포소리였다. 3차례의 경기 도 중 일어난 응원단끼리의 투석, 여성에 대한 폭행 등으로 악화될 대로 악 화된 두 나라 관계는 급속히 악화됐고, 6월 말에는 국교 단절로 이어졌다 . 여기에 국경분쟁까지 겹쳐 7월3일 급기야 전쟁으로 돌입했다. 8월5일 전투가 끝날 때까지 두 나라의 전사자는 합쳐서 3천명에 이르렀다. 대체 월드컵이 뭐기에!

고두현/ 스포츠평론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9월11일 제 1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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