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경의 맛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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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진주 콩나물 해장국집에서 내놓는 상차림.
3천원으로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는 해장국을 즐길 수 있다.)
경남 진주와 전북 전주는 영호남의 손꼽히는 맛고을이다. 두곳은 음식의 고유한 맥을 서로 달리하면서도 그 내용이 서로 비슷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서로 쌍벽을 이룰 만큼 유명한 비빔밥은 두 고장을 대표하는 음식 으로 전통이 이어지고 있고, 해장국 문화에서도 두곳 모두 똑같이 ‘콩나 물 해장국’이 주축을 이룬다.
음식문화가 뿌리내리는 데는 그 고장에서 특별하게 나는 먹거리가 한몫을 한다지만, 두곳은 콩나물에서도 좋은 콩과 독특한 콩나물 재배문화를 지 니고 있다. 특히 진주의 콩나물 기르는 법은 독특하다. 진주를 중심으로 영남 남해안에 이르는 지역이 거의 비슷하지만, 이 지역에서는 콩나물을 항아리에 기른다. 그래서 진주와 마산, 김해 등지의 새벽장을 나가보면 노란 콩나물이 소복하게 자란 항아리를 가득 실은 리어카나 소형 트럭이 이집저집에 콩나물 항아리를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마치 활짝 핀 국화 화분처럼 아름답다.
항아리는 밑으로 물이 빠지도록 돼 있고 중간쯤에 나무판을 깔고 콩을 앉 힌 다음 물을 주어 싹을 틔운다. 이렇게 키운 콩나물이어야 질감이 연하 고 향이 제대로 난다고 한다. 콩나물 수요가 늘어난 요즘도 이 지역에서 는 콩나물 항아리에서 직접 뽑아주는 콩나물이 아니면 팔리지 않는다. 특 히 진주 장거리에는 예로부터 콩나물이 “억시게 난다”고 할 정도로 콩 나물을 즐겨 먹는다.
그러니 진주의 술국이 콩나물해장국인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진 주 시내에서 콩나물해장국을 가장 잘 끓이는 집은 옥호 자체가 ‘진주 콩 나물해장국집’(0591-41-6918)이다. 중앙동 강소아과 앞에서 10년이 넘도 록 이름났던 집으로, 지금은 진주시청 제1청사 옆 본선동 골목에 자리잡 고 있다.
새벽 4시에 문을 여는 이곳은 콩나물해장국 이외에 따로국밥, 선지백반 등 해장국을 전문으로 내놓는다. 주인 한기연(64)씨는 음식값을 여러 해 동안 올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한 그릇에 3천원 하는 해장국집으로도 통한다. 하루에 40∼50개의 콩나물 항아리가 시간에 맞추어 배달돼올 정 도로 이름나 있다. 뚝배기에서 바글바글 끓는 채 상에 오르는 해장국은 콩나물해장국답게 싱싱한 콩나물이 듬뿍 들어 있다. 노란 머리의 하얀 몸 매가 항아리에서 막 뽑아낸 것처럼 싱그럽다.
주인의 설명에 따르면 콩나물은 물기가 많고 살이 연해 팔팔 끓는 물에 살짝 데쳐 탈수가 되지 않도록 하고, 빳빳한 기운만 죽여줄 정도라야 먹 을 때 아삭아삭 씹히고 향이 그대로 살아나 입맛을 당겨준다는 것이다. 바지락과 마늘, 파, 양파, 무 등 30여가지의 양념이 들어갔다는 맑은 국 물도 새우젓만으로 간을 해 개운하고 깔끔하다. 맑게 우려낸 국물은 다른 솥에서 설설 끓고 있고, 이 국물을 뚝배기에 떠내 밥을 말고, 데쳐낸 콩 나물과 파 썰은 것을 얹어 다시 한소끔 끓을 때 상에 낸다. 담백하면서도 시원한 뒷맛이 일품이다.
몇 수저 훌훌 떠마시고 나면 술먹은 속이 화끈하게 풀리고, 온몸에 땀이 흥건히 배어나며 심신이 맑아진다. 전주의 콩나물해장국처럼 걸쭉하지 않 으면서 깔끔한 뒷맛이 있다. 요즘은 술국뿐 아니라 하루종일 냉방에서 꼼 짝않고 지내는 직장인들, 아침 일찍 출근하는 공무원들의 아침거리로 인 기가 더 높다고 한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하루종일 시도때도 없이 술 국인 콩나물해장국을 먹는다고 한다. 술국이 아니라 요기와 함께 몸이 개 운해지는 식약 겸비의 별미이기 때문이다.
미래식품으로 인정받은 전통의 먹거리
콩나물(豆菜)은 우리 민족의 전통적인 먹거리다. 가정에서도 쉽게 재배되 어 퍽 넓게 애용됐다. 예전에는 먹거리뿐 아니라 약재로도 썼다. <동의보 감>에서도 독이 없고 맛이 달며 “오장과 위의 맺힘을 풀어준다”고 해, 해장국의 확실한 효과를 입증해주고 있다.
영양가도 비타민C와 B를 포함해 각종 효소와 단백질, 섬유질이 고루 들어 있고, 무엇보다 일반 가정에서도 재배가 가능하다. 더 많은 먹거리로 개 발돼 식약을 겸한 미래품으로 이용됐으면 하는 바람이 굴뚝같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