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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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기부터는 이스라엘군 경찰이 관리한다. 이스
라엘군이 철수했지만 헤브론 시가지 곳곳에 위협적인 경고판이 있다.)
“여긴 우리들의 땅이야. 너희들의 땅이 아냐. 너희들을 죽여버리고 싶어 .”
이스라엘 수도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헤브론 시내 유대인 정착촌. 정 착민들이 옆건물 옥상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잇따른 폭탄테러 등 으로 감정이 격해져 있는 모양이다. 옥상 위에선 팔레스타인 여성 이하브 (21)가 긴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들릴듯 말듯 입술을 뗀다.
“아니야. 여긴 우리 땅이야. 나는 바로 이 헤브론에서 태어나 자랐다구. ”
헤브론엔 이렇게 ‘두개의 주인’이 있다. 지난 67년 이스라엘-요르단 전 쟁 뒤 이곳을 점령하고 있던 이스라엘의 다수는 지난 1월17일 철수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협정에 따른 조처다. 그러나 아직도 5백명의 유 대인 정착민이 남아 있고, 이들을 지키기 위한 1천명의 이스라엘군이 떠 나지 않고 있다.
정착민보호 내세운 이스라엘군 주둔
이하브는 아직 초등학생이었던 지난 82년 정착촌이 세워지던 때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어느 날 갑자기 옆집에 살고 있던 친구들의 가족이 이 스라엘군에 의해 쫓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엔 유대인들이 자리 잡았다. 그뒤 유대인 정착민들은 계속 늘어 지금은 21가구가 살고 있는 유대인 정착촌으로 변했다. 정착촌 주변에는 이스라엘 병사가 정착민들을 위해 경비를 삼엄하게 펴고 있다. 이하브의 방 창문으로 보이는 이스라엘 군 초소에는 24시간 근무중인 병사들이 서 있다.
“매일같이 유대인 정착민들이 돌을 던지거나, 욕을 해대요. 얼마 전 내 가 잠을 자고 있을 때 유대인 아이들이 밑에서 돌을 던졌어요. 난 폭탄이 라도 터졌나 해서 깜짝 놀랐죠. 병사들에게 항의했지만 그들은 그냥 웃을 뿐이었어요.”
이하브는 매일매일이 악몽의 연속이라는 듯 고개를 젖는다. 이하브의 가 족은 이스라엘 건국 이전부터 이곳 헤브론에 살고 있다. 그의 아버지는 지난 67년 ‘8차 중동전쟁’ 때 부상당했다. 이하브는 또 3명의 오빠와 2 명의 여동생이 있다. 아버지는 헤브론에 있는 ‘알하람 알이브라히미 알 칼릴’(친구 아브라함의 신전) 근처에서 전화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하 지만 3년 전 이 성전에서 유대인 정착민들이 30명의 팔레스타인을 학살한 뒤 손님의 발길은 거의 끊겼다. 그뒤 가족의 생계는 이하브와 둘째오빠가 헤브론 시청에서 근무하는 덕으로 이럭저럭 유지하고 있다.
이하브는 매일 아침 출근길이 고통스럽다. 정착촌 앞을 지나 근무지까지 가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이하브는 오후 2시 근무를 마치면 어디도 들르지 않고 곧장 집으로 돌아온다. 헤브론 옛 시가지에 있는 상점들이 오후 3시면 모두 문을 닫는 탓이다. 정착민들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조금 이라도 늦어지면 멀리까지 나와 안절부절하며 기다리는 어머니를 꼭 만나 게 된다.
“이건 형무소나 다름이 없어요. 내집인데도 창문을 여는 것도, 옥상에 올라가는 것도 힘들어요. 밖에 있을 땐 언제 총을 맞을지 모르는 위험 속 에 있어요.”
과년한 딸을 셋이나 챙겨야 하는 이하브의 어머니는 살아가는 게 힘들다. 그러나 그는 이런 고통을 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죽임을 당하는 한이 있어도 우리는 이곳을 떠나지 않을 거예 요. 이곳은 우리들의 땅이니까요.”
“3천여년 이어온 삶의 터전 못 떠나”
하지만 이스라엘 정착민이라고 고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들도 이곳을 ‘우리 땅’이라고 여기기는 마찬가지다. ‘친구 아브라함의 신전’만 해 도 그렇다. 이곳은 이슬람교도가 예언자 아브라함의 묘라고 여기는 곳이 다. 아브라함은 구약에도 나오는 이스라엘인들의 선조이기도 하다. 유대 교도들도 이곳을 막벨라동굴이라 부르며 소중히 여긴다. 두 종교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헤브론에는 3곳의 유대인 정착촌이 있다. 이곳엔 54가족 약 5백40명의 이스라엘인들이 살고 있다. 이하브의 집에 인접해 있는 정착촌 의 레아(26·여) 부부도 1년6개월 전 미국에서 이곳 정착촌으로 이주해왔 다. 남편은 예루살렘 초등학교 교사고, 레아는 또다른 정착촌에서 치료사 로 일하고 있다.
“이곳에 살고 있는 유대인은 소수지만 세계 곳곳에서 애착을 갖고 모인 사람들이에요. 이곳은 우리들에게 제2의 성지거든요. 막벨라동굴에는 유 대민족의 어머니가 잠들고 있어요. 3천년간 유대인은 이곳에 정착해 있었 어요. 아니 3천7백년 전부터죠.”
