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강문 기자의 인물탐험/전통 인형작가 임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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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쿠리에 갓 쪄낸 고구마를 담아 내놓는다. 살짝 벗겨진 껍질 밑으로 드러난 노란 살점이 구수해 보인다. 낯선 손님을 향한 마음새가 고맙다. 입맛이 심심할까 죽염으로 간까지 맞췄다니 문득 미안함이 스친다. 우연 히 들른 외딴집에서 뜻하지 않은 친절을 받은 기분이다. 보랏빛 치마 사 이로 코를 내민 주인의 깜장 고무신은 정겹기만 하고. 그 첫인상이 깨질 까 괜히 한동안 눈치를 봤다.
어렸을 땐 인형이 미웠다
임수희. 마흔쯤 됐지 싶다. 15년째 우리를 닮은 인형을 빚고 있단다. 흙 으로 꼴을 빚어 옷을 지어 입히고 붓으로 표정을 그린단다. 그렇게 태어 난 인형들이 은은한 전등불 아래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갓난애를 포대 기로 감싸고 바람 찬 고개를 넘는 여인, 외할머니 옆에 앉아 앵두 달라고 보채는 소녀, 허리춤에 화살집을 늘어뜨리고 산길을 타는 기녀. 언젠가, 어딘가에서 봤음직한데 흐릿하다. 아마도 어릴 적 낡은 동화책에서 언뜻 스쳤던 것 같다.
옥수수 달인 물을 사이에 두고 주인과 마주했다. 찻잔을 든 가느다란 손 마디에서 굵은 옥가락지가 뽀얗다. 인형보다 주인의 살아온 내력이 궁금 하니 탈이다. 수녀원에 든 수녀의 과거를 들추는 것 같아 겸연쩍다. 다행 히 웃음으로 받아 넘긴다. 세상에서 조금 떨어져 있지만 아주 잊고 살지 는 않는단다. 동네에선 인형 만드는 사람으로 유명세도 만만찮고. 하지만 아무래도 수상쩍다. 경복궁 돌담길이 꺾어지는 한적한 동네에서 철든 인 생의 태반을 인형과 함께 한 사연이란.
우리네 인형이 아름답단다. 그것이 본뜬 옛 사람들 아름다움만큼의 아름 다움이다. 그 예쁜 모습들을 주섬주섬 입에 담는다. 속곳 차림으로 경대 앞에 앞아 쪽진 머리를 매만지는 여인의 섬섬옥수, 호롱불로 눈을 밝혀 책갈피를 넘기는 양반의 지긋한 입매, 화톳불 옆에서 손주에게 군밤을 까 주는 할머니의 주름진 미소. 그 묘사가 환등기를 틀어주는 듯 생생하다. 몸소 겪고, 책에서 찾고, 박물관에서 떠올린 모습들이어서다.
어렸을 땐 인형이 싫었단다. 엄마가 인형을 사주면 다락방에 툭 던져놓고 문을 잠가버렸다. 손수건으로 문고리를 꽁꽁 처매기까지 했다. 엄마가 온 방을 뒤지며 인형을 찾아도 시치미를 뚝 뗐다. 그땐 몰랐는데 이제사 그 지독한 미움을 헤아리겠다. 노란 머리, 파란 눈에 하얀 레이스. 그 낯선 사람꼴에 마음이 질겁했던 것 같다. 어린아이의 감수성치곤 유별나다. 하 긴 커서도 낯선 것에는 냉큼 두어발짝 물러서는 게 일이었다. 마음이 닿 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고질병이란다.
우리의 인형을 찾기까지 숱한 샛길을 헤맸다. 꼭 길잃은 염소꼴이었다. 이리도 가보고 저리도 가보고. 그러다 끝내 바위 밑에서 음매음매 울어대 는. 대학을 나와 한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좀체 마음이 머물지 않고 떠돌기만 했다. 진정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아무런 거리낌없이 마 음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 번민하며 뒤척이는 밤이 차곡 차곡 쌓였다. 그러다 가출도 했다. 그때까지 푼푼이 번 돈 1백만원과 성 모 마리아상 하나 달랑 들고 내뺐다. 구슬을 꿰어 봉지쌀로 연명하면서 가족으로부터 세상으로부터 멀어져갔다. 딸의 방황을 못내 안타까워하시 던 어머니의 모습은 지금도 선하다.
