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논단/채만수/한국노동이론정책 연구소 부소장

황금신에 바쳐진 희생?

2백20명이 넘는 생명을 앗아간 괌에서의 대한항공기 추락의 원인은 지금 미국의 연방수송안전위원회(NTSB)에 의해서 조사중이고, 한국쪽도 그 조 사에 참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사고원인을 둘러싼 긴장과 갈등도 적지 않은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미국의 일부 언론이 ‘조종실수’를 원인으 로 추측보도했다가 대한항공쪽의 강력한 항의를 받자 NTSB쪽이 그 보도내 용을 부인하고 나서기도 했다. 이러한 갈등은 사고원인에 따라 대한항공 과 사고 비행기 제작사인 보잉사, 그리고 괌 아가냐 공항의 관제책임을 지고 있는 미국 정부 사이에 배상책임의 문제가 따르기 때문일 터이다. 이 배상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줄다리기와 ‘타협’이 자칫 사고의 진실한 원인을 가리면서 그것을 특별한 기상상황 등 책임능력 없는 ‘자연’에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사고원인조사단에서 유족쪽이 배 제되어 있기에 더욱 그렇다.


메이그스 필드 상공 참사의 교훈

아무튼 조사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우리는 사고 당시의 정황에 대한 단편 적인 정보들을 들을 수밖에 없는데, 관제시설이 고장중이었다는 사실, 그 리고 착륙허가 뒤 추락까지 사고비행기와 관제탑간에 교신이 없었고 이는 관제사가 레이더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지 않았음을 의미한다는 보도와 추 락 이후 25분이 지나서야 공황관제소가 그 사실을 파악했다는 보도 등은 특히 우리의 관심을 끈다. 사실이라면, 괌의 아가냐 공황이 열대의 악천 우지역인데도 심야 이착륙을 강행해오고 있다는 사실과 함께, 그것은 안 전을 압도하는 무엇인가가 세계의 항공산업을 지배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13일의 어떤 사고로 눈을 돌려보자.

그날 오후에 시카고 남쪽의 호반에 자리잡은 조그만 비행장인 메이그스 필드(Meigs Field) 상공에서 두 대의 경비행기가 충돌하여 화염에 휩싸인 채 미시간호로 추락하였고, 탑승해 있던 7명은 모두 숨졌다. 이 비행장에 는 레이더가 없기 때문에 관제사가 육안으로 비행을 추적하면서 유도해야 하는데, 관제탑에는 단지 1명의 관제사만이 근무중이었다. 그는 연료부족 으로 비상착륙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다른 비행기에 시선과 관심을 빼앗 기고 있었다.

본래 이 비행장에는 미국연방항공국(FAA) 관장 아래 관제사가 3명씩 1조 가 되어 근무했는데, 그 관제업무는 ‘계약관제프로그램’에 의해서 지난 해 말에 민영화되었고 이후 비노조원인 1명의 관제사만이 근무하게 되었 다. 항공유와 항공권에 부과되는 세금으로 FAA가 운영되어 그 경비가 대 형 항공사들의 부담으로 되었기 때문에 이들 항공사가 ‘비용절감’의 압 력을 가한 결과였다. ‘효율성’과 ‘민영화'의 신화가 한몫 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안전 관련 비용절감의 핵심은, 관제시설의 신설·교체·보수 예산의 삭감 외에, 노동강도를 강화하는 것인데, 미국의 한 노동자신문(Workers World , 97. 8. 7.)에 따르면, 그것을 실행하는 방법의 하나가 FAA와 관제사노 조(NATCA)간의 협약에 구속받지 않는 무노조의 민간회사에 관제업무를 위 탁하는 ‘계약관제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에 따라서 1997년 6월 말 현재 1백36개 관제소의 관제업무가 민영화되었다. 나아가 비용절감을 위 해서 FAA 역시 14%의 인원감축에 나서고 있는데, NATCA의 크래스너(Barry Krasner) 위원장은 지난 6월17일 미 상원의 한 위원회에서 뉴욕지역의 공 항에도 “위험스럽게 관제인원이 부족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가냐 공황 관제가 문제의 계약관제프로그램에 의해서 민영화된 경우인 지, 인원은 충분히 배치되어 있는지, 사고를 전후하여 특히 그러했는지 등에 대해서 우리는 확정적 자료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하지만, 그 관제 업무가 민영화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것이 안전보다는 ‘이윤’을 위해서 운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앞서 언급했던 보도내용 들이 사실이라면 이러한 이윤 목적의 시장적 관제운영이 추락사고의 사실 상 근본원인이라고 할 수 있고, 설혹 그것이 이번 사고의 직접적이고 주 요한 원인이 아닐 경우에도, 민영관제는 언제나 대형 참사의 가능성을 안 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의 탈을 쓴 황금신

대형 사고가 날 때마다 개탄하고 분노하면서 ‘재발방지’를 다짐한다. 하지만 ‘이윤생산’이라는, 대부분의 사고에 근본적인 사회경제적 원인 을 보지 못한 채 ‘안전의식 부재’만을 탓하거나, 개별적인 기업의 탐욕 과 부정, 업무해태 등에서만 사고의 원인을 찾을 때, 그 재발방지 다짐은 공염불에 그친다. 결국 수많은 희생이 이윤의 어머니 황금신의 제단에 바 쳐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오늘날 그 황금신은 ‘경제원리’ 혹은 시장의 모습으로 현신하고 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다.

시장생산에 대항하여 인간의 필요를 위한 생산으로 사회적 생산을 개조하 는 프로그램을 진지하게 모색하여야 할 때이다.

채만수/ 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소 부소장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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