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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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기아자동차 회생을 위한 사원들의 몸부림은
휴일에도 이어진다. 생산라인에서 차체에 각종 부품을
조립하고 있다.)
광복절인 지난 8월15일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자리잡은 기아자동차 소 하리공장. 청명한 가을날을 연상케 하는 푸른 하늘을 머리에 인 공장은 거대한 생명체처럼 뜨거운 숨을 내뿜고 있었다.
휴일임에도 이른 아침부터 공장 안 생산라인에서는 아직 도장작업을 마치 지 않은 차량의 뼈대와 몸체 등이 차례로 밀려나온다. 줄지어 늘어선 산 업용 로봇들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팔을 내뻗으며 프레지오와 베스타 등 승합차 차체 부품을 조립한다.
차체1부 소속 이병훈(47) 주임은 오늘도 공장에 나와 생산라인을 돌보느 라 여념이 없다. 벌써 몇주째 휴일근무다. 요즘은 프레지오 등 승합차의 수출물량이 밀려 있어 더욱 바쁘다. 새로 개발돼 출시를 앞두고 있는 다 목적 레저차량 KV-2의 차체를 막바지 점검하는 것도 그가 해야 할 몫이다 . 휴일근무에 연일 계속되는 연장근무. 그렇지만 힘든 줄도 모른다.
상여금·각종 수당 반납하고 구슬땀
‘제2의 봉고신화’. 창립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는 회사를 살려내 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속을 꽉 채우고 있다.
이 주임은 지난 80년 당시의 위기극복이 성장의 저력이 됐듯 이번 위기도 잘만 이겨낸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기아 노조도 회사 살리기에 발벗고 나섰다. 그러자면 직원들의 희생도 비례해 야 한다.
기아자동차 노조는 상여금과 상반기 월차수당, 휴가비와 각종 경조사비 등을 반납했다. 임금인상도 동결했다. 한달 50ℓ씩 나오던 유류티켓 지급 도 포기했다. 때문에 빤한 월급을 쪼개 생활하는 월급쟁이 이 주임도 허 리띠를 더욱 졸라매야 한다.
20년 경력의 이 주임이 받는 월급은 기본급과 각종 수당을 합해 월 1백80 만원 정도. 여기에 상여금이 800%다. 그동안 땀의 대가로 어렵게 마련한 집 한채가 전 재산인 이 주임으로서는 당장 가계에 큰 주름살을 감수할 수밖에 없게 됐다.
대학 1학년인 큰딸과 고교 2년인 아들의 방학이 끝나면 당장 등록금 등 학비로 3백만원의 뭉칫돈이 필요하다. 그러나 직원자녀 학자금으로 지원 되던 2백만원은 물론 이번달 보너스 약 1백30만원도 함께 반납했다. 남들 은 여름휴가도 다녀오고, 광복절과 일요일이 낀 징검다리 휴일에 막바지 피서여행도 떠나지만 이 주임에게 이런 휴가는 남의 얘기일 뿐이다. 꼭 필요한 학자금 등 가계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는 보험회사에서 1천만원 을 대출받았다. 또 박봉을 쪼개가며 5년 동안 알뜰히 부어온 주택마련적 금과 보험을 헐었다. 이렇게 마련한 돈 가운데 학자금과 생활비 등 당장 필요한 자금을 빼고 5백만원을 노조에서 벌이고 있는 모금운동에 냈다. 부인은 얼마 전부터 하루 4시간 동안 파출부로 나가고 있다. 당장 쪼들리 는 살림에 보태기 위해서다.
이 주임은 “집사람도 회사가 어려운 점을 알고 잘 참아줘 미안하기도 하 고 안쓰럽기도 하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그가 더욱 안쓰러워하는 것 은 자녀들이다.
대학 1학년인 큰딸은 스스로 용돈을 벌기 위해 최근 2군데 아르바이트를 나가고 있다. 고교 2년으로 한창 입시준비에 돌입해야 할 아들에게는 다 니던 학원을 그만두도록 했다. 학교에서 하는 정기저축도 중단하도록 했 다.
“집안을 먹여살려야 할 가장으로서는 기가 죽을 수밖에 없죠. 그러나 아 들 녀석이 ‘학원을 그만두더라도 그만큼 더 열심히 공부하겠다’며 제법 어른스런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니 이런 어려움이 오히려 애들 교육에 더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부인도 일터로, 구사자금 조성
요즘 이 주임의 출근시간도 한 시간 앞당겨졌다. 서울 신림동에 있는 자 택에서 5년이 된 낡은 캐피탈 승용차를 타고 출근길에 올라 오전 7시30분 쯤 회사에 도착한다. 퇴근시간도 오후 8시를 넘기기 일쑤다. 토요일 근무 도 오후 5시30분까지로 연장됐다. “지난 80년 1차 오일쇼크 이후 위기 때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그뒤 봉고신화로 위기를 극복했습니다. 소하리 공장은 봉고신화의 발상지입니다. 다시 한번 신화를 일구겠습니다.”
