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야기/아둘 키에우보리분 아나온 키에우보리분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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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만 ‘5·18’이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이에도 ‘5·18’이 있다. 80 년과 92년, 12년의 시차가 있지만 이 두 5·18은 반군부·반독재를 외치 는 성난 민중들의 함성으로 아시아를 뒤흔들었다.
해마다 그날이 오면 아둘 키에우보리분(사진 왼쪽·55)과 안냐온 키에우 보리분(50) 부부는 5년 전 군인이 쏜 총에 쓰러진 아들 키티콘을 생각하 며 눈물에 젖는다. 92년 5월18일 당시 키티콘은 갓 스무살 생일이 지난 젊은이였다.
그날 방콕의 시민들은 부정으로 얼룩진 3월 총선에 대한 분노와 군사정권 의 퇴진을 요구하는 피끓는 목소리로 시 전역을 자유의 성지와 민주주의 의 제단으로 만들었다. 군부와 경찰의 발포로 쓰러진 학생과 시민의 숫자 는, 정부의 공식발표가 39명 실종에 1728명 부상인데 반해 희생자 가족들 의 모임인 ‘5월 영웅 유가족위원회’가 조사한 결과는 시신 44구 발견, 실종 87명, 부상 3천여명이었다. 타이 국민들은 희생자들을 영웅이라 불 렀다.
아둘이 의장으로 있는 ‘5월 영웅 유가족 위원회’는 갖은 협박과 회유의 쓰라린 5년을 보낸 뒤 지난 5월18일 방콕 중심부 ‘역사의 거리’에서 첫 공개집회와 기념식을 열었다. 그날의 진실을 담은 사진기록집 <5월 봉기 의 지난 5년을 밝힌다-민중들의 진짜 이야기>를 며칠 전 펴낸 것도 가슴 뿌듯한 일이다. 정부가 화해의 몸짓을 보이며 상당한 액수의 돈을 제시했 지만, 유가족 위원회는 단호하게 그 유혹을 뿌리치고 5월항쟁의 진상 규 명과 공식 사과, 영웅들의 복권, 기념탑 건립 등을 정부쪽에 당당하게 요 구했다.
“아들의 시신을 처음 병원 영안실에서 보았을 때, 전 삶의 의지를 잃은 불쌍한 어미였어요. 그뒤 4년 세월을 눈물로 보냈지요. 그러다 지난해 5 월 한국의 광주시민연대모임 초청으로 ‘인권과 평화를 위한 국제청년캠 프’에 참여하게 됐고, 그곳에서 강경대 열사의 어머니 이덕순씨를 만나 면서 큰힘을 얻게 되었어요. 이렇게 주저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고 남편을 설득했지요. 강한 어머니로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습니다.”
남편 아둘과 회원인 92명 가족들에게 17년 전 광주의 경험을 전하며 씩씩 한 투사의 어머니로 거듭난 안냐온은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 5 ·18 정신을 지켜냈고, 지금도 힘차게 싸우고 있는 광주 시민들에게 감사 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고 말했다. 안냐온은 비슷한 경험을 나눈 아르 헨티나의 5월 어머니회와 광주 어머니들과 함께 손잡고 3국의 공동 연대 를 이룰 꿈을 내비쳤다.
방콕=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