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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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주주권리 포기하지 맙시다." 지난 2월 참여연대가
명동거리에서 벌인 제일은행 소액주주 권한선언운동.)
반란은 시작됐다! 대주주들의 횡포를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 않겠다는 소 액주주들의 집단 움직임이 지난해 말부터 봇물처럼 터져나오고 있다. 물 론 과거에도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동안은 대부분 대주주와 소수주주의 경영권 분쟁 와중에 소수주주가 대주주에 대 항하기 위해 소액주주들을 규합하려는 움직임이었을 뿐, 소액주주들만의 독자적인 움직임은 드물었다.
기관투자가들도 침묵하지 않는다
소액주주들이 자기권리를 선언하고 나선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94년 11월 한국강관이 부도를 내면서 소액주주들이 회사쪽과 외부감사인인 청운회계 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건이다. 김아무개씨 등 소액투자자 1 6명은 당시 “부실한 회계처리로 주주들을 현혹시키고 분식결산과 부실감 사를 한 책임”을 물어 3억1천9백만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법원에 냈다. 결국 이들은 배상금으로 실제 손해액의 90%에 이르는 2억3천여만원을 지 급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렇듯 막대한 소송비용을 들여가며 소송을 내는 것으로 시작된 소액주주권의 행사는 이제 임시주주총회 개최요구, 회계장부열람권 행사 등으로 점차 확대돼가고 있다.
지난해 10월, 대한펄프 소액주주 8명은, 회사쪽이 정보통신분야에 진출한 다고 공시했다가 이를 번복하자 대표이사의 퇴진을 요구하며 집단행동에 들어갔다. 소액주주들은 법원에 임시주총을 신청하기에 앞서 2백여명의 소액주주들을 규합해 35%의 지분을 확보했다. 이 사건은 회사쪽이 “작전 세력들의 경영권뺏기 전략”이라며 증권감독원 및 재경원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등 논란을 빚다 결국 소액주주들이 임시주총소집 허가 신청을 취하함으로써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를 통해 대한펄프는 불공정거래조사 를 받고 주주의 거래내역이 공시되는 등 기업경영활동의 공개가 이뤄졌다 .
무학주조, 금복주, 대선주조 등 지방소주 3사는 지난해 OB맥주 주식 15% 를 사들인 뒤 OB맥주를 상대로 회계장부 열람 및 등사의 권리를 신청해, 지난 1월 서울지원 남부지원으로부터 권리를 확인받았다. 이들 지방소주 사들은 “OB맥주의 자회사인 경월그린소주가 자신의 연고지에 침입하는 것을 막기 위한 압력행사용으로 지분을 매집했다”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 만, 어떻든 소액주주들이 회계장부를 비롯해 전표, 영수증, 계약서까지 열람 또는 등사할 수 있는 막강한 권리를 행사하는 길을 열었다.
한국투자신탁의 사례는 기관투자가들도 더이상 침묵하지만은 않는다는 사 실을 보여줬다. 지난 1월 미도파가 사모전환사채를 발행할 움직임을 보이 자 한국투자신탁은 기관투자가로는 처음으로 소액주주를 대표해 강력한 반대의사를 전한 것이다. 한국투신은 “미도파가 전환사채를 발행하면 주 가하락이 예상된다”면서 “만약 발행을 강행할 경우 미도파를 인수합병 하려는 세력에 보유지분을 넘길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대주주에게 손해이기만 할까
그런데 소액투자자들의 반란은 과연 대주주들에게 손해만 끼칠까? 지난해 12월 여성의류업체인 대현의 소액주주 박아무개(44)씨가 소액주주들을 규 합해 경영진에 대항한 사례는 소액주주들과 대주주의 이익이 충돌하지만 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당시 박씨는 “대현의 경영전략이 미래에 대한 비전제시에 소극적이고 배 당성향도 낮아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경영을 잘하기 위해 건설적인 지혜를 모으자”고 호소했다. 박씨가 이런 광고를 내게 된 것은 2만원대에 산 주식이 1만7천원대로 떨어진 데다 경쟁업체들이 16∼2 0%를 배당하는데도 대현은 10%의 배당을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박씨의 광 고는 열띤 호응을 받아 일주일 만에 1백50여명의 소액주주들이 모여 ‘대 현의 비전을 추구하는 주주모임’이 결성됐다. 회사쪽은 이들과 대화에 나서 배당을 18%로 올리고, 환경산업과 정보통신 분야로 진출한다는 공격 적 경영계획도 발표했다. 올 들어 주주모임은 증시침체로 주가가 계속 떨 어지자 “각자 보유주식의 10%씩만 사들여 주가를 떠받치자”고 호소해, 대현의 주가를 경쟁업체보다 2천∼3천원 높여놓기도 했다.
한보사태 이후 참여연대가 중심이 돼 벌이고 있는 조직적 활동은 우리나 라 소액주주운동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제일은행의 소액 주주 52명은 참여연대의 도움을 받아 지난 6월 초 이철수·신광식 전 행 장 등 전현직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불과 0. 5% 지분이 전체 주주를 대표해 한보그룹에 대한 부실대출에 관여했던 이 사들에게 은행에 입힌 손해를 개인돈으로 배상해 원상복구 시켜놓으라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 밖에도 지난 6월24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3월 발행 된 6백억원어치의 사모전환사채 발행 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 위원장은 “소액주주운동이 시작되면서 은행 이 옛날보다는 철저하게 대출심사를 하는 것 같다”면서 “그것이 일시적 으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어렵게 할 수도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은행경영을 감시함으로써 기업의 부실화를 막는 효과도 가져올 것”이 라고 말한다.
제도적 제약 여전히 심해
그러나 소액주주들의 권리찾기에는 아직도 제도적인 제약이 많다. 지난 4 월 증권거래법이 바뀌면서, 소액주주들의 권리실현은 전보다 쉬워졌다. 그동안 불법행위를 한 이사·감사에 대한 대표소송의 자격은 6개월 이상 동안 5% 이상 주식 소유자로 제한되던 것이 1%(자본금 1천억원 이상은 0. 5%) 이상으로 완화됐다. 또 1년 이상 주식 3% 이상을 보유했을 경우에는 기업비리와 관련된 주주총회 소집, 회계장부 열람 등을 청구할 수 있게 됐다. 개정 전에는 5% 이상이라는 요건을 충족시켜야 했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이 단 한주만 갖고 있어도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 있는 것에 비하면 여전히 소액주주들이 대표소송을 내기란 쉽지 않 다. 소송비용도 외국처럼 정액으로 돼 있지 않아 몇푼을 위해 막대한 변 호사비용을 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집단소송제도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 소액주주들의 권리실현을 방해한다. 기업으로부터 피해를 본 불특정 다수 중 한 사람이라도 소송을 제기해 보상을 받으면 나머지 사람들도 이런 절차를 밟지 않고 같은 내용의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집단 소송제도가 우리나라에는 아직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미 둑을 타넘기 시 작한 소액주주들의 반란의 물결은 이제 누구도 거스르기 힘든 물살을 이 뤄가고 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정남구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