인형은 도둑처럼 찾아들었다. 길을 걷다 우연히 어릴 적 선생님을 만났다 . 골목길서 나오는데 다른 골목길서 나오더란다. “네 마음밭을 잘 살피 고 일궈보렴. 내내 정성을 들이면 언젠가는 아주 큰 나무가 자라날 게야. ” 처음엔 알 듯 모를 듯했다. 그러다 어렴풋이 빛이 보였다. 마음 깊은 곳에서 샘물로 흐르는 작은 기억들이었다. 무명적삼 치마저고리를 입고 댓돌 위에 내려서며 하얀 고무신을 신던 어머니, 행주치마를 두르고 부뚜 막에서 밥을 푸던 할머니, 장날 할머니가 사다주신 꽃고무신을 신고 마당 을 뛰놀던 자신의 모습이 새겨진 내면이 떠오른 것이다. 그걸 그림도 글 도 아닌 인형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게 가장 생생할 것 같았다.
그의 어릴 적 기억은 도대체 흐릿한 법이 없다. 시간을 뚝 잘라 감춰뒀다 다시 펼치는 듯하다. 사냥을 즐기던 아버지를 따라 눈덮인 산길을 걸을 때 발이 푹푹 빠지던 일이며, 소나기가 내리는 바람에 길 가운데 생긴 웅 덩이를 어머니가 놓아준 돌멩이를 징검다리 삼아 건너던 일들이 어제 일 인 듯 또렷하단다. 훗날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새기려 했던 것 같지는 않 다. 그저 마음이 통했다고 밖에 딱히 갖다댈 변명거리가 없다. 그런 기억 의 조각들이 인형에 고스란히 담긴다.
‘행상’이라 이름붙인 사연들
애초 인형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다. 소꿉장난하듯 꼼지락꼼지락 헝겊을 만지는 게 고작이었다. 지금은 흙으로 인형을 빚지만 처음엔 헝겊으로 인 형을 만들었다. 거기에 옷을 지어 입히며 손끝을 다듬었다. 그렇게 만들 어진 인형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어엿한 화 랑에서 전시회도 열었고, 인형도 하나둘씩 타인들에게 시집보냈다. 그리 고 소중한 인연들이 찾아들었다. 조선시대 전통머리의 모양새며 옷소매에 끝동다는 법이며 신분에 따른 신발의 색깔 등을 일러주는 스승을 만나 인 형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전통옷을 짓는 바느질도 배우고 조선시대 복식 에 대한 이론도 접했다.
인형이 만들어지기까지 보통 2개월에서 3개월이 걸린다. 생명없는 것들이 지만 아이를 낳는 여인네와 같이 배앓이를 한다. 인형이 하나 나오면 몸 의 진이 다 빠져나간다. 아이가 옹알이하듯 인형이 들려주는 얘기들이 그 때 위안이 된다. “말 못하는 사람이 어느 날 말문이 트인다면 아마 보석 같은 이야기들을 쏟아낼 거예요. 인형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형의 그런 사연들이 ‘행상’이라 이름붙인 일기에 이렇게 적혀 있다. “살짝 곰보인 아낙이 행상하다 벙어리 남자를 만나 화촉을 밝혔다. 아낙 은 늦게 얻은 두살배기 딸아이를 들쳐 업은 채 머리엔 생선 양푼을 이고, 벙어리 남편은 지게에 새우젓을 지고 새벽 찬 공기를 가르며 골목길을 나 선다. 아낙이 벙어리 남편을 대신해 외친다. 생선 사려! 새우젓 사려!” 며칠 전부터 조선 5백년 역사를 인형으로 재현하는 꿈을 꾼다. 옛 사람들 의 기쁨과 슬픔, 사랑과 즐거움이 살아 있는 인형들이다. 사람들이 그걸 보고 우리의 순백한 멋과 향기를 느꼈으면 좋겠다. 잃어버린 고향과 지난 시절에 대한 향수를 나눴으면 좋겠다. 그 욕심을 오로지 인형의 어깨에 올리자니 미안할 뿐이다.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