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지구촌

미얀마 농촌에 등불을 켠다

미얀마 농촌사람들은 최근 자국이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에 가입한 사실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아니 그들의 눈에 현 군사정권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비치고 있을까?

지난 8월 초 방문한 미얀마 북부 중심도시 만달레이 근처의 한 농촌마을 은 ‘평화로웠다’. 꼭 우리나라 어디선가 본 듯한 모습이다. 이 지역의 주요 작물이 쌀과 콩·깨·자두 등 우리와 유사한 점도 친숙함을 더했다. 길가에서 소를 모는 소년의 천진난만한 얼굴에도 평화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마을 입구까지 마중나왔던 촌장이 문이 굳게 닫힌 한 낡은 건물을 가리켰을 때, ‘평화’란 거짓임이 곧 드러났다. 촌장이 가리킨 곳은 이 마을의 초등학교였다. 아이들의 배움터가 돼야 할 이 학교는 지난해 ‘12 월 학생시위’ 이후 줄곧 닫혀 있는 상태다. 당시 학생들이 내건 구호는 ‘학생회 인정’ 등 비교적 온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뒤 불교학교와 사 관학교를 제외한 모든 초·중·고교, 대학교가 이런 상태로 9개월을 보냈 다. 이는 현 미얀마 정부의 ‘우민화정책’에 따른 것이다. “군인만 똑 똑하면 된다”는 게 현 군사정부의 논리란다.


아세안 가입 시큰둥… 농민 울리는 정부 정책

“아세안가입이요? 군인들은 좋아하겠죠. 우리완 상관없는 일입니다.” 수도 양곤 시내를 장악하고 있던 군인들이 이곳까지 정보망을 넓힌 탓이 었을까. 촌장은 말을 하기 전에 주위를 돌아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 나 ‘평화로운 마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만 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88년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현 미얀마 정부는 신헌법을 제정 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시장경제를 채택했다. 하지만 토지소유권은 여전 히 정부가 쥐고 있는 상태다. 농민들은 토지경작권이 균등하게 분배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린다. 또 생산된 생산물의 일정 부분을 싼값에 정부 에 팔아야 하는 조항도 불만사항 중 하나다. 촌장의 말에 의하면, 1에이 커당 40부켓 정도의 쌀이 생산되는데 그중 12부켓은 의무적으로 정부에 팔아야 한다. 그런데 홍수 등으로 생산량이 수매량보다 적을 때가 문제다 . 정부의 쌀 수매가는 1부켓에 70차트(3백50원)인 데 반해, 시장가는 4천 차트(약 2만원)다. 그러다보니 흉작일 경우 농민들은 비싼 값에 시장 쌀 을 사다 정부에 싼 값에 되팔아야 했다.

문제는 이런 과정에 온갖 부패가 기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정부 고위 관료나 공무원들의 월급은 상당히 낮다. 농민들이 소비하는 쌀값 정 도밖에 안 된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주 잘산다. 인민들 노동의 대가가 구 조적으로 관료들의 주머니만 불린다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민중들은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상황 은 어렵지만, 미얀마 농민들은 결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이 마을 사람 들도 ‘이상적인 농촌 공동체’를 꿈꾸며 여러 가지 자구책을 강구하고 있다. 일본의 유기농법을 도입한다든지 협동조합 형식으로 신용사업을 한 다든지 하는 노력이 그것이다.

이런 공동체 활동을 주관하는 이들은 해외 비정부기구로 연수를 다녀오거 나 수도 양곤의 도시산업선교회에서 교육받은 인물들이다. 촌장을 비롯해 대학생, 농민, 주부 등 10여명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한 사람당 30명씩 을 조직하자”는 1년 단위 사업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 공동체의 꿈은 “모두가 서로 돕고 잘사는 농촌 공동체”다. 이를 이 루기 위해 공동체는 경제적이면서도 다소 정치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 땅이 없는 농민들에게는 땅을 임대할 수 있는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이동 도서관, 뜨개질 교습도 마련하고 있다. 농사도 농약을 쓰지 않는 유 기농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공동체가 양적으로나 질적으 로나 다른 농촌에 비해서 훨씬 잘살게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농촌 여성 들도 경제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생활에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정치적 문제에도 관심을 끊지 않는다. 의식화센터가 그 대표적 예 다. ‘현 미얀마 상황’을 토론하는 의식화센터는 휴교로 고향에 내려와 있는 대학생들 중심으로 이뤄진다.


점조직 형태로 활동 반경 늘려

이들의 공동체엔 이름이 없다. ‘현재의 미얀마 상황’이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은 이 기사에서 마을 이름과 사람 이름을 못 쓰는 이유이기 도 하다). 따라서 공동체는 만남도 활동도 점조직 형태다. 공동체운동의 회원을 모집할 때도 대상을 선정하고 개별적 접촉을 통해 끌어들인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마을의 한 가옥에서 축전기로 켠 꼬마 전구 불빛 아래 모인 이들 공동체 구성원들은 말한다.

“지금 우리는, 말은 함부로 못하지만 희망만은 가슴 깊이 안고 살아갑니 다.”

미얀마=박인권/ 서울대 환경대학원 석사과정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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