헤브론 시내의 정착촌에는 프랑스·미국·영국 등지에서 온 종교적 색채 가 강하고 과격한 정착민들이 많다. 이들은 가까이 살면서도 팔레스타인 인들과는 접촉조차 하지 않는다. 적의를 키우는 한 요인이다. 이들은 합 법적으로 총을 가질 수 있다.
“적들에 둘러싸여 있는 곳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 망설이긴 했죠. 하지만 유대인은 먼 옛날부터 이곳에 살아왔어요. 이곳을 떠나는 것이 해결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레아의 말에는 어떤 결의가 비친다.
지난 95년 9월의 팔레스타인 자치지역 확대협정 조인에 의해, 헤브론을 제외한 요르단강 서안의 주요도시 전부가 팔레스타인 자치구로 되었다. 헤브론만에서 이스라엘군 철수가 늦어진 것은 이곳에 살고 있는 약 5백명 의 정착민들 때문이었다. 그러다 지난 1월15일 헤브론철수 합의문에 이스 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서명했고, 1월17일 마침내 이스라엘군의 헤브론 철수가 시작됐다. 철수일엔 아침부터 짙은 구름이 끼고 비가 내렸 다.
다음날 아침 철수가 끝나자 팔레스타인 경찰이 헤브론에 들어왔다. 하늘 은 이미 맑게 갰다. 팔레스타인인들의 기쁨을 대신하는 불꽃이 하늘로 치 솟았다. 팔레스타인 경찰의 입성과 함께 이스라엘군 철수 전 형무소로 쓰 였던 건물에는 자신들이 갇혀 있던 감방을 보려는 팔레스타인 사람들로 붐볐다.
헤브론 심장부는 유대인 정착민이 차지
인티파다(대봉기) 시절 몇번씩 이 감옥에 수감된 적이 있는 운전사 잇파 크(28)는 당시 기쁨을 이렇게 말한다.
“형무소를 찾아와 내가 수감됐던 곳을 찾았어요. ‘그렇게 많이 두들겨 맞았던 곳인데, 이제 되돌아왔다’ 하는 생각이 들자 전 정말 자유를 느 꼈어요. 행복했죠.”
그러나 잇파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이스라엘 철수 뒤에도 헤브론 거리에는 “이곳부터는 이스라엘군과 경찰이 관리한다”고 쓰인 빨간 간 판이 속속 등장했다. 이스라엘군의 완전한 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철 수대상 지역은 헤브론의 80%, 나머지 20%는 여전히 이스라엘군 관할 아래 남아 있었다. 그곳엔 막벨라동굴과 유대인 정착촌이 포함돼 있다. 헤브론 이 팔레스타인경찰 관할지역(H1)과 이스라엘군 관할지역(H2)으로 나뉘었 을 뿐이다.
“헤브론의 일부분만은 필요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헤브론의 심장 부인 ‘친구 아브라함의 신전’입니다.”
말을 잇는 잇파크의 얼굴에선 이미 철수의 감격은 사라졌다.
헤브론 철수 뒤 잠시 정상궤도에 올라선 듯하던 중동평화는 또다시 위기 에 빠질 가능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인들이 장래 자신들의 수도로 생각하는 동예루살렘의 남단 팔호머지역에 유대인 용 아파트 6천5백세대 건설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런 조처가 평화협정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그리고 항의운동 이 잇따랐다. 요르단강 서안의 베들레헴과 나블러스 검문소 근처에선 매 일처럼 이스라엘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나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런 시위과정에서 지난 3월과 4월엔 4명의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인들이 쏜 총에 맞아 숨졌다.
“이스라엘군 일부가 헤브론에서 철수했지만, 우리들은 이를 해방으로 생 각지 않습니다. 오히려 점령정책이 강화될지 모르죠. 팔호머지역의 입식 지건설 문제는 인티파다를 재현시켰어요.”
잇파크는 ‘화해시기’ 동안 들지 않았던 짱돌을 다시 거머쥐었다. 그리 곤 헤브론에서 최후의 정착민이 사라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다짐한다. “평화협상은 중지해야 해요. 지금과 같은 어정쩡한 평화로 살기보다는 인티파다를 계속하는 편이 나아요. 하지만 팔레스타인 정부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팔짱만 끼고 지켜보고만 있죠.”
극렬 저항조직 부활 조짐에 초긴장
이런 헤브론의 분위기는 그동안 세를 잃었던 이슬람저항운동(하마스)의 부활 조짐과 연결된다. 하마스는 지난 7월 말 1백80여명의 사상자를 낸 예루살렘 야채시장 자살폭탄테러로 ‘부활’을 선언했다. 이 테러의 배후 로 ‘네타냐후 정권의 정착촌 확대정책’을 드는 것은 크게 잘못된 판단 이 아니다.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의한 평화교섭은 중 지돼 있는 상태다. 하지만 교섭이 재개된다 해도 두 대화 당사자가 동예 루살렘의 주권문제,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문제, 정착촌문제 등 각종 난 제를 어떻게 풀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리고 어쩌면 팔레스타인 평화는 점점 더 깊은 혼돈의 늪으로 빠져들지도 모른다.
글·사진 헤브론=후리이 미즈에/ 아시아프레스인터내셔널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