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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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강 서안 라마라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여성 이만(32)은 올 2월 약 10년 만에 다른 여성정치범 32명과 함께 이스라엘 감옥에서 석방됐다. 그는 지난 87년 11월 팔레스타인인의 대봉기인 ‘인티파다’가 시작되기 2주 전 체포됐다. 당시 그에게 적용된 죄목은 ‘무장투쟁 기도’다. 체포 되기 전 간호사로 일했던 이만은 당시 무장투쟁을 계획한 배경에 대해 “ 이스라엘이 들어와 우리의 삶을 빼앗았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그는 특 히 여성으로서 무장투쟁을 꾀한 데 대해 “이슬람교가 나를 싸우게 했다 ”고 설명한다.
-10년 전의 심경에 대해 간단히 말해달라.
=나는 열살께부터 이스라엘의 점령에 맞서 싸웠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이스라엘과의 투쟁조직을 만들려 했다. 나는 조국을 위해 뭔가를 하고자 했다. 우리 주변엔 ‘점령’만이 있을 뿐이었다. 어머니는 이스라엘이 요 르단강 서안을 점령한 ‘67년 전쟁’ 이야기를 자주 들려 주셨다. 당시 아버지는 요르단 병사로 이스라엘과 싸웠다. 오빠는 이스라엘군의 총에 맞았고, 여러 차례 체포됐다. 또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고 젊은이들이 사살 되고, 토지를 빼앗겼다. 우리들은 거리 곳곳에서 이스라엘 병사들에게서 불신검문을 받아야 했다.
-이스라엘 또한 2차대전 당시의 유대인 학살 등 상처입은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
=물론 그들도 상처입은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상처입은 자들이 다 른 사람에게 상처를 입혀도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히틀러는 유대인 들에게 나쁜 짓을 했다. 하지만 이를 다른 사람에게 갚는다면 잘못된 일 이다. 그들은 외부에서 들어와 우리들의 삶을 빼앗아갔다. 그들은 “당신 의 집을 5분만 빌릴 수 있겠습니까?”라고 한 뒤 “너희들은 나가, 여긴 우리집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했다. 당시 상황이 나에게 “어떻든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여성’이기에 부닥친 문제들도 있을 텐데.
=나에 대한 평가는 팔레스타인 내에서도 두 갈래다. 일부에서는 “사회적 으로 좋은 일을 했다”라든지 “용기있는 일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일부는 “여성으로서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거나 “여자는 결 혼을 하고 가정을 지켜야만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소수지만 “아 마 아버지가 안 계셔서 그랬을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마지막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저의 행동은 아버지가 있거나 없는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내 마음 속에 서부터 투쟁의 마음이 생겨났기 때문에 싸울 수 있었다. 출소하자 다른 정치범이 자랑스럽게 대해줬다. 왜냐하면 여성으로서 인티파다의 최전선 에 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열심히 싸웠다. 그리고 이슬람이 나를 싸우게 했다. 이슬람에서는 싸우는 여성들이 많다.
-평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일부분은 정말 평화를 기대하며, 두개의 국가가 되어 도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지금은 평화의 시대다. 하지만 현재의 평화는 진 정한 평화가 아니다. 정착촌은 곳곳에 존재하고, 예루살렘에 가는 것도 자유롭지 않다. 여자로, 팔레스타인 사람으로 지금도 ‘점령’이 계속됨 을 느낀다. 우리들은 알게 모르게 긴 시간에 걸쳐 조금씩 조금씩 생명을 짓밟히고 있다. 이는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만약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 다면 이스라엘인들은 요르단강 서안과 예루살렘에서 모두 떠나야 한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