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초점

대통령 마지막 도박?

(사진/장관 취임 직후 찾은 홍사덕 정무1장관.
그의 정치개혁 발언을 계기로 대통령의 의도가
관심사항으로 떠오르고 있다. )

김영삼 대통령은 과연 ‘마지막 깜짝쇼’를 연출할 것인가. 최근 홍사덕 정무1장관의 정치개혁 관련 발언을 계기로 그동안 잠복상태에 있던 김 대 통령의 ‘중대결심’ 단행 여부가 다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홍 장관은 지난 8월13일 “김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중대결심은 분명히 구체적 내용이 있는 것이며 국민이 동의하는 방향일 것”이라며 “만일 국회 정치개혁특위의 정치개혁 입법이 당리당략에 따른 누더기 타 협이 될 우려가 있을 경우 적극 개입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홍 장관의 말대로라면 김 대통령이 정치개혁과 관련해 뭔가 ‘큰 일’을 준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기에 충분하다.


정치권 압박·야당 협박 다목적 카드

청와대 관계자들도 “대통령이 중대결심을 철회한다고 말한 바가 없으므 로 아직 살아 있다고 봐야 한다”고 중대결심의 유효성을 강조한다. 그렇 다고 해서 청와대쪽이 현 시점에서 서둘러 일을 저지를 조짐은 보이지 않 는다. 아직은 정치권의 협상 과정을 예의주시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 , 중대결심에 대비한 구체적인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등의 적극적 움직임 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런 점에서 홍 장관의 발언은 정치권에 대한 압박용 카드로서의 측면이 강한 것같다. 대선이 4개월여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정치권이 계속 밀 고당기기로 허송세월 할 경우 중대결심이 실행에 옮겨질 수도 있다는 일 종의 으름장인 셈이다.

문제는 여야간의 정치개혁 협상이 무산될 때 과연 김 대통령이 어떤 행동 에 돌입할 것인가다. 이를 추측하기에 앞서 먼저 대국민담화에서 중대결 심이 언급된 배경을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대국민담화는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김 대통령의 입장표명을 요구하 는 국민적 요구에 밀려 나온 것이었다. 하지만 대선자금 문제에 대한 김 대통령의 언급 내용은 국민들의 기대수준에 훨씬 못미치는 실망스러운 것 이었다. 대신 김 대통령은 뜻밖에도 ‘중대결심 검토’라는 일종의 폭탄 선언을 하고 나왔다.

김 대통령의 중대결심 발언은 다목적용이었던 것으로 관측됐다. 그의 ‘ 선의’를 인정한다면, 현 제도로 대선을 치를 경우 누가 당선되든 대선자 금 시비에 휘말려 국정이 혼란스러워질 것이라는 국가지도자로서의 우려 가 배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다른 하나는 국면전환을 위한 대야 협박카드라는 성격도 갖고 있었다. 사실 ‘중대결심’ 운운은 그동안 정치권 인사들이 궁지에 몰릴 때마다 써먹는 단골수법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김 대통령의 중대결심 발언은 야권, 특히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를 겨냥해 ‘계속 대선자금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일종의 정치적 협박이었다. 실제 김 대통령의 이런 ‘협박’은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다.

애초 청와대 안에서는 중대결심 문제를 놓고 ‘급진적’ 의견도 적지 않 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박세일 사회복지수석 등 개혁론자들은 현행 소선거구제를 없애고, 정당의 지구당 조직도 폐지하는 등 선거제도와 정 당구조를 ‘혁명적’으로 뜯어고치자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은 김 대통령이 취임 초와 같이 개혁의 깃발을 전면에 내걸고 강하게 드라이 브를 걸면 다시 국민적 지지가 살아나 정국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고 주 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대통령은 이런 급진적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대중집 회 개최와 사조직 운영 전면금지, 텔레비전과 신문 등을 통한 선거운동 확대, 선거운동비용의 국가부담을 골자로 하는 선거공영제 확립 등 여야 간에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온건한 방향의 정치개혁 방안을 제 시하는 선에서 그쳤다.

여야 정치협상이 무산될 경우 김 대통령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안은 정부의 독자안을 마련해 국회에 상정하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 고 위관계자도 “국회 정치개혁특위가 합의안을 내지 못할 경우 무작정 기다 릴 수는 없다”며 “일정 시점에서 정부가 마련한 안을 국회 내무위 등에 서 심의해 처리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독자안 국회상정 정도라면 중대결심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정치 권의 관심은 김 대통령이 그 정도 수준을 뛰어넘어 의외의 깜짝쇼를 연출 할 가능성에 쏠려 있다.

김 대통령이 강공을 펼친다고 가정한다면 독자안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 치는 방안도 생각할 수 있다. 헌법 제72조는 ‘대통령은 필요하다고 인정 할 때는 외교·국방·통일 기타 국가안위에 관한 중요정책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 대통령이 당시 담화에서 “지금의 선거제도와 관행을 이대로 두고 대선을 치른다면 급기야는 국가안위에 중 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굳이 ‘국가안위’라는 표현을 집어넣은 것도 국민투표를 염두에 둔 사전 논리구축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또 헌법 76조에 규정한 긴급명령권 발동 가능성도 일각에서는 거론 하고 있다.


일각선 ‘긴급명령권’가능성도 제기

정치개혁 문제를 국민투표에 회부한다면 자연스럽게 김 대통령에 대한 신 임투표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김 대통령으로서는 정치개혁의 명분 을 전면에 내걸고 정국주도권을 다시 쥘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또 정치개혁에 대한 야권의 소극성을 부각시킴으로써 표를 깎아내리는 효 과도 기대할 수 있다.

하지만 과연 정치개혁 문제가 국민투표 등의 극단적 방법을 동원할 성질 이냐에 대해서는 청와대 안에서도 이론이 많다. 더욱이 김 대통령의 독자 적 행보는 가뜩이나 지지도가 추락한 이회창 신한국당 대표의 입지를 더 욱 좁히는 마이너스 효과도 있다. 정권재창출이 당면목표인 김 대통령으 로서는 여러모로 숙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종구 기자/ 한겨레 정치부 한겨레21

© 한겨레신문사 1997년08월28일 제 1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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