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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이끄는 19세때의 따스한 손길"

서른다섯 나이의 이진명씨. 남들이 학업을 모두 마쳤음직한 나이에 때늦 은 미국 유학을 결심한 늦깎이 유학준비생이다. 말이 유학이지 사실 어학 연수나 다름없다. 일단 일년쯤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했을 뿐이다. 하 지만 그는 자신에 차 있다. 그 확신의 밑바닥에는 16년 전 목숨을 건 도 전과 그 과정에서 만난 한 노동자에 대한 고마운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다. 대학입시를 막 마친 그는 고교 3년 동안 가지고 있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과감한 도전에 나섰다. “입시만 끝나면 내 나 라 곳곳을 속속들이 들여다 보겠다”는 야무진 꿈을 실현하기 위해 도보 여행을 시작한 것이다. 보름 동안 동대문 버스정류장 근처에서 찹쌀떡을 팔아 마련한 돈 5만원과 군인담요 2장, 그리고 20여일치 식량과 밑반찬이 전부였다.일단 전남 무안까지 기차를 타고 떠난 그는 그곳에서 부산을 향 해 출발했다. 부산-대구-강릉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려는 계획이었다. 여 행은 너무도 춥고 힘겨웠다. 담요 2장에 의지해 대합실에서 선잠을 자고 길에서 밥을 해먹으며 엿새 만에 겨우 부산에 닿았다. 오랜 여행으로 발 은 동상에 걸리고 온통 부르텄다. 결국 구포다리 위에서 의식을 잃고 쓰 러졌다. 앞서 가던 한 청년을 잡고 “아저씨 살려주세요”라는 애원과 함 께.

흐릿한 정신 속에 그는 어딘지 모를 곳으로 부축돼 갔다. 다리를 건넜다 는 기억과 공장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둑을 지나 자그마한 집으로 들 어서고 있다는 느낌 뿐이었다. 일주일 동안의 도보여행에 지친 그는 그렇 게 깊은 잠에 빠졌다. 다음날 눈을 뜬 그는 너무도 놀랐다. 부르튼 발은 깨끗이 씻겨져 있었고 물집마다 한뜸한뜸 실이 끼워져 있었다. 그리고 조 그마한 침대 하나뿐인 허름한 단칸방 구석에서 석유난로가 따스한 온기를 발산하고 있었다. 방바닥에는 “바빠서 먼저 출근하니 라면이라도 끓여먹 고 문 잠그고 가거라”는 편지와 함께 방 열쇠만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옆방 아주머니에게 물어물어 그 청년이 “구포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 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다.

신승근 기자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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