그는 80년대 초의 봉고신화를 되돌아본다. 지난 80년 오일쇼크 이후 회사 의 누적적자는 5백여억원에 이르렀다. 당시 정부는 중화학분야 투자조정 조처를 취하면서 기아로 하여금 승용차 생산을 포기토록 한 데 이어 82년 동아자동차(현 쌍용자동차)에 합병한다는 인위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마련 했다. 이때 기아 임직원들은 “어떤 경우라도 회사를 살리겠다”며 어려 워진 회사 살림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급여인상분과 상여금 전액을 반납 하고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등의 단결력을 과시해 회사를 살려냈다. 이어 승합차인 봉고를 내놓으면서 기아는 3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때는 쉬는 날이 없었습니다. 회사에 살다시피 했죠. 밤 11시가 되어 퇴근하면 파김치가 된 몸으로 골아떨어지기 바빴습니다. 그러나 회사를 살려야겠다는 의욕만은 넘쳤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일을 했는데도 하루 일과가 즐거웠죠.”
회사를 살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회사 밖에서도 이어진다. 퇴근 뒤에는 동네 골목에 주차된 차에 판촉 홍보지를 꽂아 놓고 친인척과 아는 이들에 게 전화로 차량계약을 권유·판매하는 것도 요즘 그의 일이 됐다. 이렇게 해서 벌써 5대를 계약했다.
그가 이 회사에 들어온 것은 지난 77년 5월이니 벌써 20년이 넘었다. 이 주임은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다른 자동차업체 정비사업소에서 근 무하다가 지난 74년도에 독립해 자동차부품업체를 경영하기도 했다. 그러 나 철판파동으로 사업실패의 좌절을 경험한 뒤 기아자동차 생산직 사원모 집 공고를 보고 경력사원으로 입사했다.
20년 전 입사 당시 그의 하루 기본급은 2천2백원. 여기에 잔업수당 등을 합하면 12만∼13만원이 손에 쥐어졌다. 78년 결혼해 전세로 신접살림을 시작한 그에게는 빠듯한 액수였지만 힘든 줄 몰랐다. 딸 아들이 차례로 태어나고 소원이던 내집 마련의 꿈도 이뤘다.
전화위복 의지 담은 신차에 기대감
그동안 꼼꼼한 일처리로 인정받은 그는 보임조장과 직장을 거쳐 지난 90 년도부터 주임을 맡고 있다. 상용차 및 승합차를 생산하는 차체1부의 현 장생산과 품질관리 안전 및 노무 설비 등 제반사항을 관리하는 중책이다. 그가 맡고 있는 3과의 인원은 모두 1백24명. 신입사원 교육이나 라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등은 직접 생산라인에 서기도 한다. 이 주임은 요즘 곧 출시를 앞두고 자신이 막바지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KV-Ⅱ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KV-Ⅱ는 Kia Victory-Ⅱ의 줄임말입니다. 제2의 봉고신화를 이루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죠. 앞으로 신차가 잇따라 출시되면 지금의 위 기를 딛고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겁니다. 또 기아 회생을 바라는 국민들 의 성원에도 보답해야겠지요.”
기아자동차 노조에 대해 일부에서는 민주노총의 주력인 노조가 그동안 자 기들의 목소리만 높여온 것이 현재 위기의 한 원인을 제공했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주임은 이에 대해 “노조가 그동안 강성 이미지를 많이 비쳐온 것도 사실”이라며 그러나 “이번 위기를 맞아 노조가 똘똘 뭉쳐 회사 살리기 운동에 나선 것을 보고, 선배로서 젊은 후배들과 함께 손잡고 나서면 회 사를 살리는 데 노조가 큰 역할을 해내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실제 기아자동차 노조는 지난 15일부터 1천억 모금운동을 벌여 한사람당 1천만원씩 모금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벌써 6백억원 가까이가 모였다. 노 동자로서 가장 힘든 것은 역시 감원이다. 그룹 전체에서 모두 8천8백여명 을 감원하기로 했다. 3천6백여명이 할당된 기아자동차에서만 지난 8월11 일 현재 9백여명이 퇴직신청을 했다. 한 관리직 사원은 “정년을 몇년 앞 둔 고참사원들이 회사를 살리고 후배들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퇴직신청을 하는 모습에 눈물이 어린다”고 말했다.
기아자동차의 이런 회사 살리기 노력은 생산직뿐만 아니라 일반직 사원도 마찬가지다. 노사협력부 허윤(35) 대리도 최근 허리띠를 바짝 조여맸다. 89년에 입사해 다섯살짜리 아이와 임신 7개월된 부인과 함께 사원 임대아 파트에서 살고 있는 그는 가장 큰 꿈인 내집 마련의 꿈을 당분간 접어둬 야 할지도 모른다. 허 대리는 시흥시내에 분양받은 24평 아파트 중도금으 로 마련해놓은 돈 5백만원을 회사살리기 모금으로 냈다.
일터 떠나면서도 회사에 대한 강한 애착
“요즘 집안의 음식쓰레기가 부쩍 줄었습니다. 상여금, 연월차 수당 등을 반납하고 살림을 꾸리다보니 식료품도 소포장 단위로 사고, 그것도 값이 싼 공판장에서 조금씩 사다보니 우선 식단부터 표시가 나더군요. 전에는 생활비가 모자란다고 푸념하던 아내도 요즘은 오히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어차피 앞으로 시장이 개방되면 일본차 등 외제차와 힘든 경쟁을 벌여야 하는데, 이번 위기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체질 개선의 기회로 삼 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어려움에 처한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직원들이 일치단결하는 모습에서 제2의 봉고신화는 꼭 실현될 것으로 자신한다”고 말했다.
지창은 기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