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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길거리로 가져가라"

(사진/문학과 대중의 부단한 만남을 강조한 리타 더브.
아프리카계 최초, 최연소 계관시인 기록을 갖고 있는 미국
현대시단의 대표시인이다.)

미국 현대 시단(詩壇)을 대표하는 시인 중 한명인 리타 더브(Rita Dove) 가 민족문학작가회의 초청으로 처음 한국을 찾았다.

아프리카 흑인과 체로키 인디언 피를 물려받은 여성인 리타 더브(45·버 지니아대 석좌교수)는 1977년 <열편의 시>로 문단에 나온 뒤 1987년 시집 <토머스와 뷸라>(Thomas & Beulah)로 퓰리처상을 수상했으며, 지난 93년 에는 아프리카계 흑인으로서는 최초·최연소로 미국 시인에게 주는 최고 의 영예인 ‘계관시인’에 선정된 바 있다. <토머스와 뷸라>는 20세기 중 엽 미국 남부에서 북부 산업도시로 일자리를 찾아 방황하는 조부모의 파 란만장한 역정을 토대로 흑인 가족의 삶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더브는 이 작품 등 5권의 시집과 장편소설, 단편집 등을 냈으며, 미국 내 에서 27개의 크고 작은 문학상과 15개의 명예박사학위를 받는 등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더브는 1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민족문학작가회의 주최 ‘제2 회 세계 작가와의 대화’에서 ‘시짓기의 현실:<토머스와 뷸라>의 생성과 정’이란 주제로 강연하고, 고은 신경림 정호승 김혜순 김정환 등 한국 시인들과 함께 자작시 낭송회도 가졌다. 더브는 작품뿐 아니라 뛰어난 시 낭송가로도 유명하다.

더브는 미국의 계관시인으로서 시의 대중화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다. “시를 길거리로 가져가자!”는 더브의 ‘구호’는 90년대 들어 시가 독 자들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한국 시단에도 확실한 좌표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 8월12일 한국 도착 직후 가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더브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시를 지키기 위한” 미국 문단의 노력을 소개했다. 공립 학교, 도서관, 공공집회 등에서의 시낭송회, 시와 재즈의 만남 같은 다른 장르와의 합동공연 등이 꾸준히 열리고 있으며, TV의 문학프로그램 및 < 세서미 스트리트>와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에서도 시인들이 출연해 시를 낭송하고 이야기한다. 더욱이 시를 위한 1분짜리 공익광고까지 만든다. 도서관의 시낭송회는 모두 녹음돼 도서관에 소장된다. 더브는 이런 작업 들이 “시와 대중과의 괴리가 매우 커지고 있는 현실에서 시를 살리기 위 한 노력”이라며 시인들이 적극적으로 대중 속으로 들어가려는 노력을 펼 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서는 시인들이 1일 국어교사로도 많이 나서 는데, 시는 어려운 것이라는 막연한 인식을 가진 청소년들이 시인을 직접 만나봄으로써 시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는 기회를 많이 제공하자는 취 지다. 우리나라 문화정책자들이나 문단이 적극적으로 고려해볼 방법들이 다.

더브는 미국 내 흑인 및 소수민족과 여성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시를 쓸 때 항상 자신이 아프리카 흑인이고 차별받는 여성이란 사실을 의식하며, 그런 시각에서 미국 사회의 문제를 걸러내려 노력한다”는 더 브는 미국에서도 인종·여성차별은 여전히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말한다. 그러나 흑인과 백인, 남자와 여자 따위의 대립적이고 획일적인 규정은 오 히려 편견을 심화하기 때문에, 자신은 인간 개개인의 개별적 감수성과 경 험을 기록함으로써 인간존재의 보편성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더브 시의 핵심적 주제가 집-가족인 것도 이런 자신의 문학관과 무관하지 않다 . 인간의 진실한 경험 속에서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것인데, 대표작 <토머스와 뷸라> 역시 14세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를 회고하는 외할머니 의 이야기를 20여년 뒤 시로 ‘기록’한 것이다.

한편 더브는 미국 문학의 장래에 대해 비교적 어두운 전망을 토로했다. 소수의 뛰어난 본격 작가들이 있지만, 이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로 대부분 의 작가들은 출판사의 상업주의적 요구 때문에 본격적인 문학작품을 생산 하기 어려운 구조라는 것이다. 따라서 신진 작가들이 좋은 작품을 출판하 기가 점점 어려워질 뿐 아니라 기성 작가도 총체적인 사회문제를 심도있 게 다루기보다는 단편적인 사실의 짜깁기식 창작으로 흐르고 있다고 비판 했다.

더브의 미국 문학에 대한 전망은 한 사회의 시대정신을 총체적으로 반영 하고 이끌어내는 문학이 점점 어려워져 가는 한국의 현실과도 흡사해 보 인다. 더브는 그러나 “시를 들고 길거리에 나가 보면 대중들 속에 시에 대한 갈망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느낀다”며 문학과 대중의 부단한 만남을 강조했다.

고은 시인의 시를 읽었고, 지난해 독일문학잡지의 한국특집을 통해 한국 시인들의 세부적이고 섬세한 디테일 묘사에 감명을 받았다는 더브의 문학 세계는 격월간 <내일을 여는 작가> 제8호(97년 7·8월호)에 자세히 소개 되어 있다.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세계 시인 초청 강연 프로그램인 ‘세계 작가와의 대화’는 더브에 이어 오는 11월에는 프랑스 원로시인 미셸 드 기를 초청할 계획이다.

이인